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기4

[드라마 : 안톤 체호프 단편선] 얼룩 / 북리뷰, 독서 일기 [드라마 : 안톤 체호프 단편선] 얼룩 창문에 조그맣게 얼룩이 번진다. 저걸 어떻게 닦아낸다. 신문지에 물을 묻혀 닦아낼까, 부드러운 천을 가져와서 닦아낼까. 내내 고민하다가 뒤늦게서야 숙고의 결과로 닦아보지만, 풍경 위로 헝겊이 지난 자리가 오돌돌 하다. 그 흔적을 지우려고 닦고 또 닦다가 엉엉 운다. 내 삶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보기 드물다 할만큼 미련한 인간이다. 최선을 다해도 그 결과가 후회로 남는다는 점에서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최선을 다하면 일정 부분이라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지독한 낙관주의자며, 능력이 부족한 지독한 낙관주의자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들과 고민을 나누지 않는 것이 배려이고, 온전히 혼자 책임지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비겁.. 2022. 6. 13.
[파과-구병모] 파과가 아름다운 이유 / 북리뷰, 독서 일기, 책 후기 [파과-구병모] 파과가 아름다운 이유 아빠는 멀리 사는 큰형님, 셋째형님보다 가까이 살고, 첫눈에 봐도 느껴지는 넓은 배포와 아량, 농사 짓는 사람 특유의 애정 어린 보살핌의 몸짓을 갖춘 둘째형님을 많이 따른다.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당신의 아버지 대신 둘째형님에게 많이 기댔다. 당신이 지금 내 나이쯤 되어 가정을 이루고 독립하기 직전까지 둘째형님과 형수님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는 집에서 함께 살기까지 했으니, 통칭 호치큰아빠로 불리우는 큰 아빠는 아빠에게 형님이 아니라 아버지의 어린 버전에 가까운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만나기만 하면 각자의 아내에게 들킬까 두려워하면서도 킬킬대며 야금야금 약주를 나눠먹고, 무릎 연골과 고관절 건강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말 섞어 논의하는 친구 비슷한.. 2022. 5. 30.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나는 무엇을 원했나. 원하는가. / 북리뷰, 책 추천, 북캉스, 책캉스 추천 도서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나는 무엇을 원했나. 원하는가. 비가 부스스 쏟아지던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버스를 타고 급히 서울을 떠나며, 내가 아는 당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가까이 살아도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할아버지댁에 자주 가지 못해서 추억이 거의 없는데도, 꽤 많은 기억이 쏟아져나왔다. 엄마는 당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할아버지가 4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며 오토바이로 출퇴근 하셨던 것, 까맣고 멋있는 오토바이 뒤에 수박, 참외, 참조기,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집으로 오셨던 것, 그러다 수박이 톡 도로에 떨어져 쪼개어져 버리면 그것을 노끈으로 동여매 아무렇지 않은척 부엌에 가져다 두셨던 것, 매일 새까만 머리에 포마드를 얹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빗고 정리.. 2022. 5. 17.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우리는 저마다 고도를 기다린다. feat. 오미크론으로 인한 7일간의 격리 생활, 코로나 극복기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우리는 저마다 고도를 기다린다. 날이 밝았다. 고도를 기다린다. 날이 저물었다. 소년이 고도의 전갈을 가지고 왔다. 고도는 내일 온다. 고도가 무엇인지도, 어떤 의미인지도, 왜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귤이 있다. 귤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귤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음으로써 가능하다. 귤이 부존재를 잊으면 귤은 존재한다. 귤이 없다. 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귤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잊음으로써 가능하다. 귤의 존재를 잊으면 귤은 부존재한다.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고도를 기다려도 영영 오지 않았음을 잊음으로써 가능하다. 고도의 부재의 현존을 잊으며, 우리는 고도를 기다린다. 의 고도의 의미 독해와 관련한.. 2022. 3. 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