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끝: 마르셀 프루스트 단편선]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가. 완벽히 서로 다른 존재들이 허공에 제각기 포물선을 긋다가, 맞부딪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찬란하고 아름다울지언정 늘 그러할 수는 없다. 그간 각자가 남긴 무상한 자취를 서로 인정하고, 다른 모양을 받아들이고, 맞부딪음으로 인해 변경될 항로를 전쟁 같은 토론으로 합의, 재설정하는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지옥 같은 다툼 속에서 맞부딪음의 인상은 강렬해진다. 눈부심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교차점을 지나 자신의 포물선 속으로 침잠한다. 남은 이는 긴 자취를 남기며 떠나는 그 뒷모습마저 사랑하고 응원한다. 사랑은 전투다.
스물에 만나 3년 넘게 연애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사랑이 닳아져 그가 먼저 권태기를 느꼈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이별을 겪으며 아파했다. 그 사람을 오래 미워했다. 헤어진지 1년이 지나 그의 결혼 소식을 들을 때도 여전히 참담했다. 길거리에서 누가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그의 번호를 적어주기도 했다. 유치한 복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사랑은 닳지 않고 행복한지, 궁금했다. 잘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나의 충돌로 각자가, 그리고 각자의 포물선은 변화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사랑이 극히 일부일지라도 나에게 남아 있는 한, 여전히 나의 일부는 그 사랑을 위해 전투중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을 통해 말했다.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것은 사랑을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p. 56). 나는 아득한 옛일을 추억하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질투하고 찢어질듯 마음 아파했던 순간들이 진정 사랑이었음을, 그를 계속 사랑하지만 더 이상 특별히 사랑하지는 않게 되었기 때문에 질투의 끝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이 평온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승리했음을 증표한다. 격전의 휴지기는 전투에 장렬히 몸을 던진 자에게만 찾아온다.
민음 북클럽 스페셜 에디션 2022 <질투의 끝: 마르셀 프루스트 단편선>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전세계의 문학사를 바꾼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단편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어느 아가씨의 고백>, <질투의 끝>을 엮고 있다. 프루스트가 오랜 시간 집필하고, 죽고 나서야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통찰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단편들 또한, 그 정도는 상대적으로 얕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본연적 성질들에 대한 탐구를 세세하게 포함하고 있다. 그는 실존, 순수의 망각, 타락, 자아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프루스트의 경우 자신이 딜레탕트, 즉 실패한 예술가로 남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 상실, 질투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어느 자작의 죽음을 통해서는 누구나 얼굴은 여전히 삶을 향한 채 뒷걸음질로 죽음에 다가간다고 이야기하며 인간의 실존이 갖는 무망함에 대하여 탐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계의 삶을 통해서는 지상의 모든 것은 위에서 끌어당기는 힘, 이를테면 무게 중심을 버티게 하는 고귀한 노력 없이는 끝없이 추락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며 결말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담담히 정리한다. 스스로가 다시 타락하고 있음을 자각했지만 저항할 힘은 없었던 어느 아가씨의 심정을 그리면서는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자문하지 않는 자의 비참한 말로를 표현하여, 존재의 무게는 다름 아닌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표제작 <질투의 끝>은 프랑수아즈와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질투를 느끼는 연인 오노레의 전쟁과 같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질투로 괴로워하던 그는 갑자기 벌어진, 가볍게 치료될 줄 알았던 사고의 끝이 죽음에 이르고 나서야 질투가 끝이 남을 느끼고, 프랑수아즈를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더 사랑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오노레가 이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시간의 태엽을 감는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손 쓸 방법도 없이, 불타는 질투로 가득한 사랑의 길을 건널 것이다. 이로써 프루스트는 차라리 전투에 가까운 인간의 사랑과 관계 또한 정해진 결말에도 알면서도 초연히 현재에 투쟁하는 실존의 한 방식임을 공표한다. 프루스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인생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이라는 테마의 변주로 다양한 인생을 엿보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의 마음 밑바닥에 쿵. 하고 부닥쳐 코 밑에 대고 확인하는 감각을 선사한다. 독자가 자신의 실존과 사랑을 돌아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물론 소중하다.
몇 주 전에 낯 익은 이름이 카톡을 보내왔다. 이십대 중반에, 일전의 아픈 연애가 끝나고 3년 조금 넘게 만났던 옛 남자친구였다. 잘 지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혹시 통화 가능해? 하고 묻기에 톡으로 물어달라고 했더니, 지극히 직업적인 질문을 해와서 나도 모르게 폭소했다. 프로답게 송사와 관련한 전문지식을 줄줄이 타이핑해 보내줬는데, 그는 알엤어 고미워 ㅋㅋㅋ 아중에 보자규 ㅋㅋㅋ 하고 성의 없이 오타가 가득한 카톡을 보내와 다시 한번 나를 폭소하게 했다. 마주 보고 앉아 건넨 일방적이고 굳건한 이별 결심 앞에서 펑펑 울고, 이별 후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카톡과 전화를 해오던 그가, 이제는 과거의 일에서 초연해 보여 안도했다. 아마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승리했기에 그의 마음엔 평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연애하는 순간에도, 연애가 끝나고 미련이 남는 순간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구질구질하다거나 매력 없다고 느끼기보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받아줄 수 없어 미안했을 뿐. 그는 밀란 쿤데라처럼 전투하듯 사랑을 치르는 사람이었다. 나와 그는 교차한 포물선 너머 서로의 뒷모습을 응원했다. 그렇게 내내 방향은 다르나 서로를 사랑했고, 그 전투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의 성격을 떠올리게 하는 성의 없는 카톡에 깔깔 웃으며 나는 그가 내내 그렇게 평온하길 바랐다. 루나는 내가 들려주는 그와의 카톡을 들으면서 진짜 친구가 됐네. 하며 쉴 새 없이 웃었다. 질투는 끝났다.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책과 시집이 가득한 비건 카페 포엣룸에서 자매 데이트를 했답니다>_<
민음 북클럽에 가입하면서 고른 스페셜 에디션 세 권 중에 나머지 두 권은 벗겨진 베일과 체호프 단편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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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 귀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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