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 조해진 feat. 호라이즌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단순한 진심과 가족의 의미
모니터에 주황색 불이 깜빡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회사 동기이자, 같이 와인을 마시며 드라마 <시그널>이나 <도깨비>를 보면서 눈물 흘리고, 유럽까지 함께 날아가 일주일 이상을 함께 보냈던 친구의 이름이 번쩍번쩍하는 주황색 불 한가운데에 쓰여 있었다. '언니, 나 대박사건!', '응? 무슨일이야!' 답장하자마자 '언니 생일 있잖아! 나 그 날 결혼해! 어제 식장 예약했어!'하고 답장이 되돌아온다. 4월은 잔인한 계절이지만(앞선 두개의 피드 참고) 시간은 이내 곧 일어나 제자리를 탈탈 털고, 아픔을 딛고 뚜벅뚜벅 걷는다. 그 대견한 걸음마를 보고 있으면 시간의 순리(順理, 순응할 순, 다스릴 리)란 어쩌면 역사의 눈물을 젖줄 삼아 마시고, 현재의 미소를 열매 맺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나이 많은 시간을 바라보며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우습지만, 무너지고 나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나약해지는 것이 시간이다. 봄의 초입에 강남의 신세계백화점에서 그녀를 만났다. 청첩장을 전해주고 저녁을 사겠다고 하기에 선선히 알겠다고 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면서 밥을 사야하는 문화에 대해서 괜히 미안함을 느꼈다. 마땅히 가고 싶은 축하자리다. 이렇게 대접해주지 않아도. 그녀가 먼 길에서 오는 언니에게 너무 고마워서. 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에둘러 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교환한다. 커피나 간단한 브런치를 원했는데, 그녀는 백화점 한복판에 있는 고급 브런치 카페를 예약했다. 신선한 주스 아래에 13.0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해 예의상 식사를 대접하고 그 금액이 적당히 높아야하는 문화에 옅은 서운함을 느꼈다. 그녀가 나에게마저도 이런 예의를 갖추는 것에 대해서도. 그러나 그녀가 고른 음식은 맛있었고, 우리는 오랜 시간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는, 아끼는 동생이 그날따라 얼마나 빛나 보였는지 모르겠다. 모든 호의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결혼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수많은 결혼을 겪었다. 다이아몬드로 마음을 전하며 프로포즈를 하고, 예단을 하고, 혼수를 하고, 같이 살 집을 정하고, 사진을 찍고, 지인들을 초대해서 결혼식을 치르는 형식적 측면에서 결혼 과정은 예비부부의 내밀한 여타 사생활에 비해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꽤 오픈되는 편이다. 물론 매우 불편한 대화이긴 하지만 '정확히'까지는 아니나, '대략적인' 금액이 친구들 사이에서 정보로 오가기도 한다. 나를 둘러싸고 앉은 예비 신부들이 각자의 반지를 비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 둘 곳이 없어서 빈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 거린 기억이 난다. "뭐하는 사람이야, 신랑은?", "신혼집은 어디야?" 같은 말들이 오가면 공연히 손톱 밑을 뜯는다. 이런 이야기로 우리 사이가 어그러질까봐 겁이 난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인가 결혼은 예비 가족의 경제력을 가늠하고 비교를 위한 데이터로 쓸 수 있는 눈금자 역할을 하고 있다. 혼인으로 맺어지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마저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경쟁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 존재가 때로 안쓰럽다. 큼지막한 티파니를 동경하던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지나자, 현실에 타협한 것인지, 허영심이 덜어진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원하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맘껏 끼고 다니지 못할 반지가 서랍장에 있는 것이 어찌 그리 기쁜 일인지 더 이상 공감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다이아가 엄청 크게 달린 티파니를 매일 끼고 다니는 사랑하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 k 언니처럼 배포가 커진다면 또 모르겠다(이 자리를 빌어 언니의 약혼을 또 축하해요).
아무튼 봄이고, 조금씩 우리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숫자로 모든 것을 헤아려 무게 다는 세상에 살고 있어도, 내가 사는 세계는 조금 다르게 운영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내 이름 옆에 나란히 쓰일 이름만큼은 내 이름과 같은 무게로 존중하고 사랑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름은 사전적인 의미에 국한 되는 단순한 편의상의 도구에 그치지 않는, 다층적으로 존재에 접근하여야 보이는 '존재의 의미'의 총체다. 누군가가 존재를 편하게 발음하기 위해 사용하는 몇 음절짜리 짧은 단어가 아니다. 이름은 그간 그 이름으로 살아온 존재의 삶의 기억과 의미, 그 이름으로 살아갈 존재가 품은 철학, 목표와 다짐, 존재가 스스로 이름에게 부여한 의미, 자신의 이름이 타인에게 어떻게 기억 되었으면 하는지 하는 소망의 총체다. 합일된 자아를 함축적으로 내포한 메타포다.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을 통해 자아가 사는 집이나 다름 없는 그 이름을 내어주면서까지 생면부지의 타인과 결합하여 가족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다(구체적 표현만 다르지 그간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써 온 나의 글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애착을 느낀 작품이다). 그야말로 가족의 새로운 의미다. 작품은 먼 타국으로 입양 되는 아이들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무고하게 피해 입히는 사회로부터 임시 보호했다가 입양 보낼 수 밖에 없는 보호자들이, 이름과 현실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관계에 흔쾌히 발을 들여놓고, 떠나보내고 떠난 후에도 평생을 서로의 이름을 그리워하고, 어루만지고, 사랑하고, 그렇게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래서 나는 서러운 그 날, 예쁜 옷을 입고 결혼식장에서 박수를 칠 생각이다. 먼저 성공적으로 어른이 되는 그녀가 4월을 서러운 계절이 아니라, 결혼 기념일이 있는 아름다운 계절로 기억하는 데에 내 발걸음이 응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가 미래로 내딛는 버진로드 위의 발걸음을 따라서 내 시간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시간을 디디고 미래로 나아가는 그들이 단순한 진심으로 이루고, 이어지는 가족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의 가족들은 되도록 모두가 단순한 진심으로, 단순한 진심과 같이, 맺어지면 좋겠다. 이름과 이름이 나란히 서서, 서로를 비교하여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지 않고도, 그저 그대로 행복하길 바란다. 이 편지를 보내는 내 마음도 단순한 진심이다.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3층에 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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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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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도 켈리최 회장님 유튜브에서 보내주는 동기부여 모닝콜 영상을 확인하고,
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내가 나에 대해 믿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I attract what I believe to be true for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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