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 우리 포물선이 겹치는 순간.
특이한 선글라스를 끼거나 볼 때마다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곱슬거리는 노란머리, 만일을 대비하여 입은 트렌치 코트(우의), 붙여 놓은듯 시종일관 손가락 위에 놓여 있는 하얀 담배. 짧은 커트머리, 탄탄한 몸, 사랑스러운 눈빛, 큰 노래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몸짓. 때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눈빛에 다칠까봐, 다친 내 눈빛을 들킬까봐, 만일을 대비하여(for a rainy day), 선글라스를 끼거나, 레인코트를 입는다. 사람과 사람의 부딪음은 아이러니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인생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포물선과 같다. 차원을 넘나들며 커졌다 작아지는 벤다이어그램과 같다. 각자는 운전석에서 각자의 템포로,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각자가 원하는 크기로, 묵묵히 나아갈 뿐, 타인에게 이 포물선의, 벤다이어그램의 운전대를 맡길 수도 없고, 타인의 결정으로 항로를 수정할 수도 없다. 인생이 포물선이라면, 포물선과 포물선이 만나는 지점을 제외한 각자 다른 포물선 위의 무수한 점들은 한 세계 안에서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인생이 벤다이어그램이라면 교집합을 제외하고는 한 세계 안에서 양립이 불가능한 면들이 있다.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르다. 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사실 때문에 존재들은 만나 서느런 모순을 빚는다. 그러나 그 만남, 찰나의 순간이 따스해서 나는 그 부조화를 사랑한다.
<중경삼림>은 언뜻 보기에는 모순적인 두 단어를 품고 있다. 중경을 따 온 중경 맨션은 각종 범죄가 빈번하게 이루어진 홍콩 중심가의 오래된 상업 건물로, 홍콩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겪은 혼란함, 이 때문에 경찰 번호가 633 넘게 이어져 나가도 통제 되지 않는 무질서와 무절제, 이 악순환에서 쏟아져 나와 다시 악순환이 작동될 원동력으로 순환 속에 편입 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대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경(重慶)은 소중할 중, 경사 경을 써서, 더없이 기쁜 날, 복된 날들을 기원한다. 반면 삼림(森林)은 수풀이 빽빽히 우거진 모습, 초록이 만연한 숲, 평화와 고요가 깃드는 자연스러운 지점을 대표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아이러니하게도 수풀 삼, 수풀 림의 합성어인 삼림은 중경맨션의 이미지와 연결하면 침사추이에 빽빽히 들어선 중경맨션을 비롯한 빌딩 숲을 연상케 한다. 감독은 중경 맨션을 따 중경을, 그 뒤에 삼림을 그대로 합성시켜, 홍콩이 겪었던 고통이 빽빽히 들어선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 빌딩 숲 속, 중경삼림에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년이라고 믿는 한 경찰 223, 하지무가 있다. 삐삐 암호를 만년동안 사랑해. 로 지정해놓는 뻔뻔함의 주인공은 1994년 4월 1일 만우절, 5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 아미에게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 듣지 못하고 차여 놓고도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그녀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한달간 매일 구매하며 그녀를 기다린다. 마침내 5월 1일, 애꿎은 편의점 직원에게 유통기한 지나 폐기처분 되는 통조림의 기분을 따져 묻던 그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달 동안 하루에 한개씩 사들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조리 먹어치워버린다. 그리고 술이나 진탕 먹으러 들어간 바에서, 처음으로 본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로 결심한다. 중경맨션을 근거지로 마약밀매 활동을 하는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묘령의 여성이 바로 들어오고, 그는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호텔 방으로 간다. 호텔 방에서 그녀는 세상 모르게 푹 잔다. 그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실컷 토해놓고도 폭식을 하고,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정리한다. 그는 아름다운 여성은 구두가 깨끗해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의 구두를 넥타이로 문질러 닦는다. 그리고 구두가 말해주는 그녀의 고단한 삶을 희미하게 인식한다. 그녀가 마약밀매를 주도하는 자와 접촉할 때 만나는 장소는 바 캘리포니아, 사용하는 암호는 통조림 위에 새겨진 유통기한이다. 둘의 포물선은 범죄와, 통조림 위의 유통기한에서, 그리고 둘 모두 지독하게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사실에서, 잠시 조우한다.
그리고 이 숲 속에는 경찰 663도 있다. 가끔 상공에서 만나는 승무원을 유혹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고 쿨하게 스스로를 설명하는 그는, 사실 사랑과 실연 앞에서 여리고 깨지기 쉬운 로맨티스트다. 그는 사귀던 스튜어디스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았지만 편지를 뜯어볼 자신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 그가 자주 찾는 포장 전문 야식당의 종업원이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종업원 페이는 그가 너무 좋지만, 실연을 겪고 있는 그와 가까워지는 방법을 모른다. 대신 그의 집주소를 알아내서 범죄에 가까운 주거침입을 자행한다. 야식당 사장인 친척오빠에게는 거짓말하고 업무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가게 밖으로 뛰쳐 나가 그의 집에서 그의 일상을 구경하고, 집을 가꾼다. 그러나 이 주거침입 행위는 결국 집주인에게 발각 되고 만다.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 경찰 663은 그녀와 사랑에 빠져보기로 한다. 둘은 바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는 다음 비행기를 위해 활주로를 닦듯 대청소를 하고, 페이가 준비한 것이나 다름 없는 옷들을 입고 데이트에 나선다. 그러나 한시간 일찍 바에 왔었던 페이는 경찰 663에게 1년 후에 만나자는 내용의 티켓을 발행해주고, 그 편지만 남긴채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린다. 그는 편지를 읽지 않고 버려버리지만 이내 돌아와 내용을 읽어본다. 그러나 그녀가 만든 비행기 티켓은 이미 비에 잔뜩 젖어, 행선지가 먹먹히 흐려져 있다. 1년 후, 페이는 승무원 옷을 갖춰 입고, 야식당으로 돌아온다. 그는 가게를 인수해서 셀프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처럼 California Dreaming이 터질듯한 볼륨으로 틀어져 있다. 제복 입지 않은 모습도 멋있고, 제복 입은 모습은 잘 어울린다며, 서로의 엇갈린 상황을 확인하고 인정한 그들은 포물선은 순간적으로 엇갈렸지만 다시 만난 만큼 포물선이 겹치는 찰나를 연장해보기로 한다. 조금씩 달라져 비로소 중간점에서 만났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일년간 젖은 티켓을 압정으로 게시판에 붙여놓고 보관해왔다. 여행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라고 말하던 그는, 아무데나 그녀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나자고 이야기한다.
중경삼림은 단순하게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이어 붙여 만든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작품은 사랑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고, 마땅히 이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조명하여, 모순을 뛰어 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이지, 사랑의 모양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은유가 많기 때문에 메시지가 확 한번에 읽히지는 않는 편인데 다행히 주인공들의 독백이 감독의 메가폰이 되어 해설처럼 끼워져 있어 왕가위 작품 중에서도 제일 순하게, 친절하게 읽히는 편에 속한다. 특히 마약밀매상 노랑머리 그녀가 극 초반에 '사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 사람은 변하니까.'라고 말하는 부분은 중경삼림이 세우고자 하는 세계관의 중심을 관통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내 주관을 개입시켜 이해(理解, 이치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존재는 상대가 그리고 있는 포물선을 내 마음대로 바꾸도록 만들거나, 내 포물선을 그 가까이 날도록 만들거나, 두 포물선이 만나는 지점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따스한 부조화 안에서 공존한다. 통조림의 유통기한을 바꿀 수 없고, 끝난 마음을 붙잡고 사랑의 유효기간을 만년으로 늘어뜨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두 이야기를 연관 짓는 장소인 포장 전문 야식당과 바 캘리포니아 모두 오지랖 넓고 동네 사랑방 주인장 역할을 하는 주인 아저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거나, 그 동네에서 데이트를 비롯한 각종 약속을 할 때 가장 만만하게 정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라거나 하는 점 때문에 이 가느다란 점들, 두 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이 네 남녀 뿐만 아니라 홍콩의 모두,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객 모두의 이야기, 보편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또한 영국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였던 홍콩에 홍콩과 마찬가지로 식민시절을 겪었던 인도의 평범한 사람들이 건너와 복작복작하게 함께 얽혀 살고 있는 모습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읽기에도 괜찮은 텍스트다.
작품이 지면에서 일일 논하기 힘들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녹여 만들었는데도 산만하지 않게 집중도를 유도하며 관객에게 녹아드는 이유는 단연 비주얼 때문이다. 특히 경찰 223과 노랑머리 마약밀매상의 이야기에서 추격씬과 총격씬은 압도적이다. 초반의 추격씬은 스쳐가는 모르는 사람들, 그러나 그 중에 누군가와 언젠가는 인연이 될수도 있다는 혼란스러운 사실을 흔들리는 화면으로 설득력 있게 담았다. 중반, 후반부의 추격씬과 총격씬은 사랑하는 사람이자 동업자로부터 배신 당한 노랑머리의 흔들리는 심경, 급박한 상황과 배신감, 노랑머리 가발로 자신을 옭아맸던 지난 사랑과 가스라이팅으로부터 탈출한 여인의 해방감을 마냥 시원하지는 않은 찜찜함으로 담아낸다. 또한 불안한 청춘을 설명하기 위해 정성껏 스토리적으로 빌드업하고, 음악(California Dreaming과 몽중인)으로 꿈을, 페이가 몽중인임을, 몽상을, 몽유를 설명하며, 무엇보다 철없고 능청스러운 비주얼로 연출하여 결국에는 페이가 벌이는 주거침입과 스토킹, 물에 수면제를 타고, 전화 녹음 내용을 삭제하는 등 의도와는 별개로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행동들을 관객이 마구 비난할 수만은 없도록, 얼마간은 납득시켜 버린다. 이외에도 바 캘리포니아에서 페이를 기다리고 있는 경찰 663을 묘사하며 그의 행동은 슬로우모션으로, 주변은 하이퍼랩스로 처리하여 상대적으로 느리게 가는 그의 기다림을 표현한다던지, 적나라하다 할 정도로 사실적인 야식당의 위생상태를 슬로우모션으로 훑는다던지, 활강하는 듯한 비행기 소리 직후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경찰 663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기 위해 문을 열고 있는 페이의 손을 카메라 앵글이 위에서 아래로 활강하면서 진입, 촬영하여 소리와 이미지의 연계성을 높인다던지 하는 방식은 왕가위의 연출이 예술임을 시원하게 증명해낸다. 물론 금성무의 조각 같은 외모, 임청하, 왕페이의 개성 있는 아름다움, 양조위 특유의 가련함과 굵직함이 공존하는 미모가 미장센에 화룡점정한다.
문득 마약밀매상과 지무의 사랑은 이야기의 시작점인 중경맨션과 닮아 있지만, 아비와 경찰 663의 사랑은 삼림의 초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감독은 각종 혼란상 속에서도 수풀이 우거진 모양처럼 아름다운 삶, 사랑, 인간상들이 반드시 존재함을 증명하고, 이 이야기가 혼란 속에서도 꽃 피우는 청춘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혼란을 둘러싸고도 삼림처럼 빽빽히 들어선 다양한 군중들의 보통의, 그러나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물들이 이름보다 경찰 번호, 직업, "저기요" 같은 말로 불리는 익명성으로 미루어보건대, 작품은 사실 그 도심을 빚고 있는 것은 빌딩으로 되어 있는 숲이 아니라, 고귀하지 않은 흔한 사랑과 이름 모를 인간들이 만든 숲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중경삼림>은 자기는 제복이 가장 잘 어울려- 귀에 왕왕 대는 목소리를 지우고 제복을 기꺼이 벗어 던지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유니폼을 입었지만 녹색 선글라스만은 벗지 않는. 몰개인화, 개성 없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보다 자신의 개성, 색깔에 더 가까워지고, 자기 색깔을 더 깨끗이 부셔나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과 서로에 대한 인정이 아름다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은 서슴 없이 마약밀매상, 경찰, 잠재적 범죄자의 이야기를 빌려 특별해보이는 이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당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눈이 부시게 태양이 지표면을 달구는 날이면 나는 선글라스를 낀다. 삶이 나를 벨지라도, 내 눈빛을 들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난 터프한 30대니까. 노랑머리 가발 아래, 녹색 선글라스 너머로 가느다래졌을 눈빛을 생각한다. 그게 아직 어린 나의 젊음을 증명하는 가녀림이다. 그러나 포물선이 겹치는 날, 그 가느다란 점 위에 서면, 그 만일의 날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우의를 벗고 비오는 날에 필요 없는 선글라스도 벗고, 가느다란 모순이 후두둑 내리는 하늘 아래, 맨몸으로 부조화를 껴안을 것이다. 그 점 위에서 춤을 출 것이다. 우리의 부딪음은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어쩌다보니 쌓인 선글라스의 순간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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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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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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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도 켈리최 회장님 유튜브에서 보내주는 동기부여 모닝콜 영상을 확인하고,
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현재에 강력하게 집중하며 내 삶을 창조합니다.
I strongly focus on the present and create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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