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모양 크래커 - 조예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디엠함에 새 메시지가 깜빡였다. 팔로우가 서로 맺어져 있지 않고, 피드에 글 한 편 없는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작가님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한마디가 절박해 보여서 새벽 한 가운데가 뜨거워졌다. 없으면 죽는 것도, 있어야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두 글자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낼 만큼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종종 어떤 이는 사랑이 없으면 죽고, 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타인을 구원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구원 받는 것이 사랑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구원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계기가 되거나, 사랑의 결과가 갖는 한 모양이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구원했다고 해서 나아간 사랑은 부채감이 닳으면 함께 쪼개진다. 하트 모양 크래커처럼. 부피감을 잃고 쪼그라든 심장처럼.
그럼 무엇이 사랑이지. 나는 그 짧은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사랑에 빠졌던 순간들을 생각했다. 상실의 가능성만으로도 심장을 쪼그라들게 하는 소중한 가족들, 고등학생 시절 무작정 검사를 꿈꾸고 동경했던 것, 어슴푸레한 새벽녘의 글 쓰는 연필 소리, 까만 밤에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학회에서 MT를 갔다가 벽장 안에 함께 쪼그리고 잠든 동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두근거림, 긴 연애를 했던 연인들, 연애로 나아가지 못했던 인연들, 가끔씩 오래 보는 소중한 친구들, 카카오톡에 오류가 생기면 문자로라도 연락했던 사람들, 지금 마음에 품은 사람까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왜 사랑하는지 생각했다. 일단 저는 작가는 아니지만요. 이유 없이 마음이 쏟아지는 것이 사랑인 것 같아요. 무엇이 왜 사랑스러운지 설명하라고 하면 좋은 점을 100개도 댈 수 있지만, 처음에 왜 좋아하게 됐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잘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사랑 같고요. 이유 없이 사랑스러워 마음에 꽂아 놓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사랑하는 거예요. 상대가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하는지 입력 상태가 한참 오락가락했다. 가만히 기다렸다. 짧은 한 문장이 돌아온다. 감사합니다. 대답 대신 꽃 모양의 스티커를 보냈다. 새벽에 잠 못 들고,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마음이 사랑스러워서. 이름 모를 이의 그 마음을 글로 빚어 마음에 꽂았다.
가을 바람에 들린 책장 사이로 꽂아 놓은 꽃잎이 흩날리듯, 짧은 질문 하나에 막아 놓은 마음 너머로 사랑이 줄줄 쏟아진다. 그러나 그뿐이다. 꽃잎은 잡히지 않고, 벌린 손 틈 사이로 팔랑거리며 멀어진다. 이유 없이 마음이 쏟아지는 사랑의 첫 순간을 빼면, 사랑의 의미는 추적 대상이 될 수 없어지고 만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가 사랑의 대상을 구하고, 자신도 구원 받는 결론에 닿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따라서 사람이 하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불가항력의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힘으로 사랑이 시작 되는 것까지는 같더라도, 그 진행 양상은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누군가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 있는 사람들도 그 사랑의 모양을 달리 인지하고, 기억한다. 공상 과학을 기반으로 세운 배경 위에서 보통의 것과는 다른 모습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주목 받는 조예은 작가의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의 작품들에서, 사랑마저 공산품처럼 대하고 손익을 계산하는 현대인의 자본주의적 태도와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정의 내리려고 하는 허영심 가득한 무의미한 시도들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조예은 작가가 예스24 최근담시리즈로 내놓은 작품 <하트모양 크래커>는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다른 무게와 모양으로 남는지,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는지, 짧고 기발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도예과 동기인 '나'와 산주는 즉흥적으로 졸업 여행을 떠난다. 할 줄 알고,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도자기 밖에 없는 나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나서야 오랫동안 타오르던 도자기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자각 사이에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산주는 나에 비해 천방지축이고, 하나를 질리도록 실컷 사랑했다가 사랑이 끝나면 그 대상을 끝내 증오하게 되고야 마는 타입의 인간이다. 도예에도 주목할 만한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나 끝내 도자기에 질리고 만다. 둘은 즉흥 졸업 여행의 목적지로 양양에 갔다가 어느 수입 과자점에서 하트 모양 크래커를 사서 나눠 먹는다. 크래커 곽을 열자 사랑하는 대상을 떠올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나는 선뜻 사랑하는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헤맨다. 생각에 잠긴 채 크래커를 다 먹고 박스 바닥을 보자, 이 크래커는 사실 저주 크래커여서 조금 전에 떠올린 대상을 싫어하게 된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산주는 분통을 터뜨리지만, 나는 어떤 것도 떠올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안도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으며 도자기 말고도 좋아할 것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오래도록 좋아하는 걸 그만둬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산주가 증명한다. 나는 도자기를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했던 마음을 일순간 접을 수는 없고, 따라서 도자기를 앞으로도 좋아하겠지만, 도자기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것만은 그만 두기로 한다. 산주의 마음과는 달리 나의 마음은 불같이 타오르지도 않고, 그래서 재가 되어 날리지도 않는다. 타올라 재가 되어 흩날리는 산주의 마음은, 그 다음 사랑에 빠지면 다시 하트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그는 하트를 품고, 또 다른 사랑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산주는 걱정할 필요도 없이 또 다른 하트를 품으러 서울로 돌아가리라.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세상이 망해도 좋아하는 마음은 죽지 않는다.
본작은 '나'와 산주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통해 저마다가 사랑하는 무엇을 사랑할 때 취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고, 어떤 것도 정답이라고 불리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산주의 사랑은 다 타버리면 미움으로 바뀌어버리지만,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사랑의 순간만큼은 다채롭고 빛난다. '나'의 사랑은 기운이 없고 따라서 큰 인상도 남기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꾸준하다. 더 이상 크게 빛나지 않아 언젠가 잊힐 하트도 영원히 가슴 속에 남는다.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 사랑은 '나'와 '산주'의 것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그저 나의 고유한 모델이다. 아마 나는 책을 쓰고 글을 쓰는 이 일을 평생 열정적으로 좋아할 것이고, 나를 만든 가족의 손길을 영원을 넘어 기억할 것이고, out of time에 닿을 때까지 은은하게 그를 사랑할 것이다. 문득 책장 너머로 흘러 넘치는 꽃잎들의 색과 모양이 다른 것이 보인다. 길 위에서 만난 꽃들은 늘 다른 향기와 표정을 가졌었다. 자주 들여다보지 못한 꽃잎들이 혹시라도 바깥 바람에 바스러져 재처럼 날릴까 봐 얼른 제자리로 꽂는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눈에 담아본다. 하트를 안고 다른 하트를 찾아 나서기로 한 '나'를, 그리고 그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됐다.
맥주를 마시던 M은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일갈했지만, 요즘 <환승 연애>라는 예능을 매주 챙겨 본다. 헤어진 연인들을 한 집에 모아놓고 새롭게 인연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설정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어쩐지 그 안에 살아 있는 감정들을 모른척 할 수가 없다. 깨져버린 하트를 붙잡고, 매달리고, 매 회차 울고, 새로 다가온 하트 앞에서 어째야 할지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애처로움을 지켜 보면서, 갈 곳 잃은 사랑들은 어디에 가서 쌓이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종종 화면으로 들어가서 우는 그 사람을 안아주고 싶다. 다 타버린 하트를 품은 채 사랑했던 순간을 미워하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며, 주저 앉아 그저 우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하트들이 화면 밖으로 쌓이는 새벽녘, 일주일 전에 왔던 그 디엠이 떠올랐다. 그런데 사실은 사랑이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가진 것들도 너무 다 달라서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그렇게 덧붙였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대답 없는 마음으로도 구원 받을 수 있을 만큼 심장이 단단해지게 하는 것이 사랑이고, 대답 없는 사랑에 울고 지치는 것은 집착이고 매달림이고 욕심인 것 같아요. 그러니 너무 사랑에 아파하지 말아요. 아프게 하는 감정과 사랑을 헷갈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오지랖을 부렸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실존은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 묻고 답하는 과정으로 이룩되고, 사랑이라고 해서 내 존재가 실존하는 과정과 다를 것은 없다. 급히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서 대화로 돌아갔지만, 상대방 정보는 삭제 되어 있다. 이용자가 아니라는 회색 글자가 망연히 액정 위로 떠오른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내게 내 생각을 물었을 뿐이지 정답을 원한 것이 아니니, 내 이름을 평생 사랑으로, 사랑을 이유 없이 마음이 쏟아지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이로 기억하겠지. 어쩌면 그는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는 자신 안에서 대답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유 없이 마음이 쏟아지고, 명분 없이 무엇인가가 사랑스러워질 때, 주저 없이 사랑으로 나아갈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대답했던 어떤 새벽을 떠올리면서. 아, 그것도 참 괜찮은 것 같다. 익명의 그도 그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대답하며 자신의 사랑을 가늠했을 것이다. 그 묵직함의 무게를, 그것이 실제로 존재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지웠다. 소슬한 가을 바람에 때늦은 꽃내음이 묻어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있다.
본작은 예스 24 최근담 시리즈로 전자책 형태로 출간 되었기 때문에, 사진은 주말 일상으로 채워봅니다 :)
일단 안다즈 서울 강남 조각보에서의 애프터눈티타임!
나란히 총총 걸어서 신사까지 갔어요. 하늘도 예쁘고, 날씨도 좋고. 정말 데이트 코스로 걷기에 딱 좋은 거리기도 해서,
이 코스 커플에게 안성맞춤!으로 추천해요 :)
K 오라버니 덕분에 하루종일 호강한 날.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 좋은 음식을 함께 하니까 더 행복했어요.
여전히 클래식하고 맛있었던 스페인 클럽! 간은 조금 셉니다..ㅎ.ㅎ
마지막으로 서울유스클럽의 모임을 했던 호텔 카푸치노의 루프탑 바와 파티가 끝나고 북캉스를 즐겼던 룸까지!
가성비 정말 좋은 호텔이더라구요. 역시 강추해봅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질문은 댓글로 or 인스타그램 seol_vely로 부탁드립니다.
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www.instagram.com/seol_vely
댓글로 신명나게 이야기 나누는 중이에요.
여러분께서도 독서 후에 남은 감상을 다른 사람의 감상으로 새롭게 느끼고 다듬고 채우는 과정을 함께하세요!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독서는 발전합니다>_<
(본문에 대한 영감도 인스타 디엠으로 받았으니까요 :)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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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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