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룻 퓨전 Amrut Fusion] 인생의 술은 인생의 얼굴을 닮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내가 이렇게 욕심 많은 사람이었나? 하며 놀랄 때가 많아졌다. 물론 내가 해내는 일들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은 편이다. 루나 친구들이 나를 나래미온느라고 부를만큼 부지런한 천성을 타고 나기도 했고, 내 마음이 편해서, 하나 하나 해낼때 행복한 일들이라서, 내 욕심이 채워지는 순간이라서, 다양한 일들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 재미로 한 일들일지라도 내 노력은 얄팍하지 않았고, 타인이 노력을 들여 만든 결과물에 양립 어려운 조건들을 동시에 요구할만큼 역지사지가 결여된 이기적인 성격도 못되었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내 소비가 일타 다피를 이룩하기를 바라는 욕심쟁이가 된 나를 발견한 것이다. 효율성과 멀티 태스킹을 요구하는 시대가 낭만 없다고 말했던 사람은 요즘 들어 부쩍 거울 속에 낭만 없는 스스로를 보며 어이 없어하고는 한다. 보고서가 컴팩트하되, 풍부한 사례와 근거를 녹여 내면 좋겠다고 지시하는 부장님을 나는 조금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점점 싫어하던 모습으로 스스로가 바뀌어간다. 저항이 무색하게도.
그래서 종종 바를 사이에 두고 위스키를 추천해주시는 바텐더님의 곤란한 얼굴과 먼 바다 건너 낯선 땅에서 증류기와 씨름하고 있는 주름진 장인의 손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고도수, 타격감 있는 피트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쪼금 촉촉한 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요. 하자, 촉촉한 위스키요? 음...하고 그가 고민에 빠진다. 백바로 돌아선 바텐더님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곧, 오일리하면 괜찮을까요? 아니면 스프링뱅크는 어떤가요? 하면서 사다리를 움직였다. 펑크는 원하지 않는데, 그냥 마셔야할까. 생각하다가, 암룻도 있나요? 했더니, 그가 아 저희 암룻 퓨전도 있어요. 하면서 또 차분히 사다리를 옮겼다. 군말 없이 친절히 대해주는, 처음 본 사람에게 깊은 감사함과 애정을 느꼈다. 친절한 잠잠한 속에서 그가 얼마나 이 공간과, 이 일을 사랑하는지가 뚜렷이 느껴졌다.
암룻 퓨전. 욕심쟁이의 그 어려운 미션을 해내는 기특한 위스키가 여기에 있다. 인도의 증류소 암룻의 야심작 암룻 퓨전은 카발란 보다는 덜하지만 기후 특성상 스코틀랜드 대비 angel's share가(원액 증발량) 6배 정도 많고, 인도가 전세계 위스키 생산량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적 이미지가 강해서 출시를 앞두고 가치에 의문과 걱정의 눈길을 받았으나, 2009년 출시된 직후 2010년 짐 머레이의 위스키 바이블에서 97점을 획득하며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인도의 운명과 나란히 병치해 놓고 보면 암룻의 성공이 상당히 절묘하게 읽힌다. 인도는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영국은 1767년 인도에 영국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 시점부터 1858년 인도 제국으로 전환 시점까지 약 100년 가까이를 대영제국의 식민지 확장을 위한 중앙 아시아 전진 기지로 삼기 위한 견고한 기반을 다지는 데에 투자한다. 이 식민지배를 위한 빌드업 기간에 있었던 세포이 항쟁, 그리고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식시점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식민지 국민들 사이에 불꽃처럼 번졌던 비폭력 불복종 저항 운동을 제외하면 대영제국과 인도제국은 의외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현재도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을 닮은, 껄쩍지근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암룻 퓨전은 인도산 몰트와 스코틀랜드의 피티드 몰트를 해발 900미터에 위치한 증류소에서 별도 발효, 증류하고 4년간 숙성시킨 후, 3:1의 비율로 원액을 섞어 추가 숙성한 뒤 출시한다. 말 그대로 퓨전(Fusion)이다. 대영제국의 식민 역사는 인도에 위스키 증류 문화를 이식시켰고, 비중은 작지만 풍미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스코틀랜드 몰트 원액과 인도산 원액이 섞여, 산스크리트어로 신들의 술, 인생의 술을 의미하는 '암룻'에 걸맞는 슬프게도 기막힌 맛을 이룩해낸다. 그러니 현재 인도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인도를 대표하는 위스키 모두 지극히 인도적인 것과 지극히 유럽적인 것이 섞여서 탄생한 결과, 성공적 퓨전인 셈이다. 그것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 이면에 어떤 눈물들이 숨어있든 간에.
복합적인 인도 역사의 뒷맛만큼이나 인생의 술 암룻도 복합적이다. 알콜도수 50%의 강력한 타격감과 피트감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촉촉하다. 그러면서도 스파이스와 짭쪼롬함, 견과류의 톱톱한 고소함이 레어링 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위스키 리뷰를 하면 주로 바, 혀 위에 올리면 녹아내리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암룻은 피트를 굳힌 바 보다는, 차갑지 않은 얼음에 가깝다. 얼음의 가장 겉면에는 피트, 그 다음에 녹는 안쪽 면에는 약간의 꿀과 견과류, 다음에는 스파이스와 짭쪼롬함, 마지막 중심에는 녹진한 피트와 그동안 쓰고 남은 여러가지 맛들을 꽁꽁 얼려 천천히 스르륵 오랫동안 녹게 만든 다층적 얼음이 시종일관 촉촉하게 혀위를 적시며 차례로, 오래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증발량이 많은 만큼 숙성도 빨라서 nas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풍미를 자랑한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인도라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제품이다. 이런 축축하고 촉촉한 날씨 속에서 보리가 자라고, 산속 깊고 높은 곳에서도 그 보리가 수분을 꼭 안고 품고 있어서 이토록 촉촉한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부지불식간에 욕심쟁이가 되어 있어서 놀라고 죄책감 시달렸던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요즘에는 얄밉게도 슬그머니 이쯤 욕심 부리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대신 부장님 욕심대로 컴팩트하고 풍부한 보고서를 쓰려고 골머리를 띵하게 앓는 벌을 자주 받고 있다. 두 가지 컨셉의 불편하고 껄쩍지근한 동거는 꽤 성공적이어서, 반기마다 쓰는 보고서가 00부에서 1년동안 2번, 나도 xxxx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세계적 위스키의 복잡한 생산과정에 비할 바 못되지만, 이 풍미를 내기까지 딛은 역사와 고민, 빈번했을 화해의 과정의 고단함 앞에서 내 욕심의 대가는 '가성비 좋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기적이게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인도의 천사가 살짝 마시고 남긴 위스키를 마시면서 인도에는 어떤 전통주가 있고, 200년이 가까운 식민지 세월 중에 위스키에 자리를 뺏기고 사라진 것은 얼마나 될지 헤아려봤다. 암룻을 만나고 욕심을 채워서 기뻐해야할지, 인도가 겪었던 역사 앞에서 울어야할지, 난감함이 아득했다.
여의도 핫플이니까 정말 가보셔야합니다ㅠ.ㅠ 스테이크 대존맛집!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질문은 댓글로 or 인스타그램 seol_vely로 부탁드립니다.
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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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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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도 켈리최 회장님 유튜브에서 보내주는 동기부여 모닝콜 영상을 확인하고,
확언 다섯번 쓰기 챌린지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고,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 목표한 속도대로, 꼭 이루시길 바라요.
나는 기적을 창조하기 위해 나의 지혜와 믿음, 그리고 태도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I put my wisdom, faith and attitude into action to create a 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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