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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우리는 저마다 고도를 기다린다. feat. 오미크론으로 인한 7일간의 격리 생활, 코로나 극복기

by 헌책방 2022. 3. 3.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우리는 저마다 고도를 기다린다.
날이 밝았다. 고도를 기다린다. 날이 저물었다. 소년이 고도의 전갈을 가지고 왔다. 고도는 내일 온다. 고도가 무엇인지도, 어떤 의미인지도, 왜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귤이 있다. 귤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귤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음으로써 가능하다. 귤이 부존재를 잊으면 귤은 존재한다.
귤이 없다. 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귤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잊음으로써 가능하다. 귤의 존재를 잊으면 귤은 부존재한다.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고도를 기다려도 영영 오지 않았음을 잊음으로써 가능하다. 고도의 부재의 현존을 잊으며, 우리는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의 의미 독해와 관련한 유명한 인터뷰가 있다.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가 베케트에게 고도의 의미에 대하여 묻자 베케트는 그 의미를 알았다면 작품에 표현했을 것이라고 대답하여 <고도를 기다리며>에 열광한 전세계 문학 팬들을 일대 혼란에 몰아 넣는다. 이로써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야말로 부조리극이 된다. 그리고, 부조리한 상황에 대하여 그리고 있고, 표현 방법도 부조리하며, 작품의 주제 의식마저 부조리하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오히려 이 총체적 부조리함이 어떤 해석이든 조리 있는 해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나는 내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지를 확인하고 싶을 때, 근 시일내에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거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총체적 부조리함과 읽는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하게 되는, 무한대의 해석 확장성 앞에서 속절 없이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고도는 무엇(누구)이고, 나는 디디와 고고에게 얼마나 몰입하는지, 그들이 놓인 상황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는 정답 없는 퀴즈를 풀면서 그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들여다본다. 생각의 거울 역할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고도의 의미와는 별개로, 그리고 프랑스어와 영어로 작품을 썼던 언어 천재였던 베케트가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연혁적 성과와는 별개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현대인에게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지구 상에 어디에도 없는 곳이지만, 어디에나 있는 불모지 위에, 지구 상에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늙은 방랑객 둘이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각자를 디디, 고고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오랜 친구다. 그들은 황량한 어느 언덕에서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너무 오래돼서 왜 기다리는지, 그가 누구인지, 그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 그들은 고도를 기다려야한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서로에게 일깨우면서, 다독이면서, 고도를 기다린다.
이번에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면서 지난 해 초, <버닝>을 보고, <헛간을 태우다>를 읽으며, 메타인지(상위인지), 그러니까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에 대해 몰입한 적이 있는데 그 영향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어제 포조와 럭키를 만났다는 사실마저도 가물가물해하면서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만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내가 당신에게 "고도를 기다리지마! 고도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마!"라고 말하면 당신은 필자의 지시대로 고도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는게 아니라 반사적으로 "고도가 누구여?" 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바로 메타 인지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려야한다는 사실과 고도의 부존재를 인식하고 있고, 이 인식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고도의 존재를 잊을 수 없고, 고도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관객과 독자 또한 극의 제목 때문에 두 인물과 함께 고도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고도를 하염 없이 함께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제 이야기 나눈 사람의 이름도 기억해내기 힘들어하는 이 노인들이 고도에 이토록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늘 그렇듯 나는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한 것은 자기 이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삶이 자신을 이해하고, 내면의 자아와 평소의 자아가 서로 화해하고 공존을 인정하는 짧은 순간을 위한 긴 사유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두 노인은 어떤 사회적, 시대적 배경에 놓여 있든 이 과정에서만큼은 만인하게 평등한 컨디션을 제공 받는 존재들이고, 혼돈 속에서도, 관객에게는 전혀 인지 되지 않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기억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 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현존을 끊임 없이 선언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찾아올지는 요원하고, 어쩌면 이대로 평생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자아와의 합일', 그 순간 자체이다. 진정한 현존의 순간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자아를 가지고 있고, 무엇 하나 다른 자아보다 무가치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며, 설사 특정 자아가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판단하더라도 자의로 해당 자아가 갖는 영혼의 지분을 기각, 삭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지혜가 쌓이고 나름의 철학이 공고해지지만, 인지 능력은 흐려지고 점점 사유의 속도도 느려지기 때문에, 디디와 고고처럼 인생의 목표, 고도를 만나는 순간을 맞겠다는 결심만 남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비롯한 중요한 것들이 세월에 씻겨 내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도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의 부재를 잊고, 그의 현존을 믿는다. 그 짧은 찰나를 위해 살았기 때문에.  

 

민음사 책은 번역도 그렇고 다 좋은데 하드웨어가 좀 아쉽다.  특히 내지 서체 가독성이 굉장히 낮다.  겉표지야 익숙해지니까 이제 좀 덜 아쉬운데 책은 아무래도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냐가 중요하다보니 익숙해지고도 아쉽다.

 

격리 해제를 10시간 남겨놓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택배가 왔다.

전주시 무지무지 감사하긴 합니다만....... 왜 격리 해제 직전에야 이걸 보내신거죠...;ㅁ;..... 확진을 금요일에 받아서 그런건가 짐작해보았다........ 그리고 월요일 하루 빼고는 영업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감사하게 잘 먹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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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나의 핵심가치에 맞는 아침루틴으로 혁신적인 하루를 시작합니다.

I start an innovative day with a morning routine that aligns with my core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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