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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올해 첫 영화 <버닝> - 이창동
세상의 만물은 메타포다(<해편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중).
그러니까 어떤 한 존재가 다른 어떤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더 나아가 인지하느냐는,
대상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가 아니라, 대상의 실존 여부에 대하여 분별하여 알고,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인식과 인지의 주체가 대상이 함유한 메타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한 존재가 역시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이해 받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어떤 의도를 전달하는 메타포인지 누군가가 결정할 수 있을까.
어떤 비닐하우스를 태워야하는지 정답이 정해져있을까.
인간을 이루는 의식 체계는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 인지라는 유한한 시스템은,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있는 존재만이 실존한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났으며, 어떤 존재에 대하여 무한히 사유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의식'의 영역의 빙산의 일각만큼만을 인지하고 있고, 무의식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한 책임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자신의 의식에 대하여 완벽히 책임 지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꿈에서 저지른 일이라도, 무의식이 저지른 일이라도, 의식에 무의식이 침투해 벌인 일이라도, 결국 책임을 져야한다.
때문에 늘 자신이 실존하는지 여부와 어떤 메타포를 품고 있는지, 자신의 실존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 '앎'을 갈구하고, 의미를 찾는 자, 그레이트 헝거로 진화하고자 사방에 간절하게 손을 뻗는다.
춤이 멎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메타포가 다른 이의 눈에도 같은 의미로 보일지, 해석될지는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딪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해 온 타인에 대한 분석이 오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의미 없이 사그라들 춤을 추는 자의 운명은 가끔 헛간을 태워야하는 충동으로 귀결되거나, 포르쉐911을 태워야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거나, 석양빛 속에 공허함을 위로하는 의미 없는 몸짓만 남기고 사라진다.
귤이 있다고 믿는 것은 간단하다.
귤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된다.
스스로의 의미를 찾는 일은 간단하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대단히 유의미한 메타포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된다.
대신 세상의 만물 중 일원으로,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로, 불타는 헛간 중에 하나로, 헛간을 불태우는 사람 중에 한명으로, 누군가의 집에 깃드는 남산타워에 반사된 잠깐의 유일한 태양빛으로, 농장에 하나 남은 유일한 송아지로, 우물에 빠진 소녀가 좁고 동그란 하늘을 올려다 볼 때 보았던 유일한 얼굴로, 귤로, 타오르는 촛불로, 큰 불로 이어질 불씨로,
나를 해석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남을 것이다.
귤이 있다고 믿어도 귤이 없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을 수는 없으니까.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실종'을 주로 다루는 이창동 감독이, '실존'을 주로 다루는 하루키의 작품을 재해석하였다는 점이 인상 깊다.
행사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의미 없는 춤을 추는, 그러나 거짓말을 해서라도, 끊임 없이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구축하려고 하며,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서 아프리카까지 떠나지만 끝내는 석양 아래 의미 없는 몸짓을 하는, 그리고 상실되어버리는 해미.
해미의 실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해미가 어떤 의미였는지, 세상을 이루는 메타포 중 하나로 해미를 어떻게 해석할지, 해미에게 종수는 어떤 의미였을지 종수에게 질문하는 벤.
비닐하우스, 우물, 고양이. 더 나아가 사랑했던 여자인 해미가 실존했는지 여부에 목을 매고, 자신이 무엇을 쓸지,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자신이 실존하는지, 실존한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끊임 없이 고민하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고통 받고, 결국 타인을 불태우고 나서야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피범벅인채로, 차가운 눈위로 내딛는 종수.
텅 빈 채로 활활 타오르는 비닐하우스.
깨달음은 관객에게까지 전이 된다.
이렇듯 활자로 표현된 문학적 메타포가 화면에서 영화적 메타포로 구현되는 과정이 성공적인데다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버닝>과 <헛간을 태우다>를 감상하면서 함께 보면 좋을만한 컨텐츠를 모아 보드를 발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모든 문화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컨텐츠를 모아 무료로 큐레이팅하고 있어요 :) 채널추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널 맞추가 요청은 댓글로 부탁드려요!
너무 무거운 내용이라 :) 마무리로 주말에 먹고 온 부엉이 돈가스 사진 투척!
내가 시킨 떡볶이 돈가스>_<
매콤~ 알싸~한 맛이었다. 키득키득>_< 먹는다고 신난 사람👀^_^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식사 전에 준 스프, 이런 스프 주는 옛날 경양식 집 오랜만이어서 뭔가 따뜻, 뭉클했다. 그리고 토토로가 시킨 치즈 폭탄인 돈가스.
누가 이 집 이름 까먹을까봐 온 사방에 부엉이들이 있었다. 귀여웠다. 부엉부엉
부엉이 돈가스 리뷰는 인스타그램 seol_vely 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버닝>이 너무 무거워서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고자 첨부한거라 길게 리뷰하지는 않겠습니다 :)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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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매일 새벽마다 유튜브 켈리최에서 올려주는 새벽 동기부여 모닝콜 영상에서 얻은 확언을 다섯번 적었습니다.
먼 길이어도 함께 가면 더 멀리, 더 행복하게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좋은 에너지 받아서 꿈에 조금씩이나마 더 가까워지시기를 기도합니다^_^!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나는 건전한 자아상을 통해 매일 성장할 것입니다.
I will grow every day through a healthy self-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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