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크리스토퍼 놀란] 일상은 운명보다 위대하다
[인셉션 - 크리스토퍼 놀란] 일상은 운명보다 위대하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위대한 음악가였다. 파가니니, 베토벤 같은 악성( 樂聖)이 되고 싶었고, 스즈키, 하농, 체르니 같은 기본 교재로 연습할 때 유독 심하게 짜증을 부렸다. 서울로 콩쿠르에 나갔던 날, 턱에도, 여린 손가락 끝에도, 굳은살 한 점 박히지 않은 하얀 아이가 1등을 거머쥐는 것을 보면서, 나는 평생 2등에 머물 것임을 깨달았다. 음악가로서 원대한 업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 선택한 꿈은 검사였다. , 의 주인공들처럼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법률가가 되고 싶었고, 큰 사건만 도맡아 해결하는 대단한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에 진학하던 해에 로스쿨이 도입되었고 가까스로 2학년 때 법학과를 복전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우여곡..
2023. 6. 9.
[나목 - 박완서] 고목(古木)에 부치는 편지 (북리뷰, 북에세이, 독서모임, 독서일기)
[나목 - 박완서] 고목(古木)에 부치는 편지 당신은 한복에 새초롬하게 노란 빛으로 반짝이는 호박을 달고,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셨다. 소가 먹을 여물을 썰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쇠죽을 끓이고, 간밤에 누렁이가 퍼질러놓은 소화의 흔적을 치우셨다. 바쁜 새벽을 떠나 보내고 목욕탕 의자 위에 앉아 지팡이에 기대 볕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눈곱도 안 뗀 손주들이 우당탕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할아부지 머리 까까머리라며 당신의 까슬한 머리를 짚고 빙빙 도는, 막내 아들이 낳아다 준 해맑은 늦손주들을 깊이 아끼고 사랑하셨다. 주말에 당신을 보러 가는 우리 마음도 설렜었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됐을 때쯤에서야, 나는 당신이 우리를 향해 짓던 해사한 표정이 비단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 영혼이 새까맣게..
2022. 11. 23.
[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 우리 포물선이 겹치는 순간. / 무비 리뷰, 영화 일기, 영화 후기, 왕가위 작품들 넷플릭스 서비스 개시한 기념으로 시리즈로 감상중
[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 우리 포물선이 겹치는 순간. 특이한 선글라스를 끼거나 볼 때마다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곱슬거리는 노란머리, 만일을 대비하여 입은 트렌치 코트(우의), 붙여 놓은듯 시종일관 손가락 위에 놓여 있는 하얀 담배. 짧은 커트머리, 탄탄한 몸, 사랑스러운 눈빛, 큰 노래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몸짓. 때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눈빛에 다칠까봐, 다친 내 눈빛을 들킬까봐, 만일을 대비하여(for a rainy day), 선글라스를 끼거나, 레인코트를 입는다. 사람과 사람의 부딪음은 아이러니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인생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포물선과 같다. 차원을 넘나들며 커졌다 작아지는 벤다이어그램과 같다. 각자는 운전석에서 각자의 템포로,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
2022.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