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현실과 사실, 그리고 말 줄임표.
정적이 흐르는 강의실에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했다. 성균관은 역사, 동양철학,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본소양을 배우는 강의를 수강하여야만 졸업할 수 있다. 그런 강의들은 필수 강의 특성상 학년, 성별, 취향, 학과를 불문하고, 다양한 학생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강의실 하나 그득 들어찬 채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울고 있었다. 지금은 수업 이름도, 성함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교수님의 아연한 멈춤이 강의실 뒤편까지 화면을 타고 송출되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누군가의 이름과, 그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흐느낌과 망설임이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가 간신히 강의실을 채웠다. "저도 알아요. 근데 우리 할아버지예요..." 끝내 완성하지 못한 문장을 타고 망연함과 피로감이 들불처럼 강의실에 번져나갔다. 얼마간의 침묵 후 수수한 얼굴의 그녀가 일어나 귀퉁이가 닳아지고 까만 때가 묻어 있는 에코백을 어깨에 얹으며 눈물을 훔쳤다. 부당한 권력이 민중을 착취하고, 후대까지 막대한 부를 되물림하고 있으며, 후대는 죄의식 없이 역사와 국가를 대한다고 이야기하던 강의실 안의 모두는 그녀의 평범함 앞에 숨을 죽였다. 교수님은 강단에서 내려와 육성으로 이야기했다. "미안합니다. 학생에게 핏줄을 물려준 사람은 역사에서 악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제가 감정적으로 강의했습니다. 다른 학생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쏟아지고, 비바람처럼 흔들렸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사과를 받아 주었고, 이내 조용히 강의는 계속 되었다. 교수님은 순간순간 표정이 골똘해졌고 수업 말미에 다시 거듭 사과를 건넸다. 무거운 얼굴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갔다. 10여년 전 명륜동에서 받았던 강의들을 나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날 강의의 분위기만큼은 심장 한켠에 생생하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강의실에 앉아 홀로 울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자발적, 비자발적 관계 맺음 속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아기는 아빠와 엄마는 타인이며,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자신이 독립된 존재임을 확인한다. 자아를 탐구하고 합일에 이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넥스트레벨이다. 때문에 개인의 자기 인식은 구성 초기 단계부터 사회에서 합의를 이룬 담론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러한 자기 인식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인식하며, 관계 맺음이 축적 되면서 사회 구조에 편입 된 후에는 다른 개인의 자기 인식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일원이 됨으로써 기존의 담론을 재생산, 확산하는 헤모글로빈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 요컨대 사회적 구조는 구성원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지배적 영향을 미치고, 계속해서 그 영향력을 넓히고 강화한다. 이 인간적이고 자연스럽지만, 게으른 흐름이 위험한 이유는 이 골조 어딘가에 부실함이 있다면, H빔 중에 한군데 미세하게 구불거리는 구간이 있다면, 사회구조와 연동 되어 있는 개인의 삶까지 흔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동은 파동을 낳는다.
최은영 작가는 <밝은 밤>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1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어머니가 딸을, 딸이 어머니를, 4대에 걸쳐 아끼고 사랑하고, 이해하거나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가 겪은 역사와 품은 마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하는 과정, 여성서사를 보여주었다. 시기상 더 앞선 작품이긴 하지만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도 그녀는 여성서사를 선보인다. 작품은 용산에 사는 희원과 용산에 살았으나 용산을 떠나고 싶어했던 과거를 가진 선생님이 어느 대학의 작은 강의실에서 만나서 하게 된 대화들, 함께 바라본 풍경들 등 1학기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성별을 비롯하여 계층,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폭력적인 차별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며 개인 삶의 위기는 사회 구조와 떨어트려 생각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특히 두 여성의 공통분모로 공간 '용산'과 용산 재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용산사태에 대한 시각을 채택하여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발견되는 폭력성과 잔인함이 끊임 없이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강의실 같은 작은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소통, 소통의 단절, 발화, 발화의 억압에도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케 한다. 희원과 선생님은 어느 겨울날 다른 학생들과 다같이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은 뒤 다른 학생들과 헤어져 잠시 걷다가 어느 카페에 들러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 희원은 걱정 섞인 마음, 그녀를 감싸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이 젊은 여자 강사인데다가 정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겪었던 고초를 위로하게 된다. 선생님은 자세를 고쳐 앉고, 희원은 자신이 선생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류장에서 그들은 마지막으로 대화하게 되는데, 선생님은 "내가 여자 강사여서 그랬다는 말 있잖아.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하고 말을 채 맺지 못하고 버스에 올라 멀어져간다.
다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대화에는 상대의 발화가 사실(事實)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이상의 관계의 복잡성이 개입한다. 희원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선생님이 걸었던 길, 조금 더 멀리 나아가보는 일의 전철을 밟아온 시간동안 늘 선생님의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한마디를 상상한다. 말 줄임표를 어떤 말이 채울지, 자신이 선생님의 마음 얼마만큼을 이해(理解)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인정(認定)하는 것이다. 주관을 개입하여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구나- 하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밝은 밤>의 세 쌍의 모녀가 그러했듯이 그 이야기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희원은 선생님이 먼저 걸었던 길의 어디쯤에 와닿았는지 어림해보려고 눈을 감는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 깜깜할수록, 희미한 그 빛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더 보일까봐. 감은 눈꺼풀을 두드릴까봐.
가끔 대학생 때 썼던 일기장을 열어본다. 뭘 먹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누구와 만나 어떤 꿈결을 헤매었는지, 매일 꼼꼼히 기록해놨지만, 애석하게도 그날의 기록은 없다. 다만 술을 먹었는지, 빼뚤한 글씨로, 나는 개새끼다. 라는 문장 하나가 덜렁 공백을 차지하고 있는 날짜가 있는데, 혹시 이 날이 그 날은 아닌지 어림짐작해보곤 한다. 나는 할아버지를 만주로 내몰았던 모든 사람들을 증오했다. 그 날 교수님처럼, 어떤 학생들처럼, 죄의식 없이 피 묻은 역사의 유산을 물려 받았을 수많은 사람들을 혐오했다. 다른 집안을 풍비박산 내놓고도 잘사는 양심도 없는 개새끼들. 그 날 그 강의실에서 그녀가 용기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를 쉬이 개새끼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現實)이 사실(事實)로 굳어버리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떨리는 손으로 책상을 짚고, 눈물 때문에 차마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면서. 교수님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는 스스로를 용서했을까. 썰물처럼 후다닥 강의실을 빠져나갔던 청년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 그 강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할아버지를 용서했을까. 비자발적 관계 맺음이 그녀를 얼마나 할퀴고 찢어놓았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잘 지낸다. 나를 만들었고, 둘러싼 모든 것들에 의문을 던지면서 산다. 때로는 무섭고 용기나지 않아서, 에둘러 말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희원처럼. 그러나 조금씩 더 많은 순간, 부당한 현실로 쌓아 올린 집이 사실로 단단히 굳지 않도록 막아서면서 산다. 그녀처럼. 사회구조에 결점이 있다고 해서, 관계에 흠집이 있다고 해서 무자르듯 사회와 개인 사이의 다리를 폭파할 수는 없다. 다만 던져진 의문들만이 모여 결점과 흠집을 인정(認定)하고, 나아가 결점을 바로잡고 흠집을 메우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저도 알아요- 하고 말했던 그녀의 말줄임표는 어린 마음 위에 평생 얹고 살아 왔을 부채감과 억울함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희원의 희미한 빛, 선생님의 말줄임표는...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인정이다.
책을 엄마 차 뒷좌석에서 발견했다. 읽어도 되냐고 했더니 된다고 해서 집에서 조금 읽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 인상 깊게 읽었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본 꽃망울
책상에 앉아서 읽다가 메모지를 찾으려고 뒤적였더니 정안이가 어렸을 때 썼던 일기장이 있어서 읽어봤다. 방학 동안 몰아 썼을텐데 어떤 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쓰고 다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이 있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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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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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도 켈리최 회장님 유튜브에서 보내주는 동기부여 모닝콜 영상을 확인하고,
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옛 자아를 극복하고 내가 되고 싶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I go from the old self to the new self I want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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