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 박완서] 고목(古木)에 부치는 편지
당신은 한복에 새초롬하게 노란 빛으로 반짝이는 호박을 달고,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셨다. 소가 먹을 여물을 썰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쇠죽을 끓이고, 간밤에 누렁이가 퍼질러놓은 소화의 흔적을 치우셨다. 바쁜 새벽을 떠나 보내고 목욕탕 의자 위에 앉아 지팡이에 기대 볕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눈곱도 안 뗀 손주들이 우당탕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할아부지 머리 까까머리라며 당신의 까슬한 머리를 짚고 빙빙 도는, 막내 아들이 낳아다 준 해맑은 늦손주들을 깊이 아끼고 사랑하셨다. 주말에 당신을 보러 가는 우리 마음도 설렜었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됐을 때쯤에서야, 나는 당신이 우리를 향해 짓던 해사한 표정이 비단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 영혼이 새까맣게 타버려 바람결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작은 두메 산골 마을에서도 차례로 젊은 청년들과 처녀들을 징발해갔다. 당신은 전답을 모두 팔아, 우는 누이 둘을 모두 시집 보내고, 남은 돈을 챙겨 만주로 떠났다. 당신은 오직 살고자 했으며, 살 길을 트자 비로소 뜻을 찾았다. 그 뜻 끝에 보상과 위로가 달려있지는 않았지만, 삶은 계속 되었다. 딸을 시작으로 아들을 셋이나 낳고도, 느지막이 아들이 하나 더 생겼다. 당신의 실존은 생존과 동의어였고, 가장이 짊어진 무게는 점차로 막대해졌다. 당신은 바구니에 담겨 언제 터질지 모르면서 부풀려지는 풍선 같았다. 좀처럼 삶은 당신에게 쉬운 길을 내주지 않았다. 또다시 전쟁이 발발했다. 산 가슴팍으로 깊숙이 안긴 땅에 둥지를 튼 당신은, 낮에는 군인에게 밤에는 빨갱이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야 했다.
당신은 전쟁이 끝난다 해서 삶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님을 알고 마음을 굳게 다잡아 먹었음에도, 제비 새끼들처럼 자신을 바라보며 까악거리는 아이들과 가냘픈 아내를 바라보며, 시시각각 망가져갔다. 돈이 없으니 자녀들 중 누군가는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흔한 신파 드라마가 집에 깃들었다. 막둥이의 국민학교 등교를 막는 완강한 남편을 피해 아내는, 새벽마다 막내 아들의 신발을 품에 안고 뎁혀, 비몽사몽인 아이를 깨워 학교로 보냈다. 아내가 의견을 따라주지 않자 남편은 아내의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아이들의 눈은 날카롭고 차가워졌다. 오로지 이 부조리를 깨고 나가는 것, 아버지의 그늘 밖에서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목표가 되었다. 스스로의 존재 의미는 그 뒤에나 골몰할 일이었다. 먹고 사는 일은 힘이 세서, 어느덧 아이들의 삶은 아버지의 그것을 닮아갔다. 내내 공허한 아버지의 눈빛에서 벗어나려 했던 막둥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어린 딸들을 키워냈다. 딸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 혼자 서서 삶을 살고자 했고, 그리하여 아버지의 날카롭고 깊은 검은 눈동자를 똑 닮은 청년으로 자랐다.
폭력은 세습 되고, 전쟁의 상흔은 전쟁의 매개 없이도 대물림 된다. 어쩌면 다행이랄까. 어린 딸들은 새까맣게 타버린 할아버지의 영혼과 벗어나겠다는 욕망으로 가득해 외려 공허한 아버지의 눈빛으로부터 멀리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이 도피를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방조했다. 딸들은 자라 폭력이 남긴 상흔을 가여워하고, 안아주고, 사랑하면서도, 그 슬픈 역사가 자신마저 할퀴도록 가만 허락하지 않았다. 죽은 폭력은 다시 반복 되어서는 안되는, 그래서 남은 자들이 기억해야 하는 한 때일 따름이다. 세찬 바람이 낙엽을 다 휩쓸어가고, 폭우가 가지를 꺾고 피부를 할퀴어도, 벌거벗은 채 외로이 손으로 하늘을 받치고 선 나목(裸木)은 봄을 기다린다. 앙상히 뼈를 드러낸 산천에 뿌리를 박고, 꽃이 피는 계절을 기다린다. 열매를 맺기 위해, 그 싱그러운 영양분을 이 앙상한 땅에 갚기 위해.
박완서 선생님의 첫 번째 작품인 <나목>은 전쟁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전쟁처럼 남는 삶을, 할아버지 당신이 살았어야 했었을 시절을 그려낸다. 본작은 은밀하지도 않고, 어떤 서스펜스도 없지만, 독자로 하여금 침을 삼키고, 숨을 참으며 읽어내려가게 한다. 물론 본작은 생생하고 또렷한 작품의 환경과 그 안에서 경의 심리가 끝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세밀한 묘사와 압도적인 필치로 탁월하게 그려내어, 박완서 선생님 작품 특유의 정적이지만 속도감 있는 몰입도를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빠르게 달리는 케이티엑스 안에서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면, 빠르게 지나가면서도 풍경의 순간순간만은 마치 사진 찍듯이 또렷이 인지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어 하염 없이 바라보고는 한다. 본작은 표현론적 관점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동시에 본작이 높은 몰입도와 공감도를 유도할 수 있는 이유는 먼 세월을 건너 현재에도, 고목(마를, 시들 고 枯, 나무 목木)들 사이에서도 살아있음으로 푸르름으로 찬란히 빛날(빛날 경 炅, 본작의 주인공의 이름) 날을 기다리는 나목(벗을 라 裸, 나무 목 木)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피부로 느낄 만큼 가깝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에 한층 더 애착을 가지고 몰입할 수 밖에 없다. 본작은 전후 한국 사회를 담았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특히 작가의 전쟁에 대한 사적 기억과 박수근의 만남 등을 담고 있어 개인사적 기록의 의의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본작의 스펙트럼은 과거에 대한 기록물에 그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현재의 서울과 전혀 닮지 않은 경의 세계는, 그 본질로 파고들면 여전히 현재에 닿고 있고, 나아가 몇 가지 이유에서 지금의 서울이야기에 다름 없는 것이 된다.
첫 번째는 사랑이다. 지나고 보면 항상 답은, 구원은, 사랑에 있다. 본작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삶에도 기적처럼 찾아오는 것이 사랑이고, 우리에게는 생각할 틈도 없이 사랑으로 달려가는 것 외에는 어떤 다른 선택지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전쟁과 폭력은 상대를 분별하여 비극으로 현화하지 않는다. 젊디 젊던 오빠들이 홑이불 위에 흥건한 피와 너덜너덜한 살점으로 떠난 후에, 경은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아픔에 산송장처럼 말라 비틀어져간다. 사랑은 그런 틈에도 피어나 경을 찾아온다. 박수근을 모델로 하는 옥희도, 태수, 스쳐 지나가는 미군. 경은 엄마에게서도 근무하고 있는 PX에서도 생명력을 발견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 앞에 나타난 남자들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그저 얕은 삶의 존속을 야망으로 삼거나, 고목(枯木) 같이 공허한 영혼에게서는 어떤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자신이 여전히 세상에 화가라는 포지션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부단히 애쓰는 옥희도에게만 맹렬하게 뛰는 사랑을 느낀다. 그녀의 사랑은 끝내 옥희도의 아내와 고소한 땀 냄새가 나는 막내아들에게까지 닿는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말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 태수와의 결혼으로 맺는다. 사랑은 누구와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빚는지와 상관 없이, 그저 멈출 방법 없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달려갈 수 밖에 없어서 깜깜한 계동 거리를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의 뒷모습에 사랑을 보내는 것이다. 다른 이를 맘에 품은 연인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해서, 껴안는 것이다. 그가 그렸던 그림 한 폭만으로도, 그는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은 김장철에 그 고요한 숨을 내쉬며 봄을 기다리는 나목 곁을 지나는 여인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가슴 쓸어내리며 희망을 품는 것이다. 자신이 고목이 되지 않도록 붙들어 준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녀를 그림으로 그려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쏟아지듯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은, 구원이 은행잎처럼 가을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은, 1950년대의 서울에서나, 2022년의 서울에서나, 다름 없이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는 나무의 이미지, 의미다. 본작은 박수근이 그리던 나무-고목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나목이었던-, 경의 삶의 터전이자 죽음과 파괴의 상징인 고택으로 지어진 한때 나무였던 존재들, 어머니와 죽어있는 것과 다름 없는 생기 없는 삶을 유지하는 인물들을 표상하는 고목(枯木), 무엇보다 겨울을 버티며 헐벗은 야윈 정맥을 퍼렇게 드러낸 나목과 오랜 세월 풍파를 겪으면서도 가을이면 단풍잎을 와르르 토해내는 나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그림으로써, 우리가 모두 고독한 나무 한 그루들임을 이야기한다. 전쟁은 경의 삶이 죽음보다도 덜 생동하는 허망하고 무상한 것으로 추락시키지만, 동시에 그녀를 '먹고 살게 하는' 생계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 간극 사이에서 경은 필연적으로, 지극한 현실을 살아내는 자아와 지금의 자신을 만든 과거의 자아의 중첩의 괴리가 낳은 광기와 겉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살아 숨 쉬던 나무였던 엄마가 오로지 죽기 위해, 그러나 죽지 못해, 야윈 삶을 버티는 고목으로 퇴락해가는 모습은 경의 공포에 불을 지핀다. 탄탄한 나무로 지어져 고색창연하던 고택이, 전쟁의 포화로 가족의 웃음 소리 가득하던 정다운 시절을 잃고 허물어진 채 을씨년스러워지는 모습을 보며 경 또한 함께 무너진다. 다른 나무들과 숲을 이루던 한그루 나무였던 경은, 이웃한 다른 나무들과 숲이 내지르는 소리 없이 거대한 비명 속에서 귀를 막지도 못하고 신음한다.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삶에 배반하는 삶의 수단, 과거와 현재, 이 간극들에서 오는 불안함과 자신의 존재 의미와 존재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공포감은, 노란 은행잎 위에 누워 그 푹신함을 깔개이자 이불 삼고 싶은 충동과 그 은행잎에 누워 보는 노란 은행잎의 향연과 여전히 형형하게 파란 하늘의 또렷한 색채적 대비를 통해 표현된다. 노란 은행잎 침대는 평화의 상징이자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서울에 전쟁으로 인한 균열이 일어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살아있음 자체를 배반해야 하는 이지(異志) 적 선택을 강요 받지 않아도 되던 시절, 오로지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 생을 살고 생을 위한 선택이 생과 괴리가 없는 상태 자체를 표상한다. 그저 노랑빛의 향연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경은 갖지 못하는 것들을 갈망한다. 희생과 죽음의 표상인 고가는 헐리고, 대신 다부진 양옥이 들어섰지만, 어엿한 한 가족의 축으로 어른이 된 경은 여전히 은행잎 침대 위에 눕고 싶어 한다. 본작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0년 미 군정 통치 시절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 경은 노란 은행나무 아래 코발트 블루빛 코트를 입어 다시 한번 색채적 대비를 완성한다. 이는 아직 이 땅에 삶 속에 균열은 여전하고, 경 또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음이 드러낸다. 한 그루 나무들인 우리들은 여전히 숲이 내지르는 비명의 흔들림 속에서 위태로운 뿌리를 내딛고 오늘을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경이 그러하였듯, 사는 것. 사는 것처럼 사는 것. 사랑하며 사는 것. 오늘을 사는 것 뿐이다. 나무처럼.
세 번째는 진정한 생존의 의미다. 무작위로 쏟아지는 운명의 폭력적인 탄환 속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부지한다. 그러나 경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생존(살 생 生, 있을 존 存)은 살아 있음, 존재하고 있음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가 생각하는 생존은 차라리 -자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인지하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존재함이라는 상태를 완성하는- 실존(生存)에 가깝다. <나목>은 이경의 근무 일지이자 퇴근길 수기다. 그녀는 어머니, 백부 일가 등 친족 뿐 아니라 어둠 속에 내재한 비평화가 무서워 달음박질 치면서도, 주변을 바라보고 관찰한다. 옥희도, 황태수 뿐만 아니라, PX에 근무하는 여성들, 청소하는 잡역부들을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떤 것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가늠한다. 퇴근 시간대에 같은 대문을 통과한다는 사실만으로 복도에 가득했던 공감대가, 문밖으로 나서면 순식간에 기화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사회와 공동체는 어떤 형태인지 생각한다. 다방 유토피아에서 태수와 처음으로 함께 차를 마시면서, 새삼 나의 이름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하여 돌아본다. 태수의 형 내외, 특히 태수의 형수를 마주하면서, 그녀가 어떤 생각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추측하고 자신의 것은 어떤지 상기한다. 옥희도의 가족들을 관찰하면서, 타인의 사랑과 행복은 어떤 모양이고, 자신이 꾸리고 싶은 사랑과 가족은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본다. 요컨대 경은 주변을 관찰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자신이 누구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뚜렷지 못한 깨달음의 편린들만으로도 그녀는 부산의 친척 동생에게 편지를 부칠 수 있다. 자신은 고택을 지키고자 하고 도망치지 않겠노라고. 한국 전쟁 직후 PX라는 특수한 배경 위에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조건들이 모여 만들어진 본작의 특수한 소설적 배경은, 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진정한 생존의 의미는 숨 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누군가 하는 질문의 대답에 따라 삶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귀결함을 어렴풋하게나마 자각할 수 있게 한다. 10년 뒤 경과 태수 부부는 옥희도의 유작전을 함께 보고 나온다. 은행잎이 쏟아지는 풍경 속에 태수와 나란히 앉은 경은, 문득 그의 얼굴에 그어진 주름살에 키스를 퍼붓는다. 그것은 야망(희망)과 실존 의식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 온 태수에 대한 연민이자, 고목인 줄로만 알았던 태수 또한 나목임을 깨닫고 태수에게 전하는 사과이자,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존을 이룩하여 어엿이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사랑의 발로다. 본작은 지금 당장 생명력으로 찬란(빛날 경 炅) 하지 않아도 한그루 나무들인 우리는, 나목들인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 그대로 기대어 모여 숲을 이루어 살고 오늘을 살면서, 봄과 같은 외부적 환경의 충족 없이도 진정한 생을 이룩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 갈등의 골짜기를 건너가야 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비로소, 호박을 달고 공허한 눈빛으로 처마 끝을 바라보던 당신이 고목이 아니라 고목(옛, 오래될 고 古, 나무 목 木)이었음을 깨닫는다.
당신이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11월의 나무들이 시시각각 나목이 되어 간다. 이제 곧 당신의 기일이다. 한 많은 이 땅에서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러야 했고, 아무도 모르고 기억해 주지 않는 저항의 시간들을 어둑한 방에 홀로 남아 허망하게 견뎌야 했고, 폭력에 물든 자신의 한 조각을 떼어내려고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치며 상모를 돌렸고, 아내가 자리를 보존하고 누워 있던 긴 세월을 자책하며 보내야 했고, 아내가 떠나고 한 달 뒤 속죄하듯 그 뒤를 따르던 당신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당신께서 당신의 막둥이 아들에게, 그래서 결국은 나에게, 전쟁이 남긴 상흔의 편린들을 물려주셨음에도. 당신의 뒷모습을 사랑한다. 당신의 모든 흔적을 사랑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길잡이 없이 혈혈단신으로 치러야 했던 전투 같던 삶의 고단함을 이해한다. 예닐곱쯤 됐었던 해였던 것 같다. 한 달 새에 두 번의 죽음을 겪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꽃상여를 타고 떠나면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막둥이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큼 울지 않았다. 막둥이 아들의 딸은, 당신의 늦손주는, 겨울바람에 말라 비틀어져가는 해바라기 꽃밭 앞에 앉아, 훠이훠이 바람결에 형형색색 종이를 나부끼며 먼 길을 떠나는 꽃상여를 울며 쳐다보다 까무러쳤다. 당신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 자체였지만, 나에게는 봄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고목(枯木)이었지만, 나에게는 고목(古木) 이자 나목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먼 세월을 건너 지금에서야, 전쟁과 폭력 없는 곳에서 안식하시라는. 긴 겨울을 건너 봄에 닿아, 해사히 경(炅) 하셨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낸다.
* 인스타그램 친구이자 북인플루언서 질문하는 책들님의 주관으로 <나목>을 읽게 되었고,
예스24 북클럽에서 작품을 읽었습니다.
이북으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나무와 관련한 이미지를 착실히 모아왔습니당 :)
순서대로 순창군 강천산-코엑스-제주도의 광경이에요!
요즘 빠져 있는 셰퍼드 페어리 작품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질문은 댓글로 or 인스타그램 seol_vely로 부탁드립니다.
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www.instagram.com/seol_vely
댓글로 신명나게 이야기 나누는 중이에요.
여러분께서도 독서 후에 남은 감상을 다른 사람의 감상으로 새롭게 느끼고 다듬고 채우는 과정을 함께하세요!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독서는 발전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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