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전시회] 신념과 편견
상황1. 당신에게 사랑하는 반려자가 있다.
상황2. 당신의 반려자는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상황3. 당신의 반려자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작품에서 당신 기준에는 선정적인 연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반려자는 이 연기가 예술행위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작품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당신은 반려자에게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동시에 독립적 자아를 가지고 있는, 분리 공간이 필요한 존재다. 당신은 반려자에게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의 작품활동을 중단하라고 요청하거나, 반려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양보하거나, 반려자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고, 모든 선택이 타인의 비난이나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의 대답이 어떠하든 그것이 정답이거나 오답일 수 없다.
마릴린 먼로는 <7년만의 외출>에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한 씬을 연기하고, 디렉팅에도 적극 참여한다.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휘날리는 드레스를 부여잡고 있는, 당신이 마릴린 먼로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장면을 촬영하던 당시 수천명의 인파가 운집하여 현장을 구경하고 있었고, 당시 마릴린먼로의 남편이었던 극작가 아서밀러 또한 인파에 끼어 있었으며, 둘은 촬영 이후 이 장면을 두고 심한 언쟁을 벌이게 된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대 많은 타블로이드와 대중들은 둘의 결혼이 파국에 이른 것은 이 언쟁이 표상하는 가치관의 충돌이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관계 측면에서 접근하면 부부가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얼마간의 양보와 상대방이 갖는 가치관을 존중하는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각자의 신념에서 한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관계는 결국 종말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이 종말에서 먼로 부부는 같은 무게의 파국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먼로의 선택에 조금 더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별이나 취향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될지를 결정하고, 그 방향성을 결정한 후에는 실제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세상에 틀린 신념은 없다. 그러나 틀리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신념을 탈락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신념 또한 없다.
당장은 천박하다거나 비루하다는 세간의 비난을 받을지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그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틀린 것'이 될 수는 없다. 방법은 그 마음을 둘러싼 포장지에 불과하다.
먼로는 촬영장, 화보장에서 늘 책을 읽고 있었던 독서광이었다. <율리시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목로주점>을 읽으며,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반려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이 자신 삶의 주인공이자 주인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자아와 합일하기 위한 길을 부단히 연구하고 그 길을 대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배우였다. 그녀는 아직도 섹스심벌, 백치, 창녀 같은 편파적 코드에 가려져 있고, 이는 그녀가 취한 방법의 실패를 의미하지만, 그녀가 품었던 정신의 패배는 결코 아니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에서 뭇 프랑스 세력가들로부터 비곗덩어리라고 불리던 여성은 누구보다 프랑스를 사랑하고 의로운 정신을 가진 일반 시민이었다. 논개는 사회적 멸시를 받던(기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시대별로 달라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6세기 조선에서는 기녀가 국보급 예술적 자질을 갖춘 예인의 이미지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으며 관기에 대해서는 이 추세가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기였으나 적군의 수장을 끌어 안고 절벽 아래로 투신하는, 흔들림 없는 자기 확신이 있는 백성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창녀라고 비하할 수 없다. 누구도 그들이 갖는 사회적 지위에 비추어 그들의 신념까지 천박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아서 밀러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사람을 표현하는 것은 그가 걸친 옷, 타고 다니는 차, 다니는 직장, 사는 집, 들고 다니는 가방이기도 하지만,
그가 읽는 책, 봐온 영화, 드라마, 컨텐츠, 향유하는 문화, 그가 쓴 글, 그가 자기 전에 일기장에 갈무리하는 마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그를 더 잘 표현하는 것일 때가 더 많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당신이 결정하고, 사회가 당신을 바라볼 시선을 당신이 결정하고,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당신의 신념이 패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논의는 갈등의 핵심에 있는 가치관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
아쉽게도 전시회는 기대를 충족시키는 좋은 전시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공간 구성이 조잡해서 집중도가 떨어지고, 귀한 사진들이긴 하지만 역시 디스플레이 때문에 전달력이 낮다. 놀이공간과 접목시키려고 했다면 먼로의 인간적인 측면보다 화려한 배우생활에 초점을 두는 것이 통일성 유지에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편견에 베어 방황하고, 자신이 품은 신념 안에서 칼날을 찾는 서글픈 순간에, 존재했다는 점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누군가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방법은 실패했지만 의도는 패배하지 않았달까. 세상에 틀린 신념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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