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는 이의 즐거움 - 이유리] 행운목처럼
행운목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대. 행운이 와서 행운목이라는 거지. 거실 한복판에서 행운목이 하얀 꽃을 여물렸다. 죽은 듯이 가만히 서있던 행운목이, 갈색 줄기 속에서 남몰래 키워 온 펄떡거리는 생명을 세상에 여봐란 듯이 자랑하고 있었다. 내가 예닐곱 살쯤 됐었던 그 해,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었을 여러 이야기들 중에 무엇이 행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작은 나무토막 같던 시절부터 몇 년을 공들여 키운 행운목이 드디어 꽃을 피우자 엄마 얼굴도 그 하얀 꽃처럼 화사하게 빛났던 장면만은 어제 일처럼 선연하다. 그때는 엄마가 화분을 들여다보고 그 여린 잎들을 보살피며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과 같다고, 나래와 루나를 키우고 함께 가정을 가꾸는 일은 꼭 우주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이게 뭔 소리여. 화분이 왜 세계고, 이 쬐그만 303호가 왜 우주여. 했었다. 지금은 그때 보다 아주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지면서 엄마를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긴 시간 읽고 쓰면서, 글을 가꾸면서, 내가 하는 일이 작지만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함께 가꾸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만의 우주를 만드는 것에 다름 없다는 것을 배웠다.
미트볼을 먹다 말고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했던 그 아이가 플랫폼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차창 너머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애는 제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 아이와의 마지막이었다. 차에 오를 때 이미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므로. 출발한 지 삼분쯤 지났을까. 가방을 여니까 음료가 있었다. 물과 술이 아니면 음료를 마시지 않는 편이다. 나도 모르게 훔쳤나. 아니 이거 혹시 신종 스트레스성 질환인가. 일순간 두피 속이 찌릿해졌다. 휴대폰이 정신 차리라는 듯이 우웅 울렸다. 잘 가. 또 보자. 하는 카톡에 이런 걸 다 사 넣었어. 답장을 보내니까, 가는 길 목마르지 말라고. 오해하지 마라. 그냥 음료수만 넣고 바로 닫았다. 그가 답장한다. K와 연애를 할 때 내 결정 때문에 그가 장거리 연애를 힘들게 견뎌야하는 것이 늘 미안해서, 늘 차에 오르면서 이만 가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래서였는지, K는 한 번도 내가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지 않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도.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끝까지 흔들며,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려고 몸을 기우뚱거리고, 또 조금은 뛰었던 그 아이의 모습이. 그것이. K가 J 시까지 내려오면 그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차의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내 모습이. K와의 사랑을 반절로 접는 데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 늘 피곤해하는 K가 얼른 집에 가서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 늘 이만 들어가라고 이야기했으면서도, 먼 길을 가야 하는 연인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는 뒷모습이 늘 서운했다. 사람 마음이 참 우습다. 어쩌면 우리가 만들었던 우주는 피곤함, 서운함 같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조금 덜 가꿔져서,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꾸는 이의 즐거움>은 우리가 사랑으로 우주를 만드는 데까지 성공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가꾸고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그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롭고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외계인은 행성 가꾸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 어느 우주에나 뿌려두면 행성들이 잘 자라고, 가꾸면 가꿀수록 빛을 내며 우주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그의 큰 기쁨이다. 봄이 오자 그는 오랜만에 새로운 행성을 사러 간다. 행성 파는 집 주인은 지구를 권하며, 잘 가꾸면 행성이 아주 아름다워진다고 이야기 해준다. 주인공이 구매를 결정하고 가게를 나설 때, 뒤늦게 주인은 지구 표면에 아주 작은 미생물들이 자라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생각만 해도 미생물은 너무 징그럽지만 환불하기도 뭣하고 별 일이야 있겠냐 싶어서, 그는 그냥 지구를 데려 간다. 곧 지구에는 공룡이라고 불리는 미생물이 나타나지만 주인 눈에는 지구가 너무 예쁘고, 공룡도 나름 귀엽기도 하고, 아옹다옹하면서 객체수를 그럭저럭 유지하니까 고민 없이 우주에 다시 넣어 묻어둔다. 그러나 바빠서 지구를 신경쓰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확인해보니, 지구에는 두 촉수로 걸어 다니는 징그러운 미생물들이 가득 번식해 있고, 지구 표면은 변색 되어 있다. 그는 행성 가꾸기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텔레포트 배송으로 인류 싹싹 한 통을 받아 인간으로 불리는 미생물 상당수를 없애버리는 데에 성공하지만, 반대편에 있던 인간들이 원통형 물체에 타고 화성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하고 질겁한다. 원통까지 다 부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는 인류싹싹을 두 통 더 주문한다. 그는 은하단 전체에 인류싹싹을 뿌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구는 괜찮을 것이라고 되뇐다. 죽을 것처럼 시들어 가더라도 관심을 쏟으면 금세 되살아나 반짝이게 되는 것이 행성이고, 그 기적 같은 일들을 오롯이 자신의 촉수로 해내는 것이, 그 가꿈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생각하며 그는 뿌듯함에 빠진다.
예스 24에서는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를 찾는 기획의 하나로 최근담 시리즈를 짓고 있다. 며칠 전 리뷰했던 박상영 작가의 <내 생애 처음으로 공부하지 않은 날>도 이 시리즈에 포함된 글이다. 최근담 시리즈의 첫 작품인 <가꾸는 이의 즐거움>은, 여러 SF 앤솔러지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리 작가의 글이다. 본 작은 지구가 가꾸는 손길의 부재 속에서 인류 때문에 처참히 멸망하는 과정을, 너무 진지하고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논조로 그려내고 있다. 귀여운 등장인물과 재기 발랄한 SF적 상상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주인공 외계인이 공룡보다 인간을 훨씬 징그럽게 생각하고, 독한 미생물이라고 묘사하는 부분은 웃기기까지 하다. 이는 나약한 인간이 지구의 주인인 양 공룡과 같은 최상위 포식자처럼 군림하고 있고, 인류가 지성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체계를 구축하여 지구를 운영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 사고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인간은 누군가의 눈에는 공룡보다 더 징그럽게 생긴 존재로 비칠 수 있고, 미생물처럼 미미한 존재로 판단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행성 키우기 커뮤니티에 흰 무늬가 사라진 각박한 모습의 지구 이미지를 올리자, 고수들이 즉각 윽, 인간이군요. 지독한 미생물에게 걸리셨네요. 하고 답변하는 대목은 그야말로 인간의 이기심에 겨누는 설도, 촌철살인이다. 본작이 주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먼지와 같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감각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 장면과도 연관성이 있다. <맨 인 블랙>-시간이 오래 흘러서 1인지 2인지 헷갈린다-의 마지막 장면으로, 우리가 사는 우주는 사실 어떤 거대한 아기 외계인이 가지고 노는 구슬 하나에 불과하다는 요지의 이미지적 묘사다. 그리고 이 묘사는 인간을 훨씬 초월하는 초월적 존재와 인간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우주, 인간이 인간 손으로 빚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복잡한 세계관인 사랑에서도, 인간이 미미한 존재임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의 조물주라는 이유로 사랑을 지배하고 있고 잘 가꾸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랑은 그보다 더 예민하다. 그 세계는 외계인의 촉수만큼 섬세한 손길로 늘 닦고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며 보살펴야 할 작고 연약한, 영롱한 행성과 다름 없다.
며칠 후 그 아이가 보내 온 긴 카톡에 나는 답장했다. 어린 친구에게 못하는 말이 없다 싶었지만, 성심성의껏 대해야 할 마음이었다. 그 마음 정말 고맙게 생각해. 그렇지만 사랑을 하고 가꾸는 것은 우주를, 한 세계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한 순간 먹은 마음으로 우주를 만들 수는 없잖아. 착각일지도 모르잖아. 우주가 실수로 만들어질 수는 없잖아. 중요한 일은 숙고할수록 좋더라. 물론 너 나이에는 저지르고 보는 게 더 좋지만, 내가 거기에 응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그러니까 그 아이는 기가 막힌 대답을 남겼다. 우주를 같이 만드는 데에, 같이 만들 사람의 나이가, 그 사람 아빠가, 그 사람과 우주를 만드는 시점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니는 그런 게 중요하더나. 제일 중요한 건 그 우주를 너랑 만드는 거다. 니가 애써 만든 세계가 그 일로 망가지지 않으면 좋겠다. 너의 말이 맞다고,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너의 말대로 내 세계를, 내 우주를 더 가꾸겠다는 다짐도 전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남은 해변에서 내 결심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구덩이 끝에 더 바짝 붙어 앉아 있는 것 뿐이었다.
구덩이 속으로 비가 내렸다. 비가 오니까 너도 오는구나. 투두둑, 발코니 철제 난간에 정신 없이 빗방울이 내려 춤추고 있었다. 처마 끝에 매달려 나리는 빗속으로 오목하게 손바닥을 반쯤 쥐고, 목놓아 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움은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일이다. 물방울 하나에 기억 하나씩, 릴을 풀어 회색 필름에 맺힌 기억을 비로 지워냈다. 그렇게 마음을 다 떼어냈다. 하늘이 땅에 갚을 빚이 많았는지 강우가 세찼다. 그 속으로 그리움이 녹아 멀리 흘렀다. 창 밖으로 삼천 개의 회색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모든 단어는 전 부 다 삼 천 개의 비였다. 빗방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지은 우주가 붕괴 속에서 영원한 미제로 남았다고 해서, 나의 우주가 언제까지고 멈춰있을 수는 없다. 행복해지리라 다짐했다. 느슨한 연대의 작은 한 귀퉁이가 되겠다고. 건물을 버티는 한 알의 나사가 되겠다고. 누군가에게 가서 빗방울이 되겠다고. 그리움을 이기겠다고. 비가 가면서 너도 간다. 진정한 작별이었다. 그리고 내 우주는, 빅뱅의 끝에서, 가꾸는 사람의 따뜻한 손길들 속에서 다시 자라고 있다. 터질듯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가꾸는 이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누군가의 집처럼 온통 빛나는 행성으로 뒤덮일지도 모르겠다. 꽃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꼭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행운목처럼.
* 본 작은 예스24북클럽에서 감상하였기 때문에, 작품 이미지가 없...습니다....ㅠ.ㅠ 그래서 그리운 페벌을 이미지를! 뚜둔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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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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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독서는 발전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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