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 7편 - 김초엽] 모호의 명확성에 대하여
주변의 모든 이를, 심지어 떠나가고 떠나온 이들까지 사랑하지만, 특히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 날짜가 바뀌는 새벽의 틈에 지금 당신의 마음을 얘기해 주세요. 하고 카톡이 왔다. 종종 삶과 관계, 사랑과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단골 바 겸 식당 사장님이었다. 어쩐지 마음이 짓궂어져서 일기를 찍어 보냈다. 작은 방에 에어컨을 켜면 삽시간에 사방이 얼어붙는다. 책장 위에 다닥다닥 붙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책들의 표피에도 오도도 소름이 돋는다. 아 비로소 여름이구나. 이기적인 인간은 생각한다. 유치한 일기를 찍은 성의 없는 사진으로 답변을 대신하자, 그가 오늘은 슬픔에 잠기는 날이라고 고백했다. 사랑은 양심이자, 지표이자, 삶의 이유이자, 최악의 실수가 현현하는 붕괴의 순간에도 손을 잡아주는 것이네. 나도 그대를 사랑하니까 손을 잡아주겠어. 그러자 그는 말했다. 바다 깊은 곳에 버릴 뭐라도 있다면 다행일 것을 이건 실체가 없어서 버리지를 못합니다. 나는, 마음도 물성이 있어서. 손잡이가 달려있어서. 전부 다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일부라도 좋으니까. 조금씩이라도 떼다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거나,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특히 이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이런 대화를 함께 해주는 사람을, 더 사랑한다. 박명 속에서 한 시간 동안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내가 대부분의 순간 평온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표출 덕분이다. 춤을 자주 추고, 매일 운동을 하고, 친구와 만나 술에 취해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무엇보다 매일 글을 쓴다. 짤막하고 유치한 일기라도 남긴다. 마음에 맺힌 것들을 긁어 글에 쏟아 내고 나면, 물론 여전히 마음이 물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상(모양 상像)을 띈다. 그렇게 마음에 매달려 심장을 발끝까지 철렁이게 했던 것들을 하나 둘 모양으로 떠서 날려 보낸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일은 어디까지나 시작만은 나를 위한 일이고, 사정 없이 흔들리다 지친 스스로를 글에 기대어 위로하기 위한 일이다. 새벽녘. 우리의 마음도 서래와 해준의 휴대폰처럼, 물질이 되어 얕은 바다에 깊숙이 파묻힐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김초엽 작가님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 되어 있는 <감정의 물성>이 생각 났다. 내가 그에게 '물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마 이 작품의 영향일 것이다. 신문사-잡지사인데 잘 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주인공에게 후배들이 신문물을 소개한다. 문구류를 만드는 회사인 이모셔널 솔리드에서 감정을 조형화시켜 이른바 '감정의 물성'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여, 이미 소셜 미디어에서는 유명해지고 있는 제품이었다. 그는 차분함과 설렘과 같은 감정들이 어떻게 **체라는 제품 때문에 인간에게 역으로 감정을 전이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며칠째 트러블을 겪고 있는 연인의 집에 갔다가, 그녀가 우울체를 집안 가득 쟁여놓고 우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곧 감정의 물성은 전국을 강타하는 사회적 신드롬이 된다. 하지만 신드롬의 주인공이 무엇이든, 그 이면에서는 오남용의 부정적 사례가 축적될 수 밖에 없다. 증오체를 사용한 청소년들이 집단 폭행 사건을 벌이는 등, 사회면에서 꽤 진지하게 감정의 물성의 문제점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감정이 물성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으로 실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미지의 제품군은 꽤 오래 시장에서 롱런한다. 주인공의 연인은 계속 우울체를 사들인다. 어느 날 식약처에서는 감정의 물성에서 마약성분이 검출 되어 전면 판매 중지 처분을 내린지만, 감정의 물성은 암암리에 계속 거래 된다. 주인공은 점심 식사를 위해 카페를 방문했다가 이모셔널 솔리드의 대표를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대표는 소비는 항상 기쁨과 같은 긍정적 가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주인공은 소비의 목적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서 도출 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꼭 맥락에서 의미를 도출하지 아니하더라도 감정 그 자체를 필요로 하기도 하겠다고도 생각하기도 한다. 그의 연인은 여전히. 항우울제와 우울체를 나란히 두고 사용한다. 감정에 지배 받지 않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 그녀가 그런 아이러니를 벌이는 이유다.
본 단편집에 수록 되어 있는 작품 7편은 모두 유창하고, 매우 기발하다. 특히 <감정의 물성>은 어쩌면 어떤 미래에는 감정을 감각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이 출시 될 수도 있겠다, 혹은 삶의 일부가 우연을 비롯한 통제 불가능한 요소에 종속 된다는 인간의 운명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설사 비인간적이라 하더라도, 감정을 통제할 있으면 좋겠다는 옅은 바람이, 높은 몰입을 유도한다. 물론 예의 새벽에 친구와 했던 대화에서처럼. 감정을 감각할 수 있고, 그리하여 통제할 수 있고, 감정의 지배력을 배제할 수 있다면 삶은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을 감각할 수 있을지라도 자신 안에서 감정의 발생 메커니즘까지 도려낼 수는 없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 없이 긍정적인 감정만으로도 인생을 다채롭게 꾸릴 수 있는가. 부정적인 감정 없이 긍정적인 감정은 존재할 수 있는가. 인간은 감정 없이 그저 어떤 곡선도 그리지 않고, 무감각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인간은 감정이 만드는 이야기와 이야기의 맥락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없이도 존재가치가 있는가. 주인공의 연인이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도 우울체를 놓지 못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어떤 아픔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의 격차에 의해서만 지각될 수 있다. 어떤 사랑은 상실의 아픔으로만 그것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성취감으로 인한 기쁨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고통이 있어야 달성 된다. 인간은 감정에 이는 파고 없이 특정 감정을 정확히 감지할 수 없다. 감정 없이 이성적 사고만으로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녀는 감정의 물성이 포함한 향정신성 물질에 중독 되었다기 보다는, 항우울제와 우울체 중 하나만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거대한 모순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본질적 자아는 필연적으로, 자신 안의 많은 자아를 포함한 수많은 타자와 공존한다. 감정은 소통에 나선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겪어 마땅한 것이고, 감정 자체도 상호작용한다. 김초엽 작가는 작품을 열면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통하여, 건강한 사회는 자연스럽게 피어난 감정과 그것들의 교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통해서만 이룩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으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혼자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러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타자의 그것과 공존하고 상호 주체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가 긋는 포물선에서 변칙적 변형을 겪는다. 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삶은 구체적 의미를, 인간인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모호한 감정들의 교차 사이에서 되려 인간의 존재 가치가 뚜렷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인 모든 사람은,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
김초엽 작가님의 SF는 과학으로 발전한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이라면 해봄직한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을 다루는 방식이 섬세하고 따뜻하다. 요즘의 SF 문학은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소비되고 버려지는 객체들에 초점을 맞춘 데에 반해,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은 인간 때문에 피해 입은 것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은 환경일 뿐이고, 자기 자신 때문에 혹은 타인에 의하여 상처 받은,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품들은 우리는 모두 다르고, 다르다고 해서 어떤 기준에 의해 '틀린 것'이라고 선언 될 수 없으며, 다름은 다른 다름에 의해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물론 양상은 저마다 다르겠으나, 이 어려운 존중을 가능하게 하는 단일한 방법이 바로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삶의 이유와 목적이 이미 불가능한 것이 확실해졌음에도, 인간은 그에 도전하는 존재이고, 그것이 가능하게끔, 그러니까 실패의 가능성이 무의미한 것으로 되게끔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목적 너머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다시 돌아오는 곳이 원점이라도, 나의 행위가 무의미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을 기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실존주의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대체로 7살 전의 일은 기억 못 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어렸을 때는 아기 안에서 한 사라진 행성의 외계인들이 공생하고, 그들이 떠나면서 아기의 기억도 사라진다는 대범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공생 가설>도 굉장히 인상 깊다.
<관내분실>은 한 여성을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연대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양보하였던 존재라서, 연민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서사가 감동적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속박 당하고, 보편적 기준에 재단 당했던, 동양인 여성 우주인의 이유 있는 체제 반항을 그리며, 앞서의 <관내분실>에서 나아가 소수자가 경직적 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위와, 경직적 사회의 일원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하여도 암시한다. <스펙트럼> 또한 어떤 존재를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되려 아름다운 것이라고 판단하고, 다른 것 자체로 존중하는 한 외계인의 사고 방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외계인이 음성 언어 대신 사용한 색채의 스펙트럼이, 스펙트럼을 이루는 모든 색채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상기하였듯, 마침내 작품을 여는 작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은 특정 기준에 의하여 건설 되고 정의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이상적인 혹은 파괴적인 사회로 기능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조명한다. 그리하여, 절대자라 할지라도 한 사회에 획일적인 기준을 부여하고 구성원에게 기준에 따를 것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할 수 없음을, 건강한 사회는 인간이 품어 마땅한 자연스러운 감정들과 감정들의 교류, 그리고 다양성과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만 건설되고 유지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박명이 짙게 깔린 어느 새벽이다. 친구는 숨 쉴 때마다 어떤 마음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그런데 없으면 죽겠지. 하는 나의 대답에, 있어야 해. 라고 대답한다. 글은 눈에 맺히니까. 글로 인하여 물성을 지니게 되겠네. 글에게 기대서 많이 떼어내. 그 뒤는 글이 알아서 할겨. 하자 그는 고맙다고 했다. 그는 글을 썼을까. 그의 채널에 들어가 확인해 봐야겠다. 그저 슬픈 그를 위로하려는 말들이 아니었다. 모든 지표에서 평온할 수 없다는 거. 인간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인 것 같아. 그래서 한 지표에서만이라도 네가 평온하길 기도할게. 라는 문장들은 진심이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있는가. 인간은 결핍을 존재 조건으로 한다. 그리고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이 결핍에 끊임 없이 투쟁함으로써 존재한다. 모든 지표에서 완벽히 평온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에 인간은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감정이 물성을 지녀서 손가락으로 툭 쳐내 어딘가로 날려버릴 수 있다면, 그 감각 가능한 감정들은 어디로 갈까. 버리다 보면 더 이상 버릴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버려진 감정은 어디에 쌓일까. 우주의 엔트로피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투쟁할 결핍이 없는, 모든 지표에서 완벽히 평온해진 누군가는, 통제 불가능해서 얻을 수 있었던 지극히 순수한 감정의 끓는점을 글로 스케치하며 추억할지도 모른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일 것이다. 그러니 괴로운 새벽에 찾아오는 감정(마음이 움직일 감 感, 사랑 정 情)을 꼭 끌어안아주자. 사랑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구나, 모호한 춤을 추는구나. 하고. 어쩌면 그 감정이 명확한 상(像)으로 망막에 맺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대는 모호한 감정들 사이로 명확한 삶의 의미가 새어 나오는 것이 반가워서. 그것이 손에 잡힐 것 같아 손을 뻗다가도 그저 둘 것이다. 나는 앞으로 그것을 글로 써서 날려 보낼 것이 아니라. 어떤 결심으로, 묵직한 문진으로 눌러 마음 깊이에 갈무리 하겠다고 다짐한다. 찰나 같은 인생에 다시는 없을 순간이므로.
이번 작품도 예스24 북클럽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서 이북으로 읽었어요^_^!
책에 대한 이미지가 부족해서 뜬금 공덕맛집이자 경의선 숲길 맛집인 트라고 두두등장!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질문은 댓글로 or 인스타그램 seol_vely로 부탁드립니다.
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www.instagram.com/seol_vely
댓글로 신명나게 이야기 나누는 중이에요.
여러분께서도 독서 후에 남은 감상을 다른 사람의 감상으로 새롭게 느끼고 다듬고 채우는 과정을 함께하세요!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독서는 발전합니다>_<
+
더불어 책, 영화, 드라마, 전시, 음악 등 각종 문화생활을 더 풍부하게 즐기고 싶은 힙한 현대인 당신을 위한 큐레이션을
카카오뷰 채널 헌책방이 무료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채널 추가 해주시면 문화생활도 트렌디하지만 깊게 즐기는 데에 도움 되는 인사이트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읽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 유진 오닐] 무적(霧滴) 속, 무적(霧笛). (0) | 2022.08.09 |
---|---|
[가꾸는 이의 즐거움 - 이유리] 행운목처럼 (0) | 2022.08.06 |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자유의 터 (0) | 2022.07.29 |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 김초엽] 해변 끝의 카프카 (0) | 2022.07.20 |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삼천 개의 빗방울 (0) | 2022.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