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12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데이비드 O. 러셀] 개기월식 / 영화 리뷰, 후기, 그리고 셰퍼드페어리 전시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데이비드 O. 러셀] 개기월식 언니. 순수함과 순진함의 차이가 뭐야? 사람들이 나는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지 혹은 순진하지만 순수하지는 않지 찡긋 ㅇ_<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P는 종종 메신저에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내가 백과사전도 아니고, 인생 한참 더 산 스승님도 아닌데 까지 입력했다가 메시지를 지웠다. 물론 내게도 그런 문장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순진과 순수 중에 어떤 쪽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본 적 없으니 잠깐 골똘해진다. 글쎄. 순수(순수할 순 純, 순수할 수 粹)는 불순물 없이 깨끗한 상태를 두 번이나 강조해서 지극하게 깨끗하다는 뜻이겠고, 순진(순수할 순 純, 참 진 眞)은 깨끗하고 진실한 상태라는 뜻이겠네. 보통은 순수가 정결.. 2022. 11. 10.
[헤어질 결심 - 박찬욱] 무너지고 깨어짐의 시작. 그리고 끝. [헤어질 결심 - 박찬욱] 무너지고 깨어짐의 시작. 그리고 끝. 시작하기 전에. 작품에 대한 강력한 스포가 들어있습니다. 감상 후 적은 글의 양이 워낙 많아 정리에 시간도 걸렸고, 여기에 영화 유튜버 영민하다 님과의 네시간여의 대화가 더해져 양이 더 방대해졌습니다. 적다보니 완벽하게 구성,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작품의 핵심과 닮았다 싶게도. 미완결인 상태로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았는데, 그것은 다른 포스팅에서 계속 됩니다.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는 내용의 DM들에 제 나름대로 생각을 전하고 또 받으면서 했던 생각들은 따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오래걸릴 것이야 살다보면 최선을 다해도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열정이 .. 2022. 7. 5.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성부도 - 김홍도] 위로의 수집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성부도 - 김홍도] 위로의 수집 밤과 새벽 사이로 난 가느다란 틈 사이에 앉아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면 사방이 넘실넘실 새살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인생은 늘 쉽고 즐겁지만은 않다. 삶에 필연적으로 동반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눈가에 송골송골 맺혀 남는 고독과, 누구도 완전히 공감해주지 못해서 홀로 공기로 남은 고뇌와 한숨은, 대부분의 순간 사방에 꽂힌 책들과 연필과 종이가 맞부딪어 내는 사각사각 소리가 위로해왔다. 웃음으로 들썩이던 눈꺼풀과 갈비뼈에, 부지불식간에 물기와 고민이 맺힐 때면, 밤의 벽들이 어김 없이 앉은 자리 주위로 빼곡히 둘러앉아 위로를 건넨다. 독서는 이상한 행위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정보, 감정을 흡수하고 연산하면서도 마음.. 2022. 6. 22.
[소년이 온다 - 한강] 활활 타다. / 북리뷰, 북캉스, 책캉스 책 추천 [소년이 온다 - 한강] 활활 타다. 아야 서운아, 아부지 오셨다이. 얼굴에는 제법 처녀티가 나는데 몸집은 조그만 소녀가 마루에서 발딱 일어났다. 수원(水源). 그녀에게는 서당에서 훈장을 하며 여생을 보내시는 선비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좋은 이름이 있었지만, 늘 서운으로 불렸다. 그녀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 어머니가 태몽으로 용꿈을 꾸었다고 했다. 사내아이를 기다렸던 집안 어르신들은 조그맣고 하얀 여자아이가 사랑스러운 몸짓을 할때마다, 아고. 저거 서운타. 서운혀. 남자로 태어났으면 아조 예뻤을거인디 서운혀. 해서 아이를 서운이라고 불렀다. 사실 이름마저 이 애석한 별칭을 따라 지었을랑가도 모른다. 그녀는 늘 그것이 서운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어매에게 입도 뻥긋 못했다. 댓돌을 밟고 마루로.. 2022. 5. 18.
[헤베커피] 청춘의 여신이 넥타르를 드려요. / 충무로, 필동 카페 추천, 남산뷰에 야외를 느낄 수 있는 옥상형 공간까지 있어요! [헤베커피] 청춘의 여신이 넥타르를 드려요. 헤베(Heb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춘의 여신으로, 로마 신화에서는 유벤타스(Juventas)라고 불린다. 신화에서 이 청춘의 여신은 올림푸스에서 연회에 참석한 신들을 위해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나르거나, 신들에게 술을 따라 주는 역할을 맡았다. 후에 그녀는 이 시녀 역할을, 이복동생 헤라클레스와 결혼하면서 그만 두게 된다. 결혼 이후 그녀는 헤라클레스와 슬하에 영원히 소년인 쌍둥이들을 낳아 청춘의 여신다운 면모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신들이 섭취하는 음료인 넥타르와 음식인 암브로시아가 그들이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원천이고, 청춘의 여신이 그것을 나르게 함으로써, 청춘을 젊음과 동의화하는 것은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흘러버.. 2022. 5. 10.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아쉬가르 파라디] 비극의 점층과 균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아쉬가르 파라디] 비극의 점층과 균열 눈꺼풀에 든 멍은 오래 간다. 중학교 1학년생이었을 때, 중학생이나 돼서 운다고 이웃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참으로 오랜만에 울면서 집에 갔다. 사실 내내 울지 않고 학교에서 오후를 잘 보냈었는데, 엄마에게 가는 집 계단 위에서 괜히 더 서러워져서,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시골 깡촌에 있는 여중학교에 다녔지만, 선행학습을 마친 친구들의 진도를 따라잡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흔한 속셈학원, 수학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이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 언니들이 푸는 문제도 척척 푸는 친구들 틈에서 뒤쳐짐의 괴로움에 몸부림쳐야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본격적인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초조함 때문에 밤낮 없이 공부했고, 덕분에 늘 .. 2022. 5. 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