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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밥 두 공기 (feat.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용산에서의 북캉스, 연휴 맞이 담양호 용마루길 산책)

by 헌책방 2022. 10. 5.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밥 두 공기

엄마는 엄마 집 부엌에 딸린 세탁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앞집에,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단풍이 사방에 내려앉기도 전에 앞집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만 빨갛게 탄다. 붉은 노을이 앉아 주홍빛으로 물든 나락이 가득한 논처럼, 앞집은 사시사철 가을 풍경이 가득하다.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는 그 가옥은, 뭐랄까. 부지런하신 주인 할머니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공간이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단단히 동여맨 할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 마루를 닦고, 토방을 쓸고, 마당 구석 구석을 청소하고, 장독을 밝히고, 우물을 씻기고, 심지어 여름에는 우물 주위에 시멘트 바닥의 등을 하얀 솔로 촥촥 때를 밀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앞집 할매가 당신의 손주 코를 풀게 하고, 얼굴을 씻기고, 가끔은 큰 다라이에 따뜻한 물을 채워 등을 박박 밀어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앞집 할머니께서는 유난한 성실함으로 새벽을 깨웠다. 아직 종량제가 정착 되기 전 쓰레기 투기가 극성이던 시절, 주변 빌라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새벽녘 골목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이른 시간부터 열린 창문 틈새로 할머니의 욕지거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어떤 잡것들이 쓰레기를 이렇게 버렸어!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면 누가 치워? 어쩔거여, 이거를! 지면에 옮기기에는 험하지만 정겨운 욕지거리가 더러워진 골목길도 마저 말끔히 쓸어가고는 했다.



며칠 전 엄마 집에 갔는데 주황색 지붕의 할머니 집이 예전과 달라 보였다. 마당 중간까지 잡초가 나고, 장독에서 더 이상 윤이 나지 않았다. 100살 넘은 그 집은, 잘 가꾸어진 오래된 것만이 갖는, 마지막의 유예에서 오는 특유의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할매도 나이 많으셔. 그 집이 100년이 넘었응게. 부지런해서 그렇지, 늘상 집을 쓸고 닦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겄제. 어디 요양원이라던가에서 지내신다더라. 가끔 이틀 정도 집에 오셔서 또 막, 막 다 쓸고 닦고 가셔. 말을 끝마친 엄마 시선 끝에 지붕 뿐만 아니라 마당에도, 토방에도, 그렇게 집 전체에 주변보다 빨리 가을이 내려 앉은 앞 집 할머니 집이 맺혔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무상하게 낡아가는 앞집 풍경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어떤 의지나 존재의 근거, 기본이라고 불릴만한 권리나 심오한 원리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다. 영문도 모르는 채 그저, 태어나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 존재는 하찮고 무의미하다. 그것이 존재의 본질이다. 존재 중에 자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곧이 곧대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간의 욕망이 때로는 최악이고, 현대인의 마음 속에 네크로필리아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순순히 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거대한 이유와 공인된 역할이 없기 때문에, 아름답다. 파괴적인 욕망과 파괴를 사랑하는 마음을 벗기 위해 사력을 다해 무의미한 노력을 하고 있기에,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 신으로부터 받은 사명이나 거대한 가치를 이룩하기 위한 메커니즘의 한 부분으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 이 삶 끝에 기다릴 명백한 결론,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삶을 조금 더 나은 것으로 이끌려는 허망한 노력이 있기에, 대견하다. 우리 삶이 무의미한 축제의 어느 한복판에 자리 잡은 보잘 것 없는 이야기지만, 바로 그 때문에 빛난다. 본작은 이토록 거대하고 아름다운 아이러니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역설로 설명한다.

 

 

본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의 삶이 무의미의 축제로 요약 되는 이유에 대하여, 등장인물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통해 설명한다. 에피 작가님의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가 그러하였듯이, 일상적인 보통의 이야기는 보통의 사람에게 더 반짝이게 다가온다. 공감(한 가지 공 共, 느낄 감 感)의 특성이다. 나의 이야기일 때 지극히 평범하고 별 의미 없었던 감정들이, 타인의 이야기가 되면 마음을 움직이면서 반짝인다. 우리는 가끔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할 때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을 직시한다. 라몽은 친구 칼리방에게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바꿀 수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에 저항할 방법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한다. 안간힘으로 세상을 버티던 누군가는, 나는, 이 간단한 방법으로 오늘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감각을 익히고, 큰 의미 없는 일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진지한 고민과 사유는 늘 아름답지만, 실존은 무상, 무위함과 맞닿아 있고, 인간의 의사소통은 완벽한 진담이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유쾌함과 농담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끔은 진지한 사유를 무상한 유쾌함으로 전환해 보는 것도 좋다. 물론 우리 삶이 무상한 농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사유라도 진지해야 하는 것이 균형을 이룸에 있어서는 탁월한 선택이겠지만. 늘 라몽의 방법대로 오늘을 대할 수만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농담> 같은 삶 앞에 정도(바를 정 正, 길 도 道)가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다시, 그리하여 우리 삶은 무의미의 축제다. 다른 무의미한 길을 응원하며 함께 춤을 추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 없이, 무상함이라는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시끌벅적한 긴 퍼레이드(parade)다.

 

 

돌아가신 저 앞집 할아버지가 목수셨대. 외할아버지네 댁도 그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거야. 생김새가 거의 비슷해불자나. 늙고 죽으면 다 소용 없는데도, 다 알면서도, 저 집 할머니도, 너그 할아버지도, 그렇게 열심히 사셨다. 그게 인생일지도 몰라. 저 집만 보면 마음이 참 그렇다. 엄마는 낡은 세탁기 위에 손을 올리고 주름살을 구기며 웃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가꾸셨기 때문에 사람 없는 집에 여태 저렇게 잘 버티는거지매. 인간의 무상한 노력은 아름답다. 영원하지 않아도, 삶이 반짝이며 나아가게 한다. 한참을 같이 그 지붕을 내려다보다 엄마는 먼저 부엌으로 돌아섰다. 아이고, 밥 채려야제, 내 정신 좀 봐. 의미 없이 사라져버리는 삶을 이야기하다가도, 엄마는 밥을 차린다. 밥심으로 살기 위해서. 밥심으로 자식들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삶은 무의미의 축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꺼이 축제를 춤으로 수놓는다. 이 축제가 누군가가 정한 의미에 기속 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춤이 더 자유롭다. 더 아름답다. 무용하게 어둠을 뚫고 사라지지만 의미를 찾고 있다. 긴 연휴. 밤이 내리는 창 멀리, 찹쌀떡~ 메밀~묵. 찹쌀~떠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인구 절벽을 겪는 작은 시골 마을의 텅 빈 골목에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지나간다. 먹고 사는 일이 참 질기다 싶으면서도, 그 단순한 반복이 우리가 무의미한 춤을 추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면, 질겨서 다행이다. 나는 그 날 무의미의 축제에서 춤을 추기 위하여, 엄마가 차려준 밥 두 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책 읽기 정말 좋은 장소였던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용산

북캉스 할 호텔을 찾고 있었다면 정말 추천합니당!

한 건물 안에서 식사, 오락까지 한큐에 해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CGV 용산도 가까우니까요 :)

 

 

본문에 등장한 앞 집 정경입니다. 평화롭고 아름답네요.

 

그리고 제가 글쓰는 데에 가장 큰 영감을 얻는 가족과 함께 담양호 용마루길 산책을 다녀와서 그 풍경도 함께 기록해봅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도톰한 맨투맨 입고 다녀오면 정말 딱 좋은 곳이라

전라남도, 특히 담양쪽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혹은 광주나 근처에 사신다면, 방문 추천해봅니다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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