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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데이비드 O. 러셀] 개기월식 / 영화 리뷰, 후기, 그리고 셰퍼드페어리 전시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데이비드 O. 러셀] 개기월식 언니. 순수함과 순진함의 차이가 뭐야? 사람들이 나는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지 혹은 순진하지만 순수하지는 않지 찡긋 ㅇ_<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P는 종종 메신저에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내가 백과사전도 아니고, 인생 한참 더 산 스승님도 아닌데 까지 입력했다가 메시지를 지웠다. 물론 내게도 그런 문장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순진과 순수 중에 어떤 쪽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본 적 없으니 잠깐 골똘해진다. 글쎄. 순수(순수할 순 純, 순수할 수 粹)는 불순물 없이 깨끗한 상태를 두 번이나 강조해서 지극하게 깨끗하다는 뜻이겠고, 순진(순수할 순 純, 참 진 眞)은 깨끗하고 진실한 상태라는 뜻이겠네. 보통은 순수가 정결.. 2022. 11. 10.
[가장 매혹적인 - 한정현] 세상의 시작과 끝 (담양 용마루길 산책) [가장 매혹적인 - 한정현] 세상의 시작과 끝 오뉴월에 뼛 속까지 얼어 붙는 듯한 비명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척 보기에 나이상, 분위기상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이상한 조합을 이루는 여성 셋이 절벽을 바라보며 서늘한 비명을 내질렀다. 안돼. 어떻게 해. 같은 소리가 사건의 위중함을 짐작케 했다. 가파른 악산은 아니지만, 등산로 건너편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고, 등산로와 절벽 가운데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어려 보이는 여자가 입을 틀어막고 거의 울다시피 하고 있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머리를 뽀글뽀글 볶은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어린 여자를 일으켜세운다. 아마도 아는 사람들인가보다. 이윽고 마스크를 쓴 다른 여성이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자세를 낮추고 등산로 끝으로 발을 옮겨 빼꼼히 계곡을 내려다본다.. 2022. 10. 12.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 에피] 민들레와 담배 / 에피 작가님께서 우수 리뷰로 선정해주신 바로 그 리뷰!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 에피] 민들레와 담배 비가 부스스 쏟아지던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버스에 올라 급히 서울을 떠나며, 내가 아는 당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엄마는 당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했다. 할아버지가 4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며 오토바이로 출퇴근 하셨던 것, 까맣고 멋있는 오토바이 뒤에 수박, 참외, 참조기,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집으로 오셨던 것, 그러다 수박이 톡 도로에 떨어져 쪼개어져 버리면 그것을 노끈으로 동여매 아무렇지 않은 척 부엌에 가져다 두셨던 것, 매일 새까만 머리에 포마드를 얹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빗고 정리하셨던 것. 나는 직접 보지도 못 했던 것들이 생생히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수다쟁이 엄마를 생각하며,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2022. 10. 1.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호텔 앤 레지던스 서울 용산, 슈피리어 스위트] 환대(歡待)의 의미 / 럭셔리 호캉스 리뷰, 후기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호텔 앤 레지던스 서울 용산, 슈피리어 스위트] 환대(歡待)의 의미 "어서오세요 잭슨, 기다렸어요."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형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을 뜻하는 말인 손에, 높여 부르는 말인 님을 붙여,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라면 일상적으로 손님으로 높여 부르는 우리 나라 문화 특성과, 손님을 높여 대접하고 손님 역시 대접 받음에 상응하는 가치를 갚아야한다는 민족 고유의 심정적 부담감 때문인지, 우리는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초대 받아 누군가를 찾아가는 문화에 서툴다. 매번 초대 때마다 쭈뼛대는 나와는 달리, 그는 늘 자연스럽게 나를 '환대'해왔다. 부산히 엘리베이터에 올라 다른 사람들과 한 데 섞이자 엘리베이터에 뻑뻑한 침묵이 들어 찼다. 잠시 그 진공 상태에.. 2022. 4. 13.
[포엣룸 poet room] 창 밖은 시들이 물결 치고 지붕 위는 계절이 지나가는, 거센 파랑(波浪) 끄트머리, 하얀 해변. [포엣룸 poet room] 창 밖은 시들이 물결 치고 지붕 위는 계절이 지나가는, 거센 파랑(波浪) 끄트머리, 하얀 해변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골목을 떠나는 겨울이 미련이 가득 담긴 발걸음으로, 눈꽃으로 닿았던 어느 벽과 고드름으로 얼었던 어느 처마 끝을 손끝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하나씩 눈에 담아보기도 하면서, 떠나고 있었다. 눈꽃 대신 거리 가득 내릴 꽃비가 질투나는지, 바람이 보도 블럭 위를 괜시리 쌩, 쌩. 거리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옷이 출렁출렁 춤을 췄다. 주춤 거리던 봄은 겨울의 맹렬한 여운에 겁을 잔뜩 먹고 작전을 바꾸었는지, 확 다가오지 않고 슬그머니, 엉금엉금. 떠날 채비를 하는 겨울 주변에 모여들었다. 겨울이 약해지길 기다렸다가 홱 자리를 차지할 심산이다. 봄은 말갛고 상.. 2022. 3. 22.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 위스키 리뷰 맞습니다. 문래 최고 핫플 무정형에서 새로운 위스키 발굴한 후기입니다.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셰익스피어는 영미 문화의 시원을 빚었다. 그 영향력은 4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살아남았고, 이후 태어난 문화 전반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광야(황야)', '마녀', '황야의 마녀'의 이미지나 비극적인 현실을 밤, 비극의 극복을 아침으로 비유한 스칼렛 오하라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원형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기 마련이다)" 와 같은 라인은 에서, 뿌쉬낀의 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확대 재생산 된 원수 지간인 가문의 자제들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 금지된 사랑은 에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채 복수에 대한 열망에 시달리지만 딜레마 앞에서 시행에 나서지.. 2022.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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