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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7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삼천 개의 빗방울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삼천 개의 빗방울 비가 오니까 너도 오는구나. 이별 후에 유독 새벽이 길어졌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편인데, 베개에 불면이 숨어 있었는지 박명 사이로 자꾸 뒤척임이 스민다. 지난밤 꿈에는 너의 모습이 말도 없이 제멋대로 찾아와 까만 밤과 새벽 틈 사이에서 눈을 떴다. 투두둑, 발코니 철제 난간에 정신없이 빗방울이 내려 춤추고 있었다. 너와 나란히 앉아 이별을 말할 때 함께 보았던 하늘에 걸린 회색 장막에, 삼천 개의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날 차마 내리지 못했던 그것들이 빗방울이 되어 펼친 손위로 나렸다. 처마 끝에 매달려 나리는 빗속으로 오목하게 손바닥을 반쯤 쥐고, 목놓아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너도 너의 맘대로 꿈속에 왔듯이. 내 맘대로. 주책맞게도 빗방울 소리를 손에 담.. 2022. 7. 19.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성부도 - 김홍도] 위로의 수집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성부도 - 김홍도] 위로의 수집 밤과 새벽 사이로 난 가느다란 틈 사이에 앉아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면 사방이 넘실넘실 새살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인생은 늘 쉽고 즐겁지만은 않다. 삶에 필연적으로 동반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눈가에 송골송골 맺혀 남는 고독과, 누구도 완전히 공감해주지 못해서 홀로 공기로 남은 고뇌와 한숨은, 대부분의 순간 사방에 꽂힌 책들과 연필과 종이가 맞부딪어 내는 사각사각 소리가 위로해왔다. 웃음으로 들썩이던 눈꺼풀과 갈비뼈에, 부지불식간에 물기와 고민이 맺힐 때면, 밤의 벽들이 어김 없이 앉은 자리 주위로 빼곡히 둘러앉아 위로를 건넨다. 독서는 이상한 행위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정보, 감정을 흡수하고 연산하면서도 마음.. 2022. 6. 22.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 위스키 리뷰 맞습니다. 문래 최고 핫플 무정형에서 새로운 위스키 발굴한 후기입니다. [마르스 몰티지 코스모 와인 캐스크 피니시 Mars Maltage Cosmo Wine Cask Finish] 광야에서 우주를 마셨다. 셰익스피어는 영미 문화의 시원을 빚었다. 그 영향력은 4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살아남았고, 이후 태어난 문화 전반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광야(황야)', '마녀', '황야의 마녀'의 이미지나 비극적인 현실을 밤, 비극의 극복을 아침으로 비유한 스칼렛 오하라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원형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기 마련이다)" 와 같은 라인은 에서, 뿌쉬낀의 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확대 재생산 된 원수 지간인 가문의 자제들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 금지된 사랑은 에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채 복수에 대한 열망에 시달리지만 딜레마 앞에서 시행에 나서지.. 2022. 3. 18.
[올드 풀티니 허다트 Old Pulteney Huddart] 엄마, 엄마! 여기 우물 물이 황금빛이야! / 무정형에서 마신 위스키 후기, 리뷰 [올드 풀티니 허다트 Old Pulteney Huddart] 엄마, 엄마! 여기 우물 물이 황금빛이야! 하이랜드 특유의 풍미는 한번 맛보면 쉬이 잊기 힘들다. 하이랜드를 대표하는 증류소인 하이랜드파크, 에드라두어, 오반, 발블레어에서는 하이랜드 특유의 깔끔함과 균형감, 시간이 지나면 가볍게 이어지는 여운이 특징적인 하이랜드 특유의 풍미에 공격적인 피트, 셰리밤, 달콤함, 섬새한 스모키함 등 증류소의 특질을 섞어 제품을 출시한다. 올드 풀티니(올드 풀트니라고 읽기도 한다) 허다트는 하이랜드에 자리잡은 증류소 올드 풀티니에서 출시한 NAS 제품으로 12살 제품이 달달하고, 피트 스타일이 아니라 아쉽긴했지만 깔끔함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경험에 기대가 컸다. 숙성은 엑스버번캐스크에서 1차, 피티드 위스키를 숙성.. 2022. 3. 13.
[첨밀밀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 애프터눈 티와 첨밀밀 (2) [첨밀밀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 달콤한 꿀 끄트머리에 찰싹 달라 붙은 쌉싸름함이 코 끝을 찡하게 하는, 사랑 이야기에 거의 다다랐지만 끝내 닿지 못한, 독립의 길에 함께 나선 어느 동지들의 이야기 애프터눈 티와 첨밀밀(1) 에 이어. [콘래드 37 그릴, Conrad Seoul 37 Gril] 애프터눈 티와 첨밀밀(1) [콘래드 37 그릴, Conrad Seoul 37 Gril] 애프터눈 티와 첨밀밀 여의도의 좋은 뷰 포인트에 레스토랑과 바가 참 많지만, 애프터눈티를 즐길 수 있는 여의도 소재 호텔 중에 단연 최고 festivalsisters.tistory.com 최근에 누군가 리뷰를 부탁해서, 몇년만에 다시 작품을 봤다. '역시 난 불륜이랑 맞지 않아.' 생각하고, 불.. 2022. 3. 11.
[돈 룩 업 Don't Look Up - 아담 맥케이 Adam McKay feat. 넷플릭스 Netflix] 실존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많은 세상, 진정한 종말의 모습은 무엇인가. (작품 후기, 리뷰, 추천) [돈 룩 업 Don't Look Up - 아담 맥케이 Adam McKay feat. Netflix] 실존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많은 세상, 진정한 종말의 모습은 무엇인가. 내일 세상이 종말한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면서 오늘을 보낼까. 생각은 관성이 세다. 어떤 고랑을 한번 흐른 생각은 생각의 주인이 주의 깊게 생각이 어디로 흐르는지 지켜보고, 힘써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흐르도록 관리하지 않는 이상, 계속 그 고랑으로 흐른다. 은 지구 종말이라는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도 인간의 사고가 관성의 법칙에 무참히 종속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인간은 멸종 직전의 순간에도, 인종, 성적 취향, 계급, 경제력, 직업, 출신 국가, 정보력, 정치적 이념, 권력, 종교, 학력(내지는 ..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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