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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봤다

[라세이 싱글몰트 위스키 배치2] 유행성 감염병에 걸렸다. (feat. 오미크론 극복기)

by 헌책방 2022. 2. 28.

[라세이 싱글몰트 위스키 배치 2] 유행성 감염병에 걸렸다.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문자가 왔다.

목요일에 증상이 시작 됐고, 회사에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자가검진 키트로 양성임을 확인한 후, 이지엔 식스 두 알을 집어 삼키고 엄동설한 시골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다. 내가 단신 부임해서 와있는 이 작은 도시에서는 걸어서 한 시간 반, 자전거로 사십 분, 차량으로 십오 분은 가야 선별 진료소에 갈 수 있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마스크 안으로 서리가 내리는 듯했지만 별 수 없었다. 자차도 없고, 이 지역엔 방역 택시도 없으니, 도보나 자전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용 자전거를 이용하고 도착해서 자전거를 깨끗이 닦고 소독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습관은 무서웠다.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리고, 바로 앞에 검사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 부부가 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을 보며, 정신 차리고 주말에 만났던 친구들, 방문했던 친구의 가게, 독서모임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감염경로는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날 사무실에서 증상을 보였고, 그 자리에서 자가검진을 했지만 결과는 음성이었던 같은 방 팀장님임이 분명했지만, 혹시 모르는 이 바이러스의 치밀한 인내심을 대비해야 했다. 서울로 외출할 때마다 조그마한 새니타이저 한 병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처절하고 순진한 대비책의 주인은 억울함에 몸부림치며 새하얗고 길다란 면봉에 코와 목구멍을 맡겼다. 내가 소독한 자전거를 다시 빌려서 집으로 타고 돌아왔다. 덜컹덜컹 간간히 포장되어 있지 않은 곳을 바퀴가 밟을 때마다 가슴이 같이 덜컹댔다. 내 몸의 어딘가가 영원히 예전처럼 기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도착해서 또 자전거를 소독했다. 새니타이저를 다 써버렸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삼일 내 잠만 잤다. 온몸이 열로 들끓고 인후통, 두통, 고열, 근육통에 시달렸다. 한동안 보지 않았던 아픈 장면들이 눈앞에 아른댔다. 회사 사람이 약을 가져다주러 관사에 들렀다. 말 소리가 났다기에 열이 오를 때마다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건소는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열이 39도를 상회할 때마다 울며 일어나 찬 욕실 바닥에 서서 스스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냈다. 열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20분 간격으로 열을 잴 때는 간간히 눈을 떠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고, 친한 친구들과 카톡으로 잠깐 이야기하고, 가족과 통화했다. 물도 약도 모두 게워 내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가끔 헛구역질을 올렸다. 조그만 죽 한통을 삼 일간 나눠 먹었는데 그마저도 다 올려버렸다. 예사 감기와 같다는 언론 보도와 다른 양상을 겪으며, 누군가는 이 병 때문에 죽기도 한다는 보도를 떠올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습기가 내는 퐁퐁 소리만이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해가 어떻게 기우는지 모르겠는 시간만 흘렀다. 체중계에 그토록 원하던 숫자가 찍혔다. 45. 이런 식으로 갖고 싶다 소망한 숫자는 아니었다.

더딘 새벽에 콧물을 삼키며 겨드랑이와 팔다리를 구석구석 물수건으로 닦고, 이제 진짜 39도랑은 안녕이야. 하고 누웠다. 눈을 뜨고 나서 깨달았다. 아 나았다. 꼬박 3일이 아프고 다음날이었다. 몸이 달랐다. 허기졌다. 우습게도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위스키였다. 아니면 샴페인. 아주 화사한 것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갈비만두. 

지난 주말 무정형에서 "나 위스키 새로운 걸로 추천해줘!" "너가 좋아할 만한 무겁고 센 피트는 아닌데 화사하고 괜찮은 신생 증류소 위스키 들어왔는데 어때? 라세이라고!" "마쎄이?" 했다가 꿀밤 맞은 그 라세이가 먹고 싶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고, 다시 찾겠구나 생각할만한 맛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화사한 그 맛이 생각이 났다. 피트라면 모두가 사랑할만한 탈리스커가 있는 스카이 섬 옆에 있는 섬이 라세이 섬이고 거기서 만든 위스키라고 하는데, 2014년부터 증류를 시작했으니 역사는 정말 짧다.  피트 원액과 언피티드 원액을 Rye whiskey cask, Chinkapin oak cask, Bordeaux red wine cask에서 각각 숙성시켜 여섯 개 원액을 블렌딩 하여 만드는 굉장히 독특한 방법을 채택했는데, 그 방법을 증명하듯 색소 무첨가한 위스키 색깔은 밀짚 색깔에 가까운 밝은 색이 뽑혔다. 화사한 맛의 근원은 아무래도 라세이 섬의 특색인 화산암을 거쳐 미네랄이 풍부한 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도수는 46.4도로 라이트한 피트 위스키라는 캐치프라이즈에 맞도록 낮게 맞춰져 나왔다. 녹진한 피트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달리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스타트로 추천할만하다. 위스키라기보다는 맑은 청주에 가깝달까, 청하 느낌이 난달까 하다. 청주나 청하에 약간 보리차를 섞고, 화사한 느낌이 나도록 미네랄을 섞어낸 느낌이다. 도수 탓도 있겠으나 맛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따뜻하다기보다는 차가움과 미지근 사이쯤이다.

싱겁지만 다행이게도, 고독하게 온몸을 물수건을 닦아내며 사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나의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났다. 눈을 뜨고 위스키가 마시고 싶다. 안주로는 갈비만두. 입을 쩝쩝 다시며. 내가 괜찮아지기 시작했다.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마저도 감사한 생애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환기를 시키고, 친구가 보내줘서 문 밖에 도착한 갈비만두를 쪄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천천히 공들여 샤워했다. 3일간의 전투의 흔적을 말끔히 정리했다. 엉망인 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건강하다. 그리하여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건강하기를. 억울해도 오늘도 가방에 새니타이저를 챙기고 밤 외출을 나서기를. 그것이 당신을 병에서 지켜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정신만은 지켜주리라. 이런 주변의 작은 주의로, 우리가 이 시간을 잘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후기를 담은 업장인 문래에 위치한 위스키 & 칵테일 바 무정형은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매일 적절한 소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게시한 사진은 필자가 코로나 걸리기 전에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위스키에 관해서만큼은 제일 정확한 것이 이 위스키 라벨에 적혀 있는 정보입니다. 이 날도 역시 신생 증류소라 정보가 하나도 없고, 있더라도 찾아보고 영어는 번역해서 확인하는 게 귀찮다 보니 라벨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공부했어요 :)

신생 증류소의 새로운 라인업이기도 하고, 대량 생산하는 큰 증류소가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 라인업은 '한정판' 되겠습니다. 제가 마신 것은 배치 2였습니다.

세상 모든 화려함은 다 흡수한 사람과 뭔가 진정한 힙함이 느껴지는 밀레의 <만종>의 패러디 작품

무정형 위치는 지도를 참고하세요 :)

가방 안에서 발견한 거의 다 쓴 새니타이저 한 통. 그렇게 나의 결백함을 허공에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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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seol_vely를 통해 가장 빠르게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힙한 장소들의 소식을 구독하세요 :)

귀한 피드백은 댓글 혹은 인스타그램으로 전해주시면 컨텐츠에 곧장 반영합니다.

http://pf.kakao.com/_UIv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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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고, 건강하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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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누워서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도 습관처럼 제발 이것만 하자. 이것만 하자ㅜ.ㅜ 하면서 일어나 실시한 동기부여 모닝콜 확언 5번 쓰기 챌린지 인증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낸 사실을 생각하니 스스로 대견합니다. 동기부여 모닝콜 덕분에 강한 의지와 실천력을 무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여러분도 함께하세요!!!! 

Day 30

나는 실패와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I am not afraid of failure and rejection and constantly challenge for success.

 

Day 31

나는 컨텐츠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창조자입니다.

I am a content creator who is quick to respond to evolving trends.

 

Day 32

나는 역경을 성장의 지표로 삼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I am a positive person who uses adversity as an indicator of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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