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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엉망이어도. 봄날의 곰만큼.

by 헌책방 2022. 6. 25.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엉망이어도. 봄날의 곰만큼.


2020년 12월. 많이 아팠다. 하루 중에 울지 않을 때가 없었다. 부장님이 자리를 지날 때마다 말했다. 설프로, 힘들면 퇴근해. 쉬어도 괜찮아. 어디 많이 안 좋은 것은 아니지? 어머니는 괜찮으신거지? 매번 고갯짓으로 대답하는데도 그는 근성 좋게 눈물 흘리는 직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9월, 몇 년 간 골치였던 위에서 뭔가가 발견 됐다고 엄마에게 전화하자, 엄마는 즉각 삼성병원으로 달려 왔다. 암센터 앞에서 엄마는 멈춰섰다. 너 암이야? 아니, 나는 암 아니고, 암 걸린 것도 아니야. 그런데 엄마 종양은 암센터에서만 제거할 수 있대. 2개월 간 가족 전부가 이 거짓말 작전에 투입 되었고, 배신감에 몸을 떨던 엄마는 결국 고집을 꺾고, 수년 동안 이하선에 품고 있었던 종양을 떼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엄마의 침샘에 있었던 종양 덩어리 어디에도 암세포는 없었다.

 

 

엄마는 건강해졌지만, 2개월 간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부족, 일주일 동안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치른 간호로 나는 시들고 있었다. 엄마의 수술이 끝나자,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추위와 함께 몸에서 시듦이 티나기 시작했다. 출근하면서 카풀하는 선배 차의 보조석에 앉아 울었고, 그때마다 선배는 스타벅스 DT에서 따뜻한 차를 사줬다. 일하면서 창 밖에 눈발이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울었고, 부장님은 담요를 가져다 어깨에 덮어 주셨다. 퇴근하면서 버스에 타서 울었고, 버스 기사님은 아무도 없는 버스에서 내내 울다가 천천히 내리는 여승객의 뒷모습에 좋은 저녁 보내세요. 했다. 푸석한 얼굴을 하고 먼지처럼, 유령처럼 부유했다. 겨울 바람에 눈물이 얼어붙어 마스크 속이 얼얼했다. 병원에서는 몇 달간만이라도 요양할 것을 권했으나, 차마 일을 쉴 수 없었다. 일마저 쉬면 나의 존재 의미는 바닥에 나리는 눈처럼 녹아 버릴 것이었다. 2021년 2월. 도망치듯 서울을 떠났다. 번아웃 증후군. 나약한 사람들만 겪는 병인 줄 알았던 그것이 나를 서서히 말려냈다. 나는 종잇장에 시들어 붙은 꽃잎처럼 바래져갔다.

 


놀랍게도, K의 절대적 지지와 많은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모두가 멀리 있다는 것은 끔직히 외로운 일이긴 했지만-, 한적한 곳에서 주중에 정해진 루틴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급속도로 상황은 나아졌다. 자주 서울에 놀러가면서 여행의 설렘으로 평일의 끝자락을 버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불쑥 불쑥 울었다. 많이 웃은 날에도 신발을 벗다가 현관에 기대 울었다. 정신 없이 일하는 동안에는 더 이상 울지 않았고 큰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퇴근 후에는 가끔 멍하니 아무 생각하지 못하고 앉아 울다가 해야할 것들을 놓치기도 했다. 바보 같은 판단을 하기도 하고,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도 했다. 옥상에 앉아, 저수지를 걷다가, 아스라히 먼 희뿌연 달과 별을 보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고,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 겨울. 아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엉망인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껴안아 줘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 아직도 바보 같은 실수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지는 않는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번아웃과 평범한 일상의 경계에 서있는, 한국을 살아내는 현대인들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코드들을 녹여내고 있다. 작품은 요즘의 일상에서 찾아 보기 어려운 가치들을 감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를테면 따뜻함, 스스로에게 여유를 허락하는 방법, 가끔은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는 다독임 같은 것들이다. <불편한 편의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처럼 감동이 우르르 쏟아지는 책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이 작품 역시 자발적으로 선택할만한 스타일은 아니다. 늘 밝고 명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단골에게 로우북스 사장님은 슬며시 이 작품을 권했다. 속으로 조금 망설이다가 책을 받았다. 원래 사려고 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와 <2022 제13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동네서점 에디션>과 함께 이 작품도 봉투에 실려 내게로 왔다. 휴남동 서점의 주인 영주처럼, 사장님은 어쩌면 손님의 마음이 얼마나 다쳐있는지 묻지 않아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과연 로우북스의 추천은 유의미했다. 주로 영주의 모습에서, 그리고 영주 뿐 아니라 나름의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진 서점 주변의 인물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른 가까운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 또한 괜찮지. 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가 늘 행복하고 순탄할수만은 없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조금씩 다시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위안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이야기를 이끄는 영주를 중심으로 언뜻 떠올려도 10명은 넘는 이들의 사연을 담고 있어 스펙트럼이 꽤 넓다. 이것은 상당히 많은 독자로 하여금 특히 감동 받고 공감, 이입하게 되는 특정 인물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자신을 발견하고, 때문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추측건대 누가 읽어도 공감대가 형성 될 수 밖에 없는 특성 덕분에 밀리의 서재에서만 접할 수 있던 작품이 무게가 있는 종이책으로 발행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판매하지 않는 서점의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퍽 아이러니하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 영주를 보면서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주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그저 열심히 일하고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그 무너짐 때문에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상처주게 된다. 그녀는 이혼과 퇴사를 선택한 후에,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하고, 다시 책과 가까워진다. 그렇게 서서히 삶을 회복한다. 그녀는 사랑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관계 맺음 앞에서 망설이지만, 그냥 그저 사랑하자. 조르바처럼 그냥 쉽게 사랑하자. 생각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자. 는 제안에 조금씩 맘이 흔들린다. 물론 이 사랑, 일, 관계들도 언제 갑자기 장맛비에 잠겨 흩날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살기로 한다. 나와 영주는, 영주가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고, 퇴사 후 서점을 차렸다는 점 빼고는 소설에서 드러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비슷하다.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과 -물론 나의 경우는 하루키의 영향으로 위스키 바를 접목하는 것이었다. 이런 색깔의 업장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어쩐지 오랜 계획의 선수를 빼앗겨 슬프기도, 억울하기도 하다- 부모님의 기준에 맞춰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억압한 세월이 길다는 점까지 같아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마음으로 울 수 밖에 없었다. 영주의 사연은 물론 일반적이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영주가 민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는 자문에 스스로를 위해서 일해야하고, 일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블랙 위도우>를, 영주와 헤어지며 펑펑 울었던 전남편이 둘을 서로에게 소개 시켰던 친구를 영주에게 보내어 이제는 울어도 괜찮다는 전언을 전하는 장면에서는 Thanks, guys. So long, partner. 로 허물에 대한 탓함 없이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앤디와 우디의 이야기인 <토이스토리 3>을 떠올렸다. 책방 직원이자 중단발을 한 상수는 이름, 과묵함, 외모적 스타일도 비슷한 난산리의 상수를, 평생 민철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았던 희주는 30년째 학부형 모임에 나가고 있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영리하게도 배경으로 서점이라는 장소를 선택하여, 책 속에 책이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따라서 그 책 안의 시선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도 작품의 넓은 공감대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마코스 윤리학>, <데미안>, <호밀 밭의 파수꾼>, <서있는 여자> 등이 서점에 둘러 앉아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과 휴남동에 한정 되어 있는 세계관이 확장 시킨다. 이런 이유로 작품이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폭이 확 트인다.

 

휴남동 서점의 이야기는 또한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할 수만은 없고, 잘하는데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해서 불행하지만은 않은 것이 삶이다. 그것이 때로 우리를 미치게 하지만, 삶이라는 처연하고 거대한 아이러니답게 그것이 때로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한다. 삶과 삶의 주인은 대화를 통해 모두가 용인할 수 있는 지점에서 양보하고 양보 받으며 안온함을 얻는다. 나를 잃지 않고, 잊지 않으면서. 행복해지거나, 행복감을 얻는다. 누군가 나에게 아직도 서점을 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다. 고 대답하겠다.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며 행복을 얻는 것보다, 그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있고, 하루하루를 행복감으로 채우는 것을 원한다. 휴남동 서점에서 꿈꿔온 미래의 일부를 느끼며 가슴 벅찼던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증명한다. 물론 지금의 직업을 사랑하고 꽤나 잘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조율과 타협은 필요할테지만. 타인이 인정하는 행복보다 스스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소중하다. 또 누군가가 그래서 이제 괜찮냐고 물으면 조금 더 행복감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나아지고 있다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대답하겠다. 늘 괜찮아 보이고자 했고,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더 엉망진창인 그대로의 스스로를 껴안을 줄 알게 되었고,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물론 여전히 혼자 얼룩을 닦는 사람이지만, 후회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연초에 오랜만에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미도리네 집과 서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집을 나와 책방을 지나쳐 회사에 온다면 잘하는 일을 하면서도 더 행복할텐데. 하고. 어느 금요일 밤 책방에 K와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 둘러 앉아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위스키 한 잔씩 나눠 먹고 다같이 위층으로 올라가 쓰러져 잠들면 좋을텐데. 하고.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처럼 다 함께 나아지는 공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넘어질듯 위태로운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 가슴에 품은 꿈들을 봄날의 곰만큼 사랑한다. 삶도. 지친 날을 통과해 걸어오고, 걷고 있는. 걸어갈 나도. 그대의 괜찮음을, 엉망진창임을, 응원한다. 좋아한다. 봄날의 곰만큼.

 

 

사진 찍을 때는 웃지요 :)
개행복의 길로 갑시다! + 글에서 언급한 상수와 함께
어딘가 아련★

 

좋았던 부분을 인덱스도 모자라 사진 찍어 놓기도..!

행복감이 가득한 동네 아이들

 

큐레이션 맛집 로우북스 위치입니다.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철학이란 무엇인가, 망원동의 작은 서점 로우북스에서의 독서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철학이란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이 회사내 보직 변경과 관련해서 상담해달라고 연락해왔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는 현재 맡고 있는 업무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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