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 왕가위] 꽃샘추위를 뚫고 짧게 핀 꽃망울의 애달픈 기억
대지를 떠나는 겨울이 미련이 가득 남은 연서를 보내왔다. 그 열뜬 한기 한 가운데로 한줄기 가느다란 습기가 숨어들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눅진한 구름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 나무 끝에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도시의 통행 버튼을 꺼버린 듯, 한가한 인도 위에 등대처럼 카페 하나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꽃샘 추위. 시 같은 누군가 이맘 때 날씨는 세상을 적실 꽃비를 겨울이 시샘하는 것 같다하여 지은 이름이 등대 곁에 맴돌았다. 나는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려고 등대로 들어섰다. 등대지기의 고독함을 달래주려는 듯, 딸랑 소리가 났다. 카페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 한 가운데 쯤을 지나고 있겠거니 싶은, 어린 커플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솜털이 어려있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들은 무언가, 다투고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그들 곁에 앉아 무엇이 이 어린 연인을 괴롭히고 있는지 엿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멀리에 앉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고개를 들면, 그들은 여전히 연한 가지 대신 양볼에 봄꽃을 가득 피우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거나 내리려는 날 밤, 흔들리는 연인을 보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비극이나 사랑은 평등하게도 갑작스레, 그러나 정해진 수순을 밟는 모습으로, 때로는 마땅히 받아야할 채무를 받으러 온 빚쟁이들의 바쁜 종종 거림으로, 찾아온다. 그칠 기약도 피할 방법도 없이 비가 내리고, 처마 아래에 들러 비맞은 옷을 손가락으로, 손수건으로 터는 것처럼. 그 김에 처마 밑에서 담배를 한모금하는 마시는 것처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신조차 모르게. 1962년 홍콩,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이 여름 밤 무더위를 냉수를 가득 머금어 견디고, 가을의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듣고, 겨울에 내리는 함박눈을 덮어 한 잠을 자고 나서야, 봄이면 햇살 아래 여봐란 듯이, 한 해 중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모양을 따라,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화양연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루 아침에 평범한 삶이 뒤흔들려 무너져버리고, 망가져버린 벽 틈 사이로 스며든 봄이, 그 와중에 행복하고 감사해서. 감히 그 망가짐의 순간들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는 여린 어른들의 이야기다. 떠나버린 시대, 좋았던 나날에 보내는 안녕이다.
홍콩은 청나라의 아편전쟁 패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대영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중국과 홍콩이 홍콩의 영국 할양을 결정한 난징조약 이후에도, 홍콩은 아시아에서 갖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침탈에 끊임 없이 시달린다. 영국이 홍콩을 통지한 지 100년쯤이 되었던 1941년, 일본에 함락, 일본의 패전을 겪고 어느 정도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자유로워 지고 나서도, 1960년대에는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와 이에 대항하는 각종 권리 투쟁, 중국 본토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인한 각종 사회 운동, 사회 운동의 흐름에 힘 입어 우위를 점하려고 시도한 이념가들의 대립 때문에, 1980년대에는 영화 <첨밀밀>이 대표하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한 경제 번영과 쇠락, 본토로부터의 인구 유입과 유출 때문에 따른 다양한 경제, 사회문제를 겪는다. 그리고 1997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중국과는 일국양제를 시행하면서부터, 2019년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시위대를 향한 실탄 사격을 포함한 폭력적인 시위 진압, 당초 송환법 폐지 요구 시위가 민주화 운동으로 확장되는 등의 진정한 독립과 관련한 열병을 현재까지도 앓고 있다. <화양연화>는 특히 홍콩이 의류업, 전자사업의 육성의 사양길 위에서 손 써보기도 전에 오일쇼크로 실패했던, 그리고 계층 구조가 사업의 부침으로 인해 강력한 타격을 받아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홍콩 최대의 경제적 위기의 순간이었던 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동네에서는 기사 딸린 롤스로이스를 타고 있지만, 다른 한 동네에서는 한 집에서도 여러 가정이 빼곡히 모여 살아야 했던 격동의 시기. 진부인(첸부인)과 주모운(차우)은 각자의 배우자와 함께 나란히 이웃한 콘도의 셋방 한칸씩을 빌려 살게 된다. 진부인의 남편은 자주 출장을 다니고, 주모운의 아내는 자주 야근을 한다. 그래서 두 커플의 결혼생활은 웨딩링이 무색하게도 결속보다, 싱거운 소꿉놀이에 가깝다. 유치원에 가면 어느 날은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각자 가정을 꾸려 엄마 아빠를 신나게 흉내내고, 또 어느 날은 철봉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고 건너편에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안하기도 하는, 싱거운 놀이. 배우자 없는 쓸쓸한 밤에 잠겨 각자 저녁을 먹던 그들은 어느 날 문득, 그들이 같은 국수집의 단골이고 같은 책을 즐겨 읽는다는, 비슷한 식성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배우자들이 서로의 배우자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인지 같은 기념품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진부인은 남편과 주모운이 같은 넥타이를 메고 있음을, 모운은 아내와 진부인이 같은 가방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버리고야 만다. 막을 길 없이 비가 내리는 것처럼. 배우자들이 출장과 야근을 핑계로 집을 비운 쇠털 같은 나날, 그들은 서로의 밥친구가 되어 준다. 자신의 배우자가 어떤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쓸쓸한 조명 아래 테이블 위에서 담담히 확인한다. 그러나, 비극이 들어닥쳐도 삶은 계속 되어야 해서 주모운은 결혼하면서 포기했던 꿈,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행동으로 옮긴다. 호텔방을 잡고, 회사에는 나가지 않고 틀어박혀, 글을 쓴다. 그리고 이 일을 진부인이 매일 도우면서 심정적으로 가까워진다. 작가로써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주모운은 비로소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진부인과 함께 생활의 무대를 싱가포르로 옮겨서 비극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예상대로 진부인은 함께 갈 수 없다. 그들은 배반에 배반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운은 더 이상 자신이 배반자들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남편 잘 지켜요." 비가 그치고, 풀벌레가 우는 소슬한 밤. 지켜지지 못한 마음은 지켜야할 필요가 없는 어떤 것을 지켜야한다는 사실 앞에 무너진다. 그는 떠나고, 뒤늦게 황황한 마음으로 그들의 방을 찾은 진부인은 빨간 커텐만이 흔들리며 반기는 방 한가운데에서 눈물 짓는다. "배표 한 장 더 있으면, 나 데려갈래요?" 전하지 못한 말에 스스로 베이면서, 전달받지 못한 말을 가슴으로 알아서. 베인 자리에는 빨간 꽃이 핀다. 1963년 싱가포르. 그리고, 1966년 다시 홍콩. 그리고, 1966년 캄보디아. 부치지 못한 편지, 울리지 못한 전화에 잠 못 이뤄도. 꽃망울을 시샘하는 뒷맛을 남기며 겨울은 떠나고, 꽃은 핀다. 그래서 하지 못할 말을 오래된 나무 사이에 채우며, 모운은 다시 못 올 화양연화에 이별을 고한다.
작품은 아름다운 시절, 비극 속에 찾아온 연애 감정에 대한 단순한 회고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사랑이야기임과 동시에, 홍콩의 60년대와의 작별이기도 하다. 이면에 흐르는 듯 하지만 작품은 자아가 결혼이라는 제도와 조화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외도에 비서를 이용해놓고 비서의 외도에는 엄격해지는 이율배반적이고 불평등한 태도, 집주인은 밤새 사람들을 불러 밤새 마작을 하며 떠들어놓고 세입자는 늦은 밤 귀가에 대하여 다그침 당해야하는 불공정한 공동체에 대한 의식과 사생활 침해, 대놓고 이루어지는 성매매 산업 등 당시 홍콩 사회에 만연했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고, 이것을 보통 사람의 삶과 사랑에 녹여내고 있다. 반세기도 전의 홍콩의 모습을 담은, 제작한지 22년이 된 이 작품이 아직도 사랑 받는 이유는 우리 삶이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사회 문제와 시대상,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 안그래도 입체적인 이 심경들이 다시 복잡하게 변화하는 과정까지, 작품이 상당히 많은 장면을 담아냈음에도 심플한 인상이 남는 이유는 단연 왕가위가 패셔너블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패셔너블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운영하기 위한 철학이 있고,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신념을 효과적으로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전달하고, 또 시대의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시대와 자신이라는 존재간의 거리를 조화로운 공간으로 조성 가능한 시대감각을 갖춘 사람이다. 왕가위는 완벽한 컨테이너에 메시지를 담아 청자에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세월을 뛰어 넘어 아직 작품이 유효한 이유는 패션은 결코 세월에 영향 받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대화하는 연인(그들은 서로를 연인이라고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을 비추는 앵글 움직임이 A<->B 로 움직이다가, A를 비추다 B<-B의 뒤편에서 움직이는 변화에서 대화의 축의 변환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대방(주인공들의 배우자들)들의 뒷모습만 노출시켜서 상대방의 배반에 대한 분노보다 배반에 대응하는 주인공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하고, 중반부에서는 순간적으로 관객을 속여 진부인과 남편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믿게끔하여, 진부인의 눈물의 의미와 배신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처참하게 한 영혼을 파괴하였는지를 목도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들은 뛰어난 미장센을 무기로 프레임을 구성하는 요소들만으로도 조용한 인물들이 간접적으로나마 감정을 토해내게 한다. 특히 프레임에 복도형 이미지를 중심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십분 활용한다. 예컨대 빨간 호텔 복도, 진부인이 빨간 트렌치 코트, 호텔 방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빨간 커텐의 조합은 진부인이 서 있는 좁다랗고 붉은, 경계와 그녀 심경을 지배하는 위태로움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화양연화>에서의 왕가위표 미장센의 백미는 단연 복도형 계단, 조명, 비내리는 환경 속에서, 감히 파격적인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모운과 진부인이 스치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좁은 계단 위 서로를 스쳐야지만이 집으로, 혹은 국수집으로, 다음단계로 지나가야한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이로써 이 짧은 장면으로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그들의 미래와 서글픈 운명을 예감할 수 있고, 관람을 마친 관객들은 긴 내용의 갈무리에 갈음할 수 있다.
아내를 만나면서 포기했던 꿈을 아내가 떠나면서 되찾는 모운과, 그 옆에서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루는 진부인. 그들은 배우자에게 일생을 나눠줬으나 배반을 돌려받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화양연화>의 아름답던 삶, 다정하던 그대, 원만하던 가정, 사랑스러운 조국 중 무엇하나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이 웨딩링으로 대표되는 결속, 결속에 대한 배반, 배반으로 인한 상처, 그리고 상처의 치유에 이르기까지 짧은 순간이나마 이룬 꿈같던 시간. 사랑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분위기, 그 찰나(In the mood for Love). 그들은 아마 남은 일생 동안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세 번 울리고 끊어지진 않는지, 무심한척 귀기울였을 것이다.
창 밖에 어느새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다. 연인은 어느 새 대화가 끝났는지 처마 끝에서 우산을 펴고 택시를 부르는 중인듯 머리를 맞대고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화해했는지 두꺼운 패딩의 뚱뚱한 소매와 얇은 코트의 하늘하늘한 소매 아래로 맞잡은 손이 보였다. 택시가 이 세상이고, 이 세상에는 서로 밖에 없는 듯, 어깨를 기댄 모습이 떠올랐다.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어둑한 대로, 나눠 쓴 우산 아래, 그들의 얼굴만이 훤했다. 화양연화였다.
목동에 위치해 있는 등대 같던 카페, 카페 인 더 우드.
차가 으슬으슬한 저녁을 달래주었다.
이런 예쁜 잔과 티팟이라면 차 우려 마실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귀여운 아이들의, 일상 속 화양연화. 장난꾸러기가 우산 살을 일일 뒤집어 까서 반대 되는 모양으로 들고 간다.
궁금해서 다가가서 물어봤더니 수작업으로 일부러 한 거라고 대답해줬다. 귀여운 아이.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조그만 새에게도 찾아 온 화양연화.
그리고 한남동 필갤러리에서 3월 한달간 전시 중인 모용수 작가님의 <사랑합니다>에서도 화양연화를 발견했다.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니터 먼지를 닦아야겠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질문은 댓글로 or 인스타그램 seol_vely로 부탁드립니다.
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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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책, 영화, 드라마, 전시, 음악 등 각종 문화생활을 더 풍부하게 즐기고 싶은 힙한 현대인 당신을 위한 큐레이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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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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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도 켈리최 회장님 유튜브에서 보내주는 동기부여 모닝콜 영상을 확인하고,
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명상을 통해 내 몸에 필요한 휴식을 선물하고 온전한 치유를 느낍니다.
Through meditation, I give my body the rest it needs and feel the full healing.
나는 알아차림에 머물며, 원하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I stay as awareness and attract what I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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