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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봤다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 -왕가위] 발 없는 새가 되고 싶었던, 발 있는 새의 슬픈 몸짓의 기록 / 넷플릭스 영화 후기, 리뷰, 추천

by 헌책방 2022. 4. 5.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 -왕가위] 발 없는 새가 되고 싶었던, 발 있는 새의 슬픈 몸짓의 기록

정말 봄이 오려는지 요즘 새가 많이 보인다. 뭐가 그리 바쁜지 쉴 새 없이 어딘가를 부리로 쪼아대고, 고개를 쉼 없이 돌리고, 쉬지도 않고 배로 허공에 물수제비를 토도독 뜨며 날아다닌다. 나무에서 나무로 고꾸라질 듯 활강하다가도 이내 곧 톡 하고 튀어 오르며 멀리 대각선으로 난다. 활주도 없이 작은 날개로 어찌나 금방 날아오르는지, 괜히 대견하다. 창 밖에 이름도 예쁠 그것이 꾈꾈 하고 울고 있다. 4월이 울적한 계절이 된 지 벌써 8년이 되어간다. 4월 16일. 8년 전 나의 생일은 눈물이 가득 채웠다. 생일날 눈을 뜨면 거의 대부분의 순간을 울었다. 손에 물이 닿으면 그 서늘함에 소름이 돋았다. 우연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어쩌면 그 날짜는 슬플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홍콩은 청나라의 아편전쟁 패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대영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중국과 홍콩이 홍콩의 영국 할양을 결정한 난징조약 이후에도, 홍콩은 아시아에서 갖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침탈에 끊임 없이 시달린다. 영국이 홍콩을 통지한 지 100년쯤이 되었던 1941년, 일본에 함락, 일본의 패전을 겪고 어느 정도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자유로워지고 나서도, 1960년대에는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와 이에 대항하는 각종 권리 투쟁, 중국 본토의 문화 대혁명의 영향으로 인한 각종 사회 운동, 사회 운동의 흐름에 힘 입어 우위를 점하려고 시도한 이념가들의 대립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국가적 부자유와 개인적 자유, 거시경제의 부상과 가정 경제의 파탄 등 조화하지 못하는 흐름들의 충동 그 한가운데에서 기어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아비정전>은 공교롭게도 1960년 4월 16일, 그 날 시작된다. 아비는 매일 오후 3시,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을 찾아가서 작업을 건다. 그는 그녀에게 그가 오늘 꿈속에 찾아갈 것이라고, 그녀가 이 1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둘은 연인이 되고,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누는 동안 수리진은 걷잡을 수 없이 아비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아비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매여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그녀와의 결혼할 생각이 없다. 결국 수리진은 그를 떠나지만, 그 1분을 영원처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한편 아비는 루루라는 여인과 사귀게 된다. 그를 잊지 못해 밤마다 주변을 전전하던 수리진은 아비가 루루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도 그를 쉬이 놓아주지 못한다. 아비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와 결별한 후, 생모를 찾아 나서기 위해 루루와도 이별하고 필리핀으로 떠난다. 루루 역시 아비를 잊지 못해 그를 찾아 필리핀으로 뒤따라 떠난다.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의 두번째 장편 작품이자 <중경삼림>, <화양연화>, <타락천사>, <2046>으로 이어지는 왕가위표 세계관의 초석을 만든 작품이다. 이는 감독의 배우의 기용과 캐릭터에 부여하는 이름의 동일성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예컨대 <아비정전>의 소려진(장만옥 역)은 <화양연화>에서 소려진(진부인, 장만옥 역)으로 다시 태어나며, 화양연화가 아비정전의 메시지적 후속작임을 드러낸다. 또한 <아비정전>에서 허리도 펴기 어려울 만큼 층고가 낮고, 한두 번 걸어 다니면 꽉 찰 만큼 좁아 보이는 다락방에서 주머니에 행커치프 대신에 냅킨을 접어 넣는 위트 있는 연기로 작품의 문을 닫았던 양조위가 <아비정전>, <화양연화>와 <2046>에서 모두 주모운으로 분하며, 특히 <2046>은 <화양연화>에서 주모운과 진부인이 무협소설을 쓰는 작업을 했던 호텔방의 룸넘버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물론 초기작이기 때문에 후속작들에서 볼 수 있는 뛰어난 미장센과 연계성을 타이트하게 묶어내는 연출력은 조금 덜하지만 왕가위 감독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특히 아비(장국영 역)의 발 없는 새에 대한 라인들과 인물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기억'이라는 점, 아비가 혼자 있을 때만 극을 가득 채우는 틱톡틱톡, 시계 초침 가는 소리, 아비를 입양하여 키운 어머니와 아비가 나누는 대화는 직접적으로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한다. 죽어가는 아비는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새다. 하지만 새는 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새는 죽었기 때문이다. 전에 그랬었지. 내가 정말 사랑한 여인이 누군지 평생 모를거라고. 지금 그녀가 그립다.'라고 읊으며 우리는 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것, 어떻게 남느냐, 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기억의 존속, 영속성이 정말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이 맞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억이라는 결과물을 얼마나 미리 쉬이 속단하고 살면서 현재를 배반하고 있는지, 자유는 어디에서부터 오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비가 기억의 존속, 영속성에 집착하면서 현재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이 무참히 버려지는 것을 시계 초침 소리로 틱톡틱톡하고 청각화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래서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순간들이 촌스럽지는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시간 반목하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던 모자는 털어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한다. 아비를 입양하면서 아비가 18살이 되는 해까지 매달 거금을 받기로 했던 계모는 아비가 18살이 지나자 그를 떼어놓기 위해 그에게 입양 사실을 알린다. 어머니는 이내 곧 자신이 아비를 잃고 싶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실수를 황급히 주워 담는다. 그러나 이미 아비의 그어진 살결은 속절없이 빨간 피를 흘리며 벌어진다. 어머니는 상처 주고 나서야 자신이 아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떠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새를 날아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다. 아비는 정체성적 혼란과 배신감, 자유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매일 자신을 속이고, 더욱 오늘을 살기 두려워하게 된다. 

이외에도 <아비정전>은 상처 받은 사람은 타인을 상처 줄 권리를 얻는가. 심지어 자기 자신을 해하여도 괜찮은가. 타인이 나를 속였다 해서 나도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속일 권리를 갖게 되는가. 그런 행동이 정당한 것이 되는가. 와 같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 답을 알고 있지만 정답과는 다른 대답을 행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질문들을 내포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인간 내면, 근원적 고독감, 폭력적이고 거친 사랑 그리고 그것들이 남기는 오랜 뒷맛 때문에 늘 <아비정전>을 보고 나면 돌자갈에 심장을 굴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행히 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미장센이 중화한다. 왕가위의 미장센은 대부분 배우들이 화룡점정의 순간을 장식하는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들이 미장센을 만든다. 촬영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장국영(아비)은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고, 전설의 속옷 맘보 댄스와 보라색 슬리퍼의 조합은 볼 때마다 아름답다. 장만옥의 아름다움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유가령의 특유의 순수와 타락이 공존하는 페이스도 좋다. 양조위가 외출 준비를 하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은 정말 오래도록 인상 깊다. 특히 경관 역으로 나오는 유덕화는 정말 이때의 미모가 그야말로 정점이다. 게다가, 그가 선원이 되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경관이 되게 되었다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내비친, 사랑하는 어머니가 죽어야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비극적 서사가 아비의 서사와 대조되며, 오랫동안 씁쓸하게 남는다. 솔직히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자기 속에 난 구멍을 타인으로 채우겠다는 마음만큼 무용한 몸짓이 있을까. 아비는 자신이 처음부터 '죽어 있는 새'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발을 뻗어 땅을 짚어, 날개를 접고 스스로를 돌봐야하는 새였다. 살아 있는 새였다. 그는 괜한 심통 때문에 자신을 진짜 아끼고 사랑한 사람을 계속해서 잃으며 자신 안의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 정답을 알면서도 상처받은 마음을 풀 길 없어서 상처 주고, 그 칼에 자기도 베이면서, 아비는 그저 날았다. 발 없는 새처럼. 그는 어쩌면 자신이 물가(阿) 위를 나는(飛) 새라고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땅이 내려앉으면 자신을 삼키는 물일까 봐, 그저 나는 발이 없는 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편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의 말처럼, 한 번도 날지 못하고 나는 꿈속에 살았는지도. 연료도 없이, 고장 난 채로 선 채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밤과 새벽의 틈에도 전화통 앞을 서성이고, 아무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가 기다리겠다고 했던 시간에 전화를 울리는 마음. 사랑은커녕 고마움이나 미안함 한 톨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를 판 돈을 쥐어주고 언제든 돌아오라고 말하는 마음. 거칠고 모진 모서리 끝에, 그것이 세상의 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달리는 것이 사랑이다. 새는 바람과 날개가 아니라, 날 수 있다는 믿음과 나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난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가장 먼저 나누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호텔 24층에서 날아오른다. 그에게는 발도 날개도 없었다. 아비의 생애의 기록(正傳, 정전, 특정인이 살아온 일대의 기록)은 무참한 방식으로 완성된다. 아비는 인생은 당장도 끝날 수 있다고, 결코 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기를, 기억해주기를, 잊지 않기를, 영원처럼 영원히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차마 오늘을 살지 못하는 마음은, 믿음과 사랑으로 날갯짓하지 못하는 새는, 우리 가슴 어디쯤을 쪼아대고 있을까. 4월, 겨울과 봄이 서로 지나치고, 죽음과 생이 지나치고, 새가 스타카토로 허공을 톡톡 가로지르는, 이 계절은. 어쩌면 슬픈 운명을 타고 났을지도 모르겠다. 살구꽃이 다 져서 바람이 불 때마다 소용돌이친다. 속절없이, 진짜 봄이 오려나 보다.

 

1. 본가에서 외출해서 찍은 사진, 동생들이 당황스러워했다. 2. 제주도에서. 3. 옥정호인가에 놀러갔을 때.
1. 본가에서 성묘가는 길에 직은 사진, 2. 횡성 마중 캠핑장, 3. 태안에 캠핑 갔을 때.
1. 홍대에 있는 L7 호텔 루프탑 수영장에서 아침에.  2. 강화도에서.  3. 여수에서.
몬드리안 호텔 호캉스 하던 날.

하늘이 아름다운 어떤 날들에는 꼭 저도 날아가버리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발 없는 새처럼은 아니지만요.

그런 순간들만 모아보았는데, 저는 정말 제 삶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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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나의 개성을 알아차리고,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합니다.
I recognize, appreciate and express my weir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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