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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8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밥 두 공기 (feat.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용산에서의 북캉스, 연휴 맞이 담양호 용마루길 산책)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밥 두 공기 엄마는 엄마 집 부엌에 딸린 세탁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앞집에,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단풍이 사방에 내려앉기도 전에 앞집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만 빨갛게 탄다. 붉은 노을이 앉아 주홍빛으로 물든 나락이 가득한 논처럼, 앞집은 사시사철 가을 풍경이 가득하다.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는 그 가옥은, 뭐랄까. 부지런하신 주인 할머니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공간이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단단히 동여맨 할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 마루를 닦고, 토방을 쓸고, 마당 구석 구석을 청소하고, 장독을 밝히고, 우물을 씻기고, 심지어 여름에는 우물 주위에 시멘트 바닥의 등을 하얀 솔로 촥촥 때를 밀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앞집 할매.. 2022. 10. 5.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 유진 오닐] 무적(霧滴) 속, 무적(霧笛).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무적(霧滴) 속, 무적(霧笛).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엄마가 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날 거라고 예고한 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엄마 나이로서는 이미 노산이었던 데다가, 그로부터 2년 전 쯤 임신 후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 갑작스러운 유산을 겪은 적이 있어서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동생을 기다리던 나와 루나에게도 그 일은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엄마가 병원으로 실려갔을 때 하필 아빠가 출장 중이어서 내가 보호자로 병원을 따라갔었다. 속절 없이 무너지는 엄마 곁을 지키면서 다시는 동생 생길 일이 없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동생이 태어난다니 믿기 어려웠다. 지금은 두 분이 의 60대 한국인 편을 찍고 있지만, 그때는 부모님의 애정.. 2022. 8. 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당신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당신에게 아니, 도대체 왜 우는 거야. 눈물 앞에서 모든 연인들이 예외 없이 물었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뭘 잘했다고. 얼른 주워 삼겼을 뒤에 이어진 말들도, 발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만 하다고도. 눈물은 최선을 다했다는 표식이었고, 결과와 무관하게 억울하다는 호소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얼른 결정해. 지금 결정해야해. 머릿 속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무기력하게 초여름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 나는 순발력이 좋지 못한 인간이다. 길게 생각하고 오래 고민하고 여러 방향으로 사고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가끔 전 애인들과 멀어진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22. 6. 6.
[농담 - 밀란 쿤데라] 농담(濃淡) 있는 농담(弄談)들로 완성하는 농담(濃談) / 북리뷰, 스포 없는 책 후기 [농담 - 밀란 쿤데라] 농담(濃淡) 있는 농담(弄談)들로 완성하는 농담(濃談) 내 삶은 진지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타인은 나를 늘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고, 나의 인생은 심플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내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은 나로 충분하니까.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유년기 끄트머리에, 엄마와 영화 을 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 보기에 상당히 잔인한 내용이었지만 등장 인물의 사연이나 표정 이면에 놓인 뉘앙스를 엄마가 마치 더빙 입히듯 설명해주셔서 무서움이나 두려움 보다는 슬픔을 느꼈다. 그때까지만해도 세상에는 엄마처럼 사람들의 생각에 깊이 눈 맞추는 사람, 아빠처럼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높이 들어 빙글 빙글 돌려주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 "남생아.. 2022. 5. 2.
[시여, 침을 뱉어라 - 김수영, @ 서촌 체부동잔치집 별관] 그대가 시라면, 침을 뱉어라. / 북리뷰, 독서 일기 [시여, 침을 뱉어라 - 김수영, @ 서촌 체부동잔치집 별관] 그대가 시라면, 침을 뱉어라. 4월이면 다들 꽃놀이를 가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꽃놀이를 가려면 전국의 어디든으로 떠나 흙을 밟아야하는데, 흙을 밟으면 닿는 쇠붙이의 그 서늘함이 심장을 얼어 붙게 한다. 4월 16일. 8년전 나의 생일은 눈물이 채웠다. 차가운 바다에 슬픔이 가득 가라앉았다. 4월 3일.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피지 못한 꽃망울이 흐트러지던 날들이 있었다. 4월 19일. 개표 조작사건에 반발하며 부정선거 무효를 부르짖던 학생들과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외침은 종종 몽둥이 아래 짓이겨졌다. 눈물 많은 나는 그래서 늘, 우연(偶然)히 꽃을 만날때야 그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있다. 씩씩하게 어제를 안고 앞으로 나아.. 2022. 4. 15.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자아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 / 북리뷰, 독서 일기, 책 추천, 후기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자아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 자아(ego)는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고, 존재는 여러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완벽히 파악하여 존재가 본인의 자아와 합일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종종 인간이 짧은 시간 내에도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변덕이 심하고 신념의 뿌리가 얕은 사람인 탓도 있을 수 있겠으나, 어쩌면 그가 최근에 자아가 변화할 수 밖에 없는 변곡점을 지났을 가능성도 있다. 인생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파악한 바를 토대로 스스로 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여 실행하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고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자아의 일부분, 엄밀히 말하면 ..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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