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반딧불이)>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질적으로 머물러 있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고,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판단이 늘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으면서, 그러나 절대로 서로 닿지는 않으면서, 매주 토요일 말없이 걷던 두 친구가.
일년 후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더 시간이 지나 밤하늘 아래 체온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도. 서로의 곁에 누워 있어도.
창 밖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두 눈이 공허하게 텅 비어 있는 이상 상대방의 존재를 믿는 다른 한쪽은 결국 고독속에 혼자 남고 만다.
의미 없는 말들로 허공을 채워 다가오는 결말을 외면해 보려는 노력은, 많은 말들을 주워 삼겨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의미를 설명해보려는 노력은, 끝끝내 무색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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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물 아래에 쪼그려 앉아 동그랗고 조그맣게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그 끝에 보이는 얼굴을 사랑했다가
두레박이 내려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다가
사라진다.
우물 끝을 다시 들여다보러 그가 돌아왔을 때
우물 바닥은 텅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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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많은 것들은 어떤 무게였을까.
어떤 의미였을까.
반딧불이가 빛을 내며 어둠을 가르고 떠난다.
혼자 남은 이들은 속이 텅 비워내진 헛간을 태운다.
누군가가 헛간이 정말 타버렸는지 확인하려고 먼 길을 달려온다.
헛간은 그 자리에 있다.
헛간이 타올라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잊으면 헛간은 그곳에 있다.
그러나 헛간이 타올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 또한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남아있다.
혹은 헛간은 그 자리에 없다.
헛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헛간은 그곳에 없었던 것이 된다.
그러나 헛간이 타올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 또한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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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은 존재했었나. 헛간을 태운다. 활활 타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의 만물은 메타포'다.
하루키의 장편 작품을 이 세계관을 기준으로 읽으면, 은유를 발견하고 그 깨달음에서 오는 환희를 먹고 사는 독자라면 누구나가, 반드시 그 풍족함과 촘촘하게 깔려 있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성취감에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
반면 하루키의 단편 작품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은유가 달리 읽힌다.
모든 인간의 창작물은 창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나나, 하루키의 단편 특유의 엉뚱한 상상력, 기묘하고 섬뜩한 설정 때문에 유독 평범한 단어도 다른 무게와 느낌을 갖는다.
즉,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혹은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쓰지도 않았으나 그러했던 것처럼 작품 자체가 독자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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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영화화하여 화제가 되었고, 며칠전 월요일 빠셍과 감명 깊게 보았던 <버닝>의 원작이 바로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고 원작을 찾아 읽었을 때 이 작품 역시 하루키의 다른 단편들이 그러하듯 여러 사람에게 다르게 가 닿았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창동의 <버닝>과 원형의 유사성은 이야기에 씨앗 정도에 머문다.
오히려 원작보다도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는데 <버닝>은 박수 받아야할 성공적인 영화화 작업이지만 이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극히 문학적인 이야기에 비극적인 시대상을 유려하게 반영해내는 것이 특히 탁월했다.
업체 행사에서 텅 빈 춤을 추는 해미, 노을이 저물어가는 마당에서 의미 없는 춤을 추는 해미, 부유한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 앞에서 의미에 굶주린 그레이트 헝거의 춤을 흉내내는 해미, 남산타워에 반사된 햇빛이 드리우는 창가 옆 침대에서 표정 없는 얼굴로 옷을 벗는 해미, 그 비어버린 몸짓에서 우리는 그녀의 공허한 눈빛과 마음을, 그리고 그 이유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헛간을 태우다< 역시 탁월하다. 하루키가 이 작품을 쓴 시기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발표 전 3년간의 공백기라는 점에 포커스를 두고 접근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고,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사유들, 의식과 무의식이 내린 선택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과 선택의 뒤를 따라 조여오는 숙명의 무게를 발견할 수 있다. 15페이지 남짓 되는 짧은 이 작품으로 여러 형태로 변주될만한 이야기를 해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가의 팬이라는 사실이 스스로 자랑스러워진다.
2022.02.18 - [영화봤다] - [버닝 - 이창동] 2021년에 처음으로 감상한 영화 <버닝>, 버닝을 보고 쓴 영화감상문을 다시 읽다. (feat. 신촌 부엉이 돈가스)
이창동 감독님의 <버닝>에 대한 감상
그리고, <버닝>, <헛간을 태우다>와 함께 확인하면 좋을만한 컨텐츠를 모아 함께 발행했습니다. 카카오뷰 채널 헌책방에서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할 감상을 위한 재료들을 큐레이팅하여 무료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채널 추가하셔서 슬기로운 문화생활 하세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에 위치한 카페 woope coffee 방문사진으로 산뜻하게 마무리 합니다:)
북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소중하신 분들께서도 '존재한다'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뜻깊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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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 없이 켈리최 채널에서 하고 있는 새벽 동기부여 모닝콜, 확언 5번 쓰기 인증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원동력이 필요한 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확언쓰기로 다잡아 보세요!!!
나는 변화하는 돈의 형태를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합니다
I prepare for the future by studying the changing form of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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