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14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데이비드 O. 러셀] 개기월식 / 영화 리뷰, 후기, 그리고 셰퍼드페어리 전시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데이비드 O. 러셀] 개기월식 언니. 순수함과 순진함의 차이가 뭐야? 사람들이 나는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지 혹은 순진하지만 순수하지는 않지 찡긋 ㅇ_<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P는 종종 메신저에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내가 백과사전도 아니고, 인생 한참 더 산 스승님도 아닌데 까지 입력했다가 메시지를 지웠다. 물론 내게도 그런 문장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순진과 순수 중에 어떤 쪽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본 적 없으니 잠깐 골똘해진다. 글쎄. 순수(순수할 순 純, 순수할 수 粹)는 불순물 없이 깨끗한 상태를 두 번이나 강조해서 지극하게 깨끗하다는 뜻이겠고, 순진(순수할 순 純, 참 진 眞)은 깨끗하고 진실한 상태라는 뜻이겠네. 보통은 순수가 정결.. 2022. 11. 10. [파이트 클럽 - 데이비드 핀처] 송사리 튀김 [파이트 클럽 - 데이비드 핀처] 송사리 튀김 여기 뭐 해장국 맛집이야? 아니 일단 가봐야 돼. 가봐야 알아. 껍데기 맛집이야. 뭔 소리여 이게.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신촌에서 보기로 했더니 둘 다 삶에 찌들었는지, 만나서 갈만한 식당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신촌 인근의 유일한 술집이자, 익히 아는 맛을 새롭게 내서 사랑에 마지않는 대전 해장국 링크를 보냈다. 운 좋게도 후덥지근함을 뚫고 낮술을 즐기러 온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K와 연애 초기에 여기서 M오빠랑 진탕 술 마시고, 목포까지 KTX 타고 밤을 뚫고 달렸었다. 이 귀찮은 거 싫어하고 끝까지 술 먹기 좋아하는 내가. 참, 여기 K랑 같이 온 적도 있었는데, 걔도 너처럼, 해장국 맛집이야? 아재는 국밥을 사랑.. 2022. 8. 5. [토르: 러브 앤 썬더] 신은 죽지 않았다. / 쿠키 2개, 영화 리뷰, 후기 [토르: 러브 앤 썬더] 신은 죽지 않았다. 믿음은 순전히 믿음을 행위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믿음(믿을 신 信)은 인편(사람 인 亻)에 맡겨 말씀(말씀 언 言)을 전한다는 뜻으로 편지, 서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이 편지가 담고 있는 정보(말씀)를 신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면서 믿음에까지 그 의미를 확장하게 되었다. 정보는 독해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쓰여지지만, 텍스트 특성상 실시간으로 변하는 독해자의 생각에 맞춰 대응, 설득할 수는 없고, 따라서 독자는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에 따라 정보가 사실인지 판별하고, 그것을 믿을지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순전히 믿음을 결정한 자의 책임이자,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마치 사랑처럼. 따라서 배신감(背信感)은 신뢰를 준 사람.. 2022. 7. 7. [브로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의 의미 [브로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의 의미 '식구'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족(家族)은 뿌리를 같이하는 친족, 특히 혈연 관계에 있는 이들을 묶어 부를 때 쓰고, 가정(家庭)은 혈연, 혼인으로 성립된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 자체 혹은 그들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를 부를 때 쓴다. 때문에 내가 속한 가족이나 앞으로 이룰 가정에 속하는 이들은 아닌, 그러나 친밀한 관계를 맺어 집단을 이룬 이들을 지칭할때, 가족과 가정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적확하지 않다는 감각이 있다. 반면 음식을 나눠 먹는 입들이 모인 모임, 그 특별함을 말하는 단어 '식구(食口)'에는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누군가와의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함의 되어 있다. 그럼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작품을 통해 그리기 즐기곤 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활.. 2022. 6. 28. [전주국제영화제 밀란 쿤데라 세션] [농담 - 야로밀 이레시] [밀란 쿤데라 농담에서 무의미까지 - 밀로슬라프 슈미드마예르] 나는 누구인가 [전주국제영화제 밀란 쿤데라 세션] 나는 누구인가 [농담 - 야로밀 이레시] [밀란 쿤데라 농담에서 무의미까지 - 밀로슬라프 슈미드마예르] 삶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때였다. 오랫동안 닫아 놓았던 기억의 궁전이 되살아나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나약함과 우유부단함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었고, 부단히도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왔던 짧은 인생에 사정 없이 금가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듯 이명으로 울렸다. 자려고 누우면 밤이 내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서 잠들지 못하고, 살아있으려고 앉으면 깨어나야 마땅한 시간이 지나도 눈을 뜨지 못했다. 겨우 밥을 씹어 삼켜도 속절 없이 모두 게워올렸고, 옷에 담겨 다니는 것처럼 보일만큼 몸이 쪼그라들었다. 바람이 불면 살갗을 찢어버릴듯이 털이 곤두섰다. 무.. 2022. 5. 19.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아쉬가르 파라디] 비극의 점층과 균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아쉬가르 파라디] 비극의 점층과 균열 눈꺼풀에 든 멍은 오래 간다. 중학교 1학년생이었을 때, 중학생이나 돼서 운다고 이웃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참으로 오랜만에 울면서 집에 갔다. 사실 내내 울지 않고 학교에서 오후를 잘 보냈었는데, 엄마에게 가는 집 계단 위에서 괜히 더 서러워져서,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시골 깡촌에 있는 여중학교에 다녔지만, 선행학습을 마친 친구들의 진도를 따라잡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흔한 속셈학원, 수학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이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 언니들이 푸는 문제도 척척 푸는 친구들 틈에서 뒤쳐짐의 괴로움에 몸부림쳐야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본격적인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초조함 때문에 밤낮 없이 공부했고, 덕분에 늘 .. 2022. 5. 4.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