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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 유진 오닐] 무적(霧滴) 속, 무적(霧笛).

by 헌책방 2022. 8. 9.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무적(霧滴) 속, 무적(霧笛).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엄마가 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날 거라고 예고한 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엄마 나이로서는 이미 노산이었던 데다가, 그로부터 2년 전 쯤 임신 후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 갑작스러운 유산을 겪은 적이 있어서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동생을 기다리던 나와 루나에게도 그 일은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엄마가 병원으로 실려갔을 때 하필 아빠가 출장 중이어서 내가 보호자로 병원을 따라갔었다. 속절 없이 무너지는 엄마 곁을 지키면서 다시는 동생 생길 일이 없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동생이 태어난다니 믿기 어려웠다. 지금은 두 분이 <톰과 제리>의 60대 한국인 편을 찍고 있지만, 그때는 부모님의 애정이 각별하긴 했었다. 두 분이 워낙 사이가 좋으니 그런가 보다 싶으면서도, 한숨부터 나왔다. 엄마 건강이 진심으로 걱정 되었고, 태어나면 11살 터울이 날 동생이 어린 마음에도 꽤 부담스럽고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 후로 아빠의 부부동반 모임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엄마 대신 나와 루나가 참석했다. 아빠는 공포의 9일 모임, 개구리 아저씨-개구리 소리를 내는 아저씨가 있어서 붙인 이름-모임 등 우리가 이름 붙여 구분 지어야 했을 만큼 수많았던 모임들에 우리 자매를 계속 끌고 다녔다.

 

아빠의 모임들은 말 그대로 전국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녔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단연 백령도다. 우리는 양 쪽 귀 아래에 키미테를 붙이고도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아빠 양팔에 매달려 입도했다. 물론 천연 활주로로 유명한 사곶해수욕장과 날씨 좋은 날에만 볼 수 있다는 이북의 한 조각 풍경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지만, 손 뻗으면 잡힐 듯이 알알이 공기에 맺히는 안개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우리는 그 날 폐교로 만든 야영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침 이슬이 사라져가는 등굣길 위에 아직 안개만은 짙게 남아 있는 산골 동네에서 자랐지만, 백령도의 안개는 등교 할 때 뺨을 스쳤던 안개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른 면이 있었다. 굵직굵직한 무적(안개 무 霧, 물방울 적 滴)이 속눈썹 끝에 맺힐 것만 같았다. 해무에는 산이 품는 안개와 차원이 다른 묵직함이 있었다. 멀리 무적(안개 무 霧, 피리 적 笛)이 우우웅 울면,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는 아빠 옆구리에 코를 박고, 누가 저렇게 우는 거야. 하고 징징 댔다. 아빠는 안개가 심한 날에는 등대가 뿜는 불빛도 안개가 다 먹어버려서 시야가 어두워서 비가 길을 잃고 헤매니까 소리로 위치를 표시해 주는 것이라고 심상하게 말했다. 밤새 밖에서 떠들며 술잔을 부딪는 아빠들 소리, 두런두런 무언가를 떠드는 엄마들 소리, 그 사이를 안개처럼 파고드는 무적 소리, 그럼에도 여전한 폐교 특유의 밤의 적막함이 그 여름밤 잠을 설치게 했다.
 

큰 빗자루로 쓸어내도 붙박힌 듯 허공에 송골송골 매달려 시야를 가득 채운 해무. 발에 닿는 바닥이 실재하는지 의심하게 했던 깊고 투명한 어둠. 굵은 무적 속에서 웅웅 우는 무적. 유진 오닐의 <밤으로부터의 긴 여로>는 그 눅진했던 백령도의 여름 밤을 생각하게 한다. 본 작은 1912년 8월의 어느 하루,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유진 오닐 본인의 실제 가족사를 모델로 한다. 제임스 티론은 왕년에 잘 나가던 극 배우였지만, 현재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기용은 어려운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그는 투자 목적으로 땅을 마구 사들이면서도 가족이 머물 집 한 채 마련하지 않고, 아픈 아들을 시골의 삼류 의사에게 진찰시키는, 지독한 고바우다. 소통 없이 가족 재정을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또한 강력한 가부장제를 꿈꾼다. 그의 아내 메리는 수녀와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녀였지만, 유명한 배우였던 제임스를 만나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녀는 사랑에 빠졌을 때 더 없이 행복해했지만, 점차 수전노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한다. 안정적인 중산층 출신이었던 그녀는, 결혼 생활 내내 고정적인 보금자리 없이 남편의 투어를 따라서 싸구려 호텔방을 전전하며 점점 더 불안감에 휩싸인다. 심지어 제임스는 그가 가장 돈을 많이 벌던 시절에도 집을 마련하지 않고, 싸구려 호텔만을 고집한다. 떠돌이 생활 중에 둘째 아들 유진-작가 유진 오닐의 둘째 형 역시 죽었다. 그는 본 작에서 잠깐 언급 되는 죽은 형에게 실제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이 의사의 손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호텔 방에서 죽자,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셋째를 낳은 이후로는 급기야 모르핀에 중독 되고 만다. 가족이 기울인 만고의 노력 끝에 그녀는 마약중독으로부터 회복 중에 있었으나, 극의 배경이 된 날은 이미 다시 모르핀에 손을 대고 있던 차다. 본디 긍정적이고 밝고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라, 제정신이 들 때는 애써 밝게 행동하며 가족을 다독이기 위해 애쓴다. 첫째 아들 제임스 티론 2세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고 경제생활도 하지 않으며 천박한 면모도 있는 데다가, 상대를 서슴 없이 비웃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모든 인간, 특히 아버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냉소 주의자다. 실제로는 동생과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둘째 아들 유진이 죽은 후에 태어나 이 불운한 가정의 둘째 아들 자리를 계승한 에드먼드는, 실제로 유진 자신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어린 에드먼드는 마약중독자인 어머니와 자기중심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방탕한 생활로 도피한 형을 동경하여 형과 같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약간이나마 성실함과 염치를 타고 났기 때문인지, 그는 신문사에 취직해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어머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면모를 직접적으로도 드러내는 등 무뚝뚝하고 솔직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진실한 소통을 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 시도들마저 매번 무산 되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설상가상, 돌팔이 의사 진단에 따르면 말라리아지만, 정밀진단은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도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병세에 시달리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본 작이 티론의 가족이 놓인 상황에 대한 어떤 별도의 서술 없이 가족이 보내는 단 하루만을 조명함으로써, 그것도 극작으로, 가족이 겪고 있는 비극적 상황과 그들이 속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낱낱이 표현해 내는 데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각자의 내심을 연극 대사나 니체와 같은 작품 내용을 빌어 전달하는 장면을 통해, 그 인용이 늘 적확하고 그리하여 관객이 그의 내심을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대화 상대방 입장에서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타인의 말을 전하는 것이지 내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을 표현하여, 결과적으로는 진정한 의사소통의 부재를 암시하는 식이다. 티론의 가족은 구성원 각자가 그리고 전체가, 복잡하고 많고 일반인이라면 쉽게 유추하기 어려운 성질의 일들을 겪어 왔다. 그러나 독자와 관객들은, 오전 8시 30분, 낮 12시 45분, 그로부터 30분쯤 뒤, 저녁 6시 30분경, 자정쯤에 총 4막에 걸쳐 나누는 네 사람의 대화만으로, 그들이 어떤 역사를 걸어왔는지 퍼즐 맞추듯이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비선형적으로 이야기가 서서히 맞춰지다가, 극의 마지막 부분이 하나 남은 퍼즐 조각이 되어 마치 화룡점정 하듯이 그림의 가운데에 놓인 빈 자리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야말로, 이 가족이 무거운 안개 속에서 걷고 있는 밤으로 가는 긴 여로(旅路)의 핵심이다.


 유진 오닐의 특유의 음울함은 모호하고 뭉툭하기 보다는 날카롭고 선명하다. 이미지적으로 본 작의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무대를 희미하게 만드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작가가 극작에 숨겨 들어온,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빛나는 '타인에 대한 인정과 이해'를 안개 낀 무대가 숨겨줌으로써, 안개의 본질은 날카롭고 선명한 직시와 화해로 귀결한다. 물론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개와 침묵에 잠겨 있지만, 메리의 긴 독백 끝에 그들이 어떤 말로 나아갈지는 더 이상 작가의 몫이 아니다. 유진 오닐의 실제 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는 본 작을 통해, 실제 작가의 가족도 또 본 작에 등장하는 가족도 결과적으로 화해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작가만큼은 자신을 비극으로 밀어 넣었던 가족들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라는 관점에서 일평생 주도면밀히 직시하였고, 마침내 그들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 안에서만큼은, 반쪽이고 뒤늦은 형태로나마 진정한 소통과 화해를 이룩하였음이 절절하게 새겨져 있다.

 

 

안개는 극 전반에서 어두운 미래, 개인의 비극이 공동체로 번져간다는 의미에서 비극의 확산, 진실한 소통의 부재, 그로 인해 빚어진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 인정 또는 이해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그를 인지하면서 내뿜는 음울함을 표상한다. '집'의 부재는-작가의 가족도 실제로 집 없이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가장의 투어를 따라다녔으니 사실을 반영한 것이지 따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가족이 아무리 소중하고 관계가 단단하더라도, 인간의 속성상 그것의 존재, 실존을 확인할 수 없으면 불안감이 증폭된다는 사실을 조명하여, 인간이 불안함에 취약하고, 물성에 기대지 못하면 물성이 내포해야 할 의미도 믿지 못할 만큼 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개를 비롯한 불안정한 환경과 그 환경이 자아내는 어둑한 감정이, 극 내내 관객이 피로감에 시달리게 한다. 동시에 울기에는 덜 우울하고 웃기에는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안개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모호한 어둠 속을 걷게 된다. 그리고 관객 역시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부조리 속에서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 가족이 겪는 음울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본 작은 안개와 음울을 뚫고 그 너머에 숨은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하여, 불과 한 치 앞도 어둡게 하는 안개 속을 똑바로 쳐다보는 관객에게 만큼은, 안개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더불어 밤에서 떠나 밤으로의 긴 여로를 거쳐 밤에 당도한 가족이 처참한 비극 속에서도, 증오와 다툼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이해와 화해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유진 오닐은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마비 증세를 겪고 있었던 상황에서도 본 작을 써내려 갔다. 이 점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세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이 겪었던 비극의 참혹한 안개 속에서 화해와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 평생을 헤맸으며, 본 작은 그 긴 회한의 고민과 헤맴 끝에서 내린 결론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본 작이 작가의 사후에 발표되면서 그가 네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했다는 사실이, 그가 시대상을 정확하게 본 작에 반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안개에 숨어서 혹은 안개 밖에서 그 안을 혹은 안 개 속에서 안개 속을,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에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모진 불행과 부조리를 겪었던 누군가가 그 순간을 기억하며 감내해야 하는 뼈를 깎는 고통으로 써 내려간 일지는, 밤으로의 긴 여로 위에 서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마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유진 오닐이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추앙 받으며, 그의 작품들이 어떤 이의 없이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는 다시 들판으로 향한다. 카뮈는 이야기한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자신의 소굴로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메리는 하녀를 붙잡고 자신의 삶이 망가진 것에 대하여 푸념한다. 그러나 제임스를 선택한 것도, 그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도, 그리하여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오롯이 메리의 몫이다. 제임스는 자신의 신념을 메리에게 강요하고, 가족에게 가부장적 태도로 일관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메리에게는 일말의 잘못도 없는 완전무결한 시점에도, 그녀는 오래 전 자신이 내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돌팔이 의사가 놓은 모르핀이 그녀를 해방하고, 이 우연의 개입으로 자율성이 결박 당한 시점에도, 그녀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진 오닐은 불행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 불행은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유연하지 못한 사고, 아버지를 비롯한 타인의 개입과 실수들이 원인이었음을 낱낱이 밝힌다. 동시에 그렇다 하더라도, 운명의 주인은 결코,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부조리극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산다. 그리고 그 부조리의 해소는 완벽하지 못한 인간, 완벽하지 못한 다른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만든 부조리가 서로 대화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 내딛는 무력한 발걸음으로만 조금씩 이루어진다. 그 대화가 다름 아닌 무적이다. 안개 속에도 길은 있고 우리는 이 어둠 속에서 화해할 수 있다는, 길게 우는 위로고, 이 긴 여로의 길잡이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건강하게 자연분만으로 동생을 낳았고, 그 아이는 훗날 막둥이 딱지를 떼고 셋째가 되기까지 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막둥이가 세상에 올 때 할 수 있어요. 하며, 산소마스크를 쓰고 네 번째 자연분만을 해내서 이 구역의 출산드라, 철인(鐵人)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엄마는 막둥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경미한 우울증을 앓았다. 아빠의 가정에 대한 집중도는 커리어에 대한 욕망의 크기와 정확히 반비례 했다. 데크레셴도처럼 아빠가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강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춘기 딸 아이들이 셋째와 넷째 양육에 손을 보탰지만, 그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엄마 홀로 육아를 맡아야 했다. 20년을 육아에 매진하면서, 엄마는 점점 안개 속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다. 큰 딸이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이듬해 둘째 딸도 유학을 떠나자, 엄마는 아직 두 명의 아기 새가 남아 있는 둥지에 남아, 둥지가 비지도 않았는데 빈 둥지 증후군을 앓았다. 설상가상 아빠의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부쩍 그 달 같던 얼굴이 푸석할 때가 많아졌다. 내가 엄마, 나는 왜 그래. 하면서 머리를 부여잡으면, 금세 실마리를 찾아내 쭉 뽑아내서 돌돌 말아 양손에 쥐여주고 활짝 웃는 지혜로운 사람, 철인(哲人)이었던 엄마는 산꼭대기에 망연히 서있는 시지프가, 안개 속에서서 무적 우는 소리를 두려워하는 메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는 용기 내서 시도한 아빠와의 대화가 성공적이지 않자, 어느덧 이십 대 중반이 되어가는 딸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어렵게 입을 뗐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들판으로 뛰어 내려가는 엄마의 우월한 뒷모습을 보고 따라 뛰었고, 엄마가 어깨로 미는 돌에 손바닥을 보탰고, 외롭고 나약한 사람이 기댈 곳은 마찬가지로 외롭고 나약한 다른 사람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엄마는 안개 속에 10년 넘는 시간을 앉아 있다가 돌연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서 일을 했고, 자신을 위해서 살았다. 부족한 것이 뭐가 있어. 일 나갈 필요 없어. 아빠가 내는 큰 소리에 엄마는 대답했다. 나는 자유롭고 싶어. 아빠는 당신이 벌인 일들 때문에 엄마가 마트로 내몰렸다고 생각했다가 깜짝 놀랐다. 작은 지역에서도 엄마는 자유와 꿈을 찾아 이직을 거듭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은 끝에 청각장애인 지원 센터에 정착했다. 아빠는 어이 없어 했고, 우리 남매는 최고 가치가 사 남매였던 엄마의 변화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엄마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결핍과 우울에 투쟁하는 그녀는, 그녀의 운명보다 더 우월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엄마처럼 강하고 운이 좋지는 않다. 아니, 엄마 또한 약하고 불운했다. 엄마는 용기의 결손이라는 결핍에 항거하는 짧은 순간을 견뎌 무적 소리에 기대어, 비로소 강하고 행운을 쟁취해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귀 기울이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마침내 화해에 이르는 것은, 약하고 불운한 사람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손쉽지는 않지만 그 시도는 운명보다 우월하다.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온다. 오늘도, 밤으로의 여로가 길다. 아스팔트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차마 마시지 못하고 자꾸 뱉어낸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겪고 있는 이 거대한 불행 앞에서 마음이 겸허해진다. 내일이면 들판으로 뛰어내려가 다시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릴 어깨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존경심으로 가득 찬다. 인간의 삶은 대부분 선택으로 이루어지나, 필연적으로 우연과 타인의 의지가 개입하는 순간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결핍을 존재 조건으로 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조건을 해제(풀 해解, 덜 제除) 하기 위한 투쟁으로 삶을 운영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삶은 거대한 농담이고, 모순이다. 그러나. 불행으로 몰아치는 운명의 잔혹함이 삶들을 침범해도, 부조리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려도, 우리는 살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코끝이 으슬하다. 축축한 대기를 타고 안개가 피어 오른다. 백령도의 두터운 안개 속에는, 가깝고도 먼 땅의 풍경이, 비행기가 굴러가는 천혜의 해변이, 수평선 멀리가 푸르르게 눈부신 바다가, 그리로 닿는 긴 여로가 있다. 안개 너머를 똑바로 보려고, 해준처럼 잠깐 고개를 젖혀 눈을 씻었다. 추녀 끝에서 안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굵은 무적(霧滴)을 뚫고. 멀리 무적(霧笛)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진지한 글 끝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의 먹근황 첨부하긔....* 근데 여기 진짜 김볶밥 맛집 + 위스키에 진심인 집이라 위스키 좋아하시는 분들 꼭 가서 김볶밥에 위스키 추천 받아 드시면 좋겠오요.........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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