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13

[인셉션 - 크리스토퍼 놀란] 일상은 운명보다 위대하다 [인셉션 - 크리스토퍼 놀란] 일상은 운명보다 위대하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위대한 음악가였다. 파가니니, 베토벤 같은 악성( 樂聖)이 되고 싶었고, 스즈키, 하농, 체르니 같은 기본 교재로 연습할 때 유독 심하게 짜증을 부렸다. 서울로 콩쿠르에 나갔던 날, 턱에도, 여린 손가락 끝에도, 굳은살 한 점 박히지 않은 하얀 아이가 1등을 거머쥐는 것을 보면서, 나는 평생 2등에 머물 것임을 깨달았다. 음악가로서 원대한 업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 선택한 꿈은 검사였다. , 의 주인공들처럼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법률가가 되고 싶었고, 큰 사건만 도맡아 해결하는 대단한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에 진학하던 해에 로스쿨이 도입되었고 가까스로 2학년 때 법학과를 복전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우여곡.. 2023. 6. 9.
[나목 - 박완서] 고목(古木)에 부치는 편지 (북리뷰, 북에세이, 독서모임, 독서일기) [나목 - 박완서] 고목(古木)에 부치는 편지 당신은 한복에 새초롬하게 노란 빛으로 반짝이는 호박을 달고,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셨다. 소가 먹을 여물을 썰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쇠죽을 끓이고, 간밤에 누렁이가 퍼질러놓은 소화의 흔적을 치우셨다. 바쁜 새벽을 떠나 보내고 목욕탕 의자 위에 앉아 지팡이에 기대 볕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눈곱도 안 뗀 손주들이 우당탕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할아부지 머리 까까머리라며 당신의 까슬한 머리를 짚고 빙빙 도는, 막내 아들이 낳아다 준 해맑은 늦손주들을 깊이 아끼고 사랑하셨다. 주말에 당신을 보러 가는 우리 마음도 설렜었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됐을 때쯤에서야, 나는 당신이 우리를 향해 짓던 해사한 표정이 비단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 영혼이 새까맣게.. 2022. 11. 23.
[토르: 러브 앤 썬더] 신은 죽지 않았다. / 쿠키 2개, 영화 리뷰, 후기 [토르: 러브 앤 썬더] 신은 죽지 않았다. 믿음은 순전히 믿음을 행위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믿음(믿을 신 信)은 인편(사람 인 亻)에 맡겨 말씀(말씀 언 言)을 전한다는 뜻으로 편지, 서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이 편지가 담고 있는 정보(말씀)를 신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면서 믿음에까지 그 의미를 확장하게 되었다. 정보는 독해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쓰여지지만, 텍스트 특성상 실시간으로 변하는 독해자의 생각에 맞춰 대응, 설득할 수는 없고, 따라서 독자는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에 따라 정보가 사실인지 판별하고, 그것을 믿을지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순전히 믿음을 결정한 자의 책임이자,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마치 사랑처럼. 따라서 배신감(背信感)은 신뢰를 준 사람.. 2022. 7. 7.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성부도 - 김홍도] 위로의 수집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성부도 - 김홍도] 위로의 수집 밤과 새벽 사이로 난 가느다란 틈 사이에 앉아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면 사방이 넘실넘실 새살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인생은 늘 쉽고 즐겁지만은 않다. 삶에 필연적으로 동반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눈가에 송골송골 맺혀 남는 고독과, 누구도 완전히 공감해주지 못해서 홀로 공기로 남은 고뇌와 한숨은, 대부분의 순간 사방에 꽂힌 책들과 연필과 종이가 맞부딪어 내는 사각사각 소리가 위로해왔다. 웃음으로 들썩이던 눈꺼풀과 갈비뼈에, 부지불식간에 물기와 고민이 맺힐 때면, 밤의 벽들이 어김 없이 앉은 자리 주위로 빼곡히 둘러앉아 위로를 건넨다. 독서는 이상한 행위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정보, 감정을 흡수하고 연산하면서도 마음.. 2022. 6. 22.
[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 우리 포물선이 겹치는 순간. / 무비 리뷰, 영화 일기, 영화 후기, 왕가위 작품들 넷플릭스 서비스 개시한 기념으로 시리즈로 감상중 [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 우리 포물선이 겹치는 순간. 특이한 선글라스를 끼거나 볼 때마다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곱슬거리는 노란머리, 만일을 대비하여 입은 트렌치 코트(우의), 붙여 놓은듯 시종일관 손가락 위에 놓여 있는 하얀 담배. 짧은 커트머리, 탄탄한 몸, 사랑스러운 눈빛, 큰 노래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몸짓. 때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눈빛에 다칠까봐, 다친 내 눈빛을 들킬까봐, 만일을 대비하여(for a rainy day), 선글라스를 끼거나, 레인코트를 입는다. 사람과 사람의 부딪음은 아이러니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인생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포물선과 같다. 차원을 넘나들며 커졌다 작아지는 벤다이어그램과 같다. 각자는 운전석에서 각자의 템포로,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 2022. 3. 31.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 위스키 리뷰 맞습니다. 문래 최고 핫플 무정형에서 새로운 위스키 발굴한 후기입니다.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셰익스피어는 영미 문화의 시원을 빚었다. 그 영향력은 4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살아남았고, 이후 태어난 문화 전반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광야(황야)', '마녀', '황야의 마녀'의 이미지나 비극적인 현실을 밤, 비극의 극복을 아침으로 비유한 스칼렛 오하라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원형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기 마련이다)" 와 같은 라인은 에서, 뿌쉬낀의 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확대 재생산 된 원수 지간인 가문의 자제들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 금지된 사랑은 에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채 복수에 대한 열망에 시달리지만 딜레마 앞에서 시행에 나서지.. 2022. 3. 1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