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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 강화길] 이야기는 계속 된다 / feat. 연희동 청수당 공명, 예스24 굿즈

by 헌책방 2022. 8. 27.


[대불호텔의 유령 - 강화길] 이야기는 계속 된다.

아빠, 어떤 게 할머니고 어떤 게 할아버지야? 아빠는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묻힌 쌍분 앞에서 코를 훔쳤다. 그리고 내 질문에 곧, 게가 아니고 어떤 쪽이라고 말해야제, 분도 괜찮고. 우리나라에서는 무덤 앞에서 보았을 때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모신다. 하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아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디 그렇게 외우지 않아도 될거여. 잔디를 심은 지 꽤 됐는디. 어무니 쪽은 잔디가 길게 자라고, 아부지 쪽은 잔디가 짧게 자라는 거이 보이제. 두 분 머리 스타일 기억하냐? 나는 속으로 할아버지는 왼쪽, 할매는 오른쪽 하고 되뇌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신 분들의 머리 스타일이 봉분에 난 잔디의 길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렸던 나는, 환경과 얼마간의 우연 때문에 잔디가 자라는 속도가 다르고, 따라서 길이가 다른 것일 뿐이라고 믿었다. 세월이 지나 그분들이 떠나신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두 분의 묘역 왼쪽에는 키가 작은 잔디가, 오른쪽에는 키 큰 잔디가 자란다. 덕분에 두 분을 바라볼 때마다, 아빠 말을 못 믿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을 찾아 본 기억을 더듬지 않고도, 용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구분해낸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고 성숙해져서일까. 두 분을 찾아 뵐 때마다 전혀 다른 공간 같은 풍경들의 공존을 바라보며, 한(恨)이 무엇인지, 왜 두 분이 끝끝내 완전히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잔디로라도 남아계시는지, 평생 서로에게 가는 흠집을 남겼던 두 분이 어찌하여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는지에 대하여 종종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은 7살, 8살이나 되었을까, 유독 추위가 매서웠던 어느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는 나에게 어렵고 무서운 존재셨다. 할아버지는 마당을 뛰어놀던 우리 자매가 가까이 다가가면, 해바라기 하며 앉아 계시다 흔쾌히 까까머리를 내어주시는 자상한 분이셨다. 할아버지 정수리에 손을 모아 대고, 손 끝에 까슬함을 느끼며, 할아버지 까까머리래요. 하면서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 할아버지는 금방 아가. 어지럽다. 하며 웃으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처럼 우리를 놀아주실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긴 시간 병석에 누워계셨다. 큰아버지 댁 할매방에 들어가면 느껴지던 희미하게 코를 찌르는 누르스름한 냄새와 보일듯 말듯한 할머니의 희미한 손짓이 싫어서 그 문턱을 넘은 적이 좀처럼 없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버릇 없이 굴고 멀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혹시 천벌을 받을까 봐 벌벌 떨며 아빠 차에 올랐다. 그날 따라 달이 크고 둥그렇고, 손에 잡힐 듯, 시야에 가득했다. 철 없던 손녀는 누워 있던 할매가 아빠에게 삶의 젖줄과도 같은 의미였다는 사실을, 아빠와 고모, 그리고 큰 아빠들이 병풍 뒤에 누운 할매를 향해 목 메 곡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빠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할매도 누군가의 소중한 엄마였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기보다 집에서 장을 치르는 일이 많았다. 큰아버지 댁은 삽시간으로 사람으로 가득 찼다. 잔치도 아닌데 정신 없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할아버지는 홀로 중간방에 오도카니, 말 없이 앉아 계셨다. 심부름 하다가 꽝꽝 언 손을 호호 불며 방에 숨어 들어가도, 할아버지는 그저 옅게 웃기만 하셨다. 밥상은 방에 들어간 그대로 부엌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입고 계신 한복에 달린 호박이 금방이라도 바닥에 첨벙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모시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은 상주들은 손님이 오면 곡을 하고, 시간이 되면 또 곡을 하고, 막둥이었던 아부지는 자꾸 까무러쳤다.

 

할아버지는 일제에 누이들을 시집보내고, 전답을 팔아 만주로 떠났다. 광복을 맞은 고향으로 돌아와 무일푼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해야 했고, 살만해지니 난이 터졌다. 난중에도, 난이 끝나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땅에서도, 새 생명은 속절 없이 태어났다. 막둥이가 자라 학교를 갈 때가 되자 할아버지는 막둥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막둥이 고무신을 품에 안고 자다가 새벽녘 댓돌에 고무신을 내려놓고, 비몽사몽 정신 없는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냈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잃어버렸다. 할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당신이 평생 삶을 꾸렸던 집안 곳곳에 관을 돌려 마지막 인사를 하시게 하고, 당신을 꽃 상여에 태워 장지로 떠나려 하자, 무엇이 그리 마음에 걸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할머니의 꽃상여는 장정들이 여럿 달라붙어도 들리지 않았다. 스님의 목탁 소리와 어무니, 걱정 하지 말고 가. 조심히 가. 하는 자식들의 울음 소리 속에서 상여는 간신히 들려 집을 떠났다. 할머니의 마지막 걸음을 뒤따르던 남매들은 뒤로 벌렁벌렁 나자빠지면서 엉금엉금 그들의 어머니 뒤를 밟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하셨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소를 돌보며 부지런히 하루를 가득 채우고, 멀리 뒤란까지 구석구석 돌아다니시던 당신은, 평생을 서로 애증 했던 반려자가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 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봉분에 난 잔디의 길이, 좀처럼 들리지 않던 할머니가 타고 계셨던 꽃 상여, 전쟁이 말려 놓은 할아버지의 마른 영혼이 할머니의 뒤를 따른 일과 같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한다. 정(情), 뜻(뜻 의 意), 악(惡), 사랑(愛), 증오(憎), 한(恨)은 모두 마음(心, 忄)에서 비롯 된다. 누군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현상을 보고 무슨 감정(感情)이 피어오르는지에 대하여, 인간은 말로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마음의 작용이라는 초자연적인 영역의 일에 대하여 설명하기에, 자연의 한계에 갇혀 있는 인간은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다. 강화길 작가의 <대불호텔의 유령>은 인간의 마음은 양립 불가한 감정이 상존(항상 상 常, 존재할 존 存) 하는 집이며, 인간이 갑자기 사랑에 빠지거나 악의에 물드는 등의 우연과 외부 요인 때문에 이 집의 안심(편안할 안 安, 마음 심 心)도 상실될 때가 있지만, 마음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자신 하나 뿐이므로 이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본작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여러 화자들이 소설가 '나'에게 대불호텔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려주는 설정을 통해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들을 조망한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이후인 1955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이 내뿜는 한을 머금고 있는 대불호텔과, 대불호텔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숨결을 이어 받아 현재 시점을 살고 있는 인물들까지, 서로 상관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복잡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그러다 마침내,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연계성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긴밀히 조응하며 안심의 기원이라는 단순한 소망으로 귀결하는 구조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대불호텔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을 기억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서술하는 것이 무엇이 진실인지 추리해나가는 과정과 비슷하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소름 끼치는 반전들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서스펜스를 동반한 고딕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까지 두드러진다. 구조와 장르에의 충실도 만으로도 작품이 굉장히 치밀하게, 밀도 있게 짜여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원한(怨恨)은 마음에 깃드는 것들이 늘 그렇듯,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원망을 품게 한 이유가 해소되었다고 해서 한 순간에 함께 사라지지 않고, 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기도 한다. 본작은 에밀리 브론테와 <폭풍의 언덕>을 대놓고 언급하며 원한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어떤 존재에 대한 원한에 오래 사로잡혀 있는다는 것은, 동시에 그 존재를 얼마나 깊이 마음에 두고 있는지를 의미할 때도 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일은 끔찍하게도 끈질긴 일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담긴다는 일은 무섭도록 중독적인 일이다. 처음에는 그 일들이 스스로 인간을 찾아오지만, 종국에 인간을 끈질기고 중독적인 결말의 운명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이 내린 선택이다. 비극적 결말을 설사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햇살이 내리고, 가끔 나를 보고 웃고, 머리칼이 반짝이고, 바람이 불어 속눈썹이 간질간질하고, 손바닥에 땀이 나서 내내 축축하고, 하릴 없이 신발 앞부리로 애꿎은 땅만 푹푹 쑤셔대다가, 사랑을 말하지 않고 돌아설 수 있을까. 뒤돌아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가며 그러지 않을 거야. 마음 먹을 수 있을까. 선택은 어떤 마음으로 하여금, 더 이상 거스를 수 없게, 잘라낼 수도 없게, 여린 핏줄 아래를 흐르게 한다.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본작의 나, 박지운, 지영현은 영원히 남을, 지독한 사랑을 원한으로 꾸며 가린다. 그렇게 하면 덜 아프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진짜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갑자기 그 마음이 증폭되었다는 이유로 그 마음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만 이야기 하고, 자신이 그 마음을 선택했다는 점을 애써 모른척 한다. 다만 나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고, 자신이 내린 선택을 직시하는 데에 성공한다. 누군가를 보물처럼 사랑하는 마음은 꽁꽁 숨겨 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전달 됨으로써 더 안전해진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 나쁘게 먹은 마음은, 품어 놓는 것이 아니라 풀어 이야기해서만이 비로소 비워진다. 악의가, 원한이, 사랑이, 저절로 나를 찾아온다고 해서 그에 휘둘릴 수 만은 없다. 인간은 마음의 주인이고, 원한을 거두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마음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일은, 예상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고, 그 오늘들을 차곡차곡 쌓는 인고로 쟁취 된다.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진짜 내 이야기를 세상에 말하는 오늘들을 차근히 견디는 투쟁으로 이룩 된다. 요컨대 본작은 원한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랑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그리고 그 마음이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에 양산을 들고 꽃신을 신었던 멋쟁이 할머니가 가난한 집에 시집 와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폭력과 체념에 닳을 대로 닳아져 버린 할아버지 곁을 지킨 강인함에 대해, 막둥이가 학교를 갈 수 있도록 새벽 잠을 설치고 고무신을 품고 기다렸던 모정에 대해, 나는 가끔 생각하고 목 메 한다. 폭력적인 할아버지를 평생 원망하고 증오했으면서도 그를 사랑했던 복잡한 마음을 생각하며, 외로워할 그를 생각하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깊은 마음을 상상하며, 가슴 졸인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 전에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자기 자신부터 용서하였기를 기도한다. 할아버지 마음의 주인은 할아버지였고, 갑자기 찾아든 악의에 그 자리를 내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 바람대로, 할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으셨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할머니 가는 길을 따라 걷지 않으실까 한다. 두 분이 걷는 길 위에서, 이제는 할머니가 당신 마음의 온전한 주인이 되셨기를, 그래서 발걸음이 조금은 더 가벼워졌기를 기도한다.

 

 

엄마는 가끔 내 몸이 마르고 유연성이 없는 것이 꼭 할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아현이가 키가 크고 말랐으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몸매인 것도 꼭 할머니 같다고 한다. 흑백 사진 속에서도, 컬러 사진 속에서도, 할머니는 마르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에 키가 크다. 이제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머니의 멋쟁이 오빠(남동생이실까 혹시)도 마르고 키가 컸다. 그렇게 멋있게 늙은 할아버지는 작은 외할아버지 다음으로 처음 봤다. 그 분은 누이의 장례에도, 매부(혹은 매형)의 장례에도, 멋지게 차려 입고 와서 오랫동안 우셨던 것 같다. 누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매부(혹은 매형)를 원망하면서도, 그의 마지막 길에 진심으로 슬퍼하며-그것이 용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눈물 흘리는 모순적인 마음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숨결을 불어 넣은 누군가의 삶이 들어와 있고, 우리 삶은 또 다음 생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지운과 뢰이한의 삶이 보애의 삶으로, 또 진과 나의 삶으로 이어졌듯이. 불쑥. 악의가 찾아와도, 삶은 계속 될 것이다. 마음의 주인이 삶에 찾아 온 불운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 닿은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나와 우리 남매가 할머니 남매를 닮은 것처럼, 당신들이 품었던 그 마음들도 이어 닮았으면 한다. 오래 안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럴 수 있다고 벌써 믿고 있다. 이야기는 계속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 말고, 나의, 당신의, 우리의 진짜 이야기가.

 

* <대불호텔의 유령>의 굿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굿즈, 오르골! *

 

그리고 뜬금 없지만 지난 주말에 방문했다가 대만족했던 청수당 공명 >_<

분위기 전반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차 너무 맛있게 마셨어요. 녹차<<<<<<<<<<홍차였다는 메뉴 선택의 꿀팁 전수...

위치는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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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독서는 발전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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