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먹어봤다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 위스키 리뷰 맞습니다. 문래 최고 핫플 무정형에서 새로운 위스키 발굴한 후기입니다.

by 헌책방 2022. 3. 18.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셰익스피어는 영미 문화의 시원을 빚었다. 그 영향력은 4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살아남았고, 이후 태어난 문화 전반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광야(황야)', '마녀', '황야의 마녀'의 이미지나 비극적인 현실을 밤, 비극의 극복을 아침으로 비유한 스칼렛 오하라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원형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기 마련이다)" 와 같은 라인은 <맥베스>에서, 뿌쉬낀의 <벨낀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확대 재생산 된 원수 지간인 가문의 자제들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 금지된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채 복수에 대한 열망에 시달리지만 딜레마 앞에서 시행에 나서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올드보이>의 오대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의 휴 글래스와 같은 캐릭터는 <햄릿>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그리스로마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황야의 세 마녀는 눈알과 이(치아)를 돌려가며 사용하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세 마녀 그라이아이를, 레이디맥베스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와 연적에게 잔혹한 복수를 일삼는 제우스의 부인 헤라를 연상하게 하는 등 그리스로마신화의 세부적 설정과 인물의 모습을 작품에 차용한 경우도 있다.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현대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작품을 써낸 위대한 작가들도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정밀하게는 그리스로마신화가 원형이라고 봐야하겠다. 
최근 SM의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이미지를 차용하여 유명해진 이미지인 'KWANGYA(광야)' 또한 <맥베스>가 무대를 시작하고 닫는 순간을 의존하는 이미지인 광야(황야)와 이어진다. 심정적으로 더 가까운 곳에도 광야가 있는데,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도 광야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이 시는 해석이 분분해서 정확한 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광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만큼은 이견이 없어 항일 정신을 대표하는 저항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은 광야 너머의 세계, 에스파식 표현을 빌리자면 Cosmo(s)(SM 세계관에서는 KOSMO로 표현되며, 이곳이 바로 Next Level 인 것으로 보인다.)에 닿기 위해서는 태초부터 존재하였고, 태초 이래 자연이 지배해 온 땅으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생산성 없이 버려져 있는 척박한 땅인 광야에 우리가 이곳에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려 가꾸어,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하여금 뿌린 씨앗이 노래로 태어나게 해야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맥베스>와 <광야>에서는 각각 세 마네와 초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들이 등장하며, 이 메시지가 왕이 되어 나라를 슬기롭게 다스리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맥베스와 버려진 땅 위에 황망히 서있는 식민지 시대의 우리 국민들에게 '극복'의 방법을 일깨워주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러나 맥베스는 파멸을 선택하고, 조선인들만은 만세운동을 위시한 저항운동을 선택하여 넥스트 레벨,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광복에 닿는다. 광야는 질서가 없고, 가꾸는 이 없는 버려진 척박한 땅이지만 cosmos는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무작위 한 것으로 보일 뿐 질서 있는 시스템을 갖춘 우주다. 혼돈(chaos)와 대비 되는 개념으로, 질서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한다. cosmo가 우주라는 의미 말고도 politan, print 등과 결합하여 도회적인, 유행에 앞서는과 같은 정제된 이미지로 쓰이는 이유는 우주가 곧 균형과 질서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우주 공간에 지금은 옳지만 시간이 지나면 틀려지는 것도 있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옳은 상태를 유지하는 진리도 있는 이유는 이렇듯 우주가 스스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균형 있는 우주에 닿고, 질서의 도래를 맞기 위해서는, 다음단계를 밟기 위해서는 척박한 광야의 고독을 거쳐야만 한다. 역경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비정한 현실이 서글프지만 광야에서의 균형은 뼈 아픈 조정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광복은 치열한 저항정신과 소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군중의 용기로 만들어진다. 선정은 경청하는 귀, 손바닥에 의견을 올려 그 무게가 비슷하도록 조정할 수 있는 촉각, 애정어린 눈빛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수억광년의 시간을 흘러 밤하늘에 뜬 별이 내뿜는 빛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광야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부른 노래로 이끈 곳, 균형과 질서가 지배하는, 아름다운 우주에서 오는 메시지여서일지도 모른다.


요즘 일본 위스키가 워낙 비싸지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생산하는 문화는 제한적으로 섭취하는 편이다. 역사적인 문제도 있고, 감정적인 문제도 있다. 할아버지는 누이들이 일제에 혹시라도 잡혀갈까 전답을 팔아 급히 시집보내고, 남은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혈혈단신 만주로 떠난 사람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전쟁에 참여한 후 돌아온 고향에서, 할아버지는 무일푼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해야했고, 난중에도 새생명은 속절 없이 태어났다. 60년에 태어난 막둥이가 자라 학교를 갈 때가 되자 할아버지는 막둥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할머니는 새벽녘 댓돌에 놓인 막내의 신발을 품고 있다가, 다른 식구들이 깨어나기 전에 따뜻하게 데워진 신발을 신겨 학교에 보냈다. 가끔 할아버지는 막둥이를 몰래 학교로 보내는 할머니를 때렸다. 독립을 위해 광야를 떠돌고 부르짖던 사람은 집에 와서 아내를 때리기도 한다. 아버지로부터 나는 이 이야기를 시간이 날때마다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망가지게 한 모든 것을 증오했다. 시간이 지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꼽고 다자이 오사무를 가장 애처로운 작가로 생각하게 되는 등, 마음의 어떤 부분은 변하기도 했지만 일본이라는 국화가 줄기 속에 칼을 숨기고 죄 없는 자들을 찔렀던 과거와,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화와 칼을 싫어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으며, 그들의 문화를 배우기보다 적개심을 키우는 소녀시절을 지나, 일본 위스키도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코스크가 아니라 테이스팅 때문에 잠깐 벗었던 순간을 포착해버린 것입니다... 쥬르륵


그래서 신슈 마르스 증류소(Shinshu Mars Distillery)도 잘 모르고, 그 증류소에서 만들었다는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도 경험해 본 바 없으며 전혀 지식이 없었다. 균민의 추천은 일단 따르는 편이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늘 놀랍기 때문에 경험해 보았다. 첫인상과 반감이 무색하게도 제품은 이름만큼이나 질서와 균형감이 촘촘했다. 일단 전체적으로 오일리한 스모키가 깔려있는데 롱로우의 촉촉한 오일리라기 보다는 짜르르한 오일리다. 그러니까 오일리함과 스모키함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스모키함을 오일이 감싸고 있는 인상이다. 와인 캐스크에서 숙성을 마친 제품이라 당연히 와인 특유의 과실, 와인의 풍미가 느껴지고, 마무리는 달큰하지만 쌉싸름한 신사과 위에 약간의 시나몬을 뿌린 듯한 맛이 느껴진다. 비유하자면 신 사과를 크고 얇게 저민 한조각 위에 너무 달지 않은 청포도를 얇게 저며 촘촘하게 놓은 뒤, 사방에 스모키함을 꼼꼼히 바르고, 끝부분에는 꿀과 시나몬, 얼그레이를 떨어트려 마무리하고 커다란 오일 방울에 넣은 다음 오일 방울을 터트리고, 앞부분부터 차례대로 입 안에 넣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혀 위에 바짝대서 누르거나, 씹는 것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오일 방울이 바퀴 역할을 하면서 혀 위를 가볍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드라이한 와인을 쓴 모양이고, 여기저기 찾아봐도 이 제품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주관적 경험 묘사만 가능하다. 그 대신 신슈 마르스 증류소에 대한 정보를 약간 찾았는데,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지역,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리우는 중부 산악지대에 있고, 5월에도 산 정상에는 눈이 녹지 않은 상태일 정도의 기후와 청정함이 특징적이라고 한다. 덕분에 증발량(Angel's Share)이 그리 많지 않고, 위스키에 쓰이는 물도 깨끗하고 산속에서 나는 물 특유의 풍미가 있다고 한다. 증류소 근처에서 놀고 있는 원숭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이랑 가깝다고.

뭔가 난장판...


제품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맛들의 균형감도 질서 있는 우주를 연상하게 하지만, 위스키를 마시며 라벨을 보면서, 개인적인 감정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적, 역사적 배경이 모두 우주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극적 역사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만든 모든 것을 혐오하지만, 혐오하는 땅에서 난 작가의 작품과 글, 위스키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야 만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이에요. 하고 싶었지만, 실례인 것 같아 밖에 나가서 자리를 비웠을 때 슬쩍 봤는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있었다. 아, 한강. 그가 돌아와 다시 책을 읽고, 나는 위스키를 마시며 타인의 독서를 마음껏 곁눈질했다. 갑자기 펜을 꺼내서 무심하게 좍좍 밑줄을 긋길래 나도 모르게 "그러면 다음에 읽을 때 어떻게 해요?" 했더니 그가 놀라서 "네? 아... 네네... 아 다시 읽을 때 밑줄만 읽어도 되잖아요."하기에 나는 "아!" 했다. 균민과 옆에 앉은 친구가 대화를 듣고 웃었다. 광야 위의 번민하는 영혼들 사이로도, 시대는 흐른다. 봄이면 말을 타고 초인이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흐드러지게 매화가 피고, 동박새가 찾아온다. 우듬지 가득 붉은 이슬을 먹고 자라 이슬만큼이나 붉은 꽃이 공기를 찢듯 터져나온다. 그렇게 막을 수도 없이, 고통스럽다고 피할 길도 없이. 균형이나 질서라는 이름의 시스템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우주는, 피할 길도 없이 자연스럽게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는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 나는 광야 위에서 우주를 마셨다.

 

📸📸📸

1. 우주



2. 넥스트레벨로 안가면 큰 일 날 것 같은 황야의 댄서들의 몸짓, 틱톡하시는 분들 sseol_vely 팔로우해주시고, 맞팔요청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낄낄

 

3. 비슷한 사진이 참 많구나

 

4. 균민과 직원분. 직원분 비랑 준호 닮았음....... 균민이야 뭐 문래동 채고미남...... 둘 다 어디보시는지?

문래 최고 미남들이 술을 추천해주는 바로 이 곳! 무정형입니다

 

5. 이 날 균민이 위스키 관련 글 쓸 때 그 정보 어디서 다 찾아보냐고 했는데, 일단 증류소 관련한 역사는 컨텐츠 많이 읽어보고 정리해놓은 것이 있음😏 근데 메인 증류소라 마르스처럼 모르는 곳에 대한 정보는 검색해서 공부한 뒤에 글에 반영하고 있다. 제품 자체에 대한 공부는 순전히 라벨에 의존한다. 어차피 위스키 풍미는 주관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소량생산하는 요즘의 위스키들은 특히 배치마다 풍미가 다르고, 뚜따하면 시간과 보관환경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풀리기 때문에 때에 따라 느껴지는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니 제작 과정, 도수, 배치번호, 증류소가 발표한 공식적 테이스팅 노트 등 객관적 정보를 라벨로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작업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위스키 마실 때는 꼭 라벨 확인!

 

6. 신디랑 토토로랑 무정형 갔던 날

 

7. 마침 시나몬 뿌린 사과를 받았었다

 

8. 식전주 겸 샘플 칵테일도 먹었다

 

9. 무정형 화장실 포토스팟, 개행복

 

10. 라쎄이 사진이 아직 남아있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질문은 댓글로 or 인스타그램 seol_vely로 부탁드립니다.
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http://www.instagram.com/seol_vely


  


+
더불어 책, 영화, 드라마, 전시, 음악 등 각종 문화생활을 더 풍부하게 즐기고 싶은 힙한 현대인 당신을 위한 큐레이션을
카카오뷰 채널 헌책방이 무료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채널 추가 해주시면 문화생활도 트렌디하지만 깊게 즐기는 데에 도움 되는 인사이트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헌책방

오늘, 당신에게 추천할 책과, 문화생활 이야기

pf.kakao.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