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RNALS(이터널스)> - 클로이 자오] 기억을 지워도 이 마음에 햇빛이 들까요
(제목의 아이디어를 Eternal Sunshine에서 얻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어떤 이름을 부여 받았든, 인간은 타고난 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나,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걸을지 결정하고, 자신의 삶을 바꿔 나갈 수 있다.
자신의 이름에 살고자 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름으로 살아낼 수 있다.
진리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추구하는 모든 존재는 같은 무게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영원한 햇살 속에 있어야 마땅하다. 사랑 받아야 마땅하다.
성별을, 인종을, 나이를, 종교를, 심지어 소속한 세계와 은하계를 넘어 그러한 존재라면 누구든. 모든 존재가.
며칠 전에 김춘수 선생님의 시 <꽃>과 이름의 의미,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이름의 의미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내 생각에 대하여(<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블랙 위도우>, <벼랑 위의 포뇨> 등의 감상문 참조) 친구로부터 걱정어린 피드백을 받았다.
부모가 이름을 두루미와 뭐시기처럼 이상하게 지으면 어떻게 하며,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에 이름의 주인의 삶 자체가 결정 되고 종속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 된다는 의견이었다.
순수하고 귀여운 걱정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름은 사전적인 의미에 국한 되는 단순한 편의상의 도구에 그치지 않는, 다층적으로 존재에 대해 접근하여야 이해 가능한 '존재의 의미'의 총체다. 이름은 누군가가 존재를 편하게 호칭, 지칭, 발음하기 위해 사용하는 몇음절짜리 짧은 단어가 아니다. 이름은 그간 그 이름으로 살아온 존재의 삶의 기억과 의미, 그 이름으로 살아갈 인생의 목표, 목적과 다짐, 존재가 스스로 이름에게 부여한 의미,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기억 되었으면 하는지 하는 소망의 총체다. 합일된 자아를 함축적으로 내포한 메타포다.
길가메시는 테나에게 말한다. 기억해. 너는 전쟁의 여신 테나야.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내 이름이 어떻게 발음되는지를 까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름에게 쥐어준 의미, 그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를 사랑하면 그 존재를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길가메시는 사랑하는 테나의 곁을 지켜주고(사실 원작 설정상 테나는 오랫동안 데비안츠의 장군과 사랑을 키운다.), 그녀의 이름을 그녀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녀가 그녀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 아리솀에 의해 도구로 만들어지고, 프로그래밍 되고, 행성에 파견된 이터널스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존재적 목적에서 벗어나 스스로 존재의 목적을 세우고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찾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이자,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지킬지 결정하고 행동에 나서는 이야기다. 내가 나로 살기로 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아리솀은 신(God까지는 아니고 god이다. 셀레스티얼은 유일신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수명이 정해진 모든 존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신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천인이라고도 불리며, 영겁의 세월을 살아내며 온 우주 내에 발생하는 탄생과 소멸, 순환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조작을 담당하는 우주적 존재인 셀레스티얼 종족의 프라임 셀레스티얼이다.
그리고 아리솀은 셀레스티얼이 행성자체와 적정 수의 지적 생명체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탄생(셀레스티얼은 프라임 셀레스티얼 말고도 당연히 다른 일족들이 존재한다. 스타로드는 셀레스티얼과 인간의 혼혈이고, 스타로드의 아빠인 셀레스티얼의 이름은 '에고'다. 별들의 군주라는 뜻의 스타로드라는 별칭도 원래는 에고의 것이었다고 한다. 에고와 스타로드라니. 이름과 별칭의 매칭부터 가슴이 찡해지는 일화다. 아무튼 셀레스티얼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창조주는 아니지만 MCU 내의 우주의 탄생을 관장한 자가 셀레스티얼 아리솀이며, 이 후 태어난 셀레스티얼들은 티아무트는 실패했으나 이터널스에서 시도했던 바처럼, 행성과 수많은 지적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며 태어났다. 다크엘프들이 이 상대적으로 어린 셀레스티얼들보다는 먼저 창조되었다고 한다. 태초부터 어둠의 종족 또한 함께 창조되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하기 때문에 행성의 인구가 감소되는 것을 막아서 적절한 시기에 셀레스티얼이 탄생하기에 적정한 인구가 갖춰지도록 환경을 조성하여 결국 셀레스티얼의 일족의 탄생과 이를 통한 우주 확장의 보조자 역할을 수행할 존재를 필요로하게 되고, 그래서 이터널스를 만들게 된다.
이터널스는 지구에 파견되면서 인간사에 크게 개입하지는 않되, 인간들을 먹어치우는 우주적 존재(지구 입장에서는 외계 생명)이자, 상위 포식자인 데비안츠를 몰살하는 임무를 맡게 되고, 문명의 발전에 사소하게나마 기여하기도 하면서 임무를 완수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행성에 애착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완벽히 인간에 섞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셀레스티얼과 같은 신적 존재가 되지도 못한 채로 수천년 동안 지구에 방치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끊임 없이 연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여 자아를 탐구하여 자아와의 합일을 이루기도, 그것에 실패하기도 한다.
신적인 존재, 인간의 눈에 신으로 읽히고 기록 됐던 이터널스는 사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 안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조차 사랑할 줄 알기도,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엇나가기도 한다. 셀레스티얼 아리솀마저도 데비안츠를 완벽하게 설계하지 못하였으니 온 우주를 통틀어 god 이하 모든 존재는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런 자신을 사랑해 줘도 괜찮다. 존재의 목적은 존재가 스스로 정하고,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 안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이 존재의 의미가 된다. 이터널스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모든 존재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메시지 외적인 측면은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서 평가가 극명히 갈리고 있다(메시지적 측면은 각자 달리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밖에 없으니 당연히 평가에 포함하기 어렵다).
일단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파스토스와 관련하여 파스토스가 히로시마 원폭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 흘렸고, 이를 통해 전범국가인 일본을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했다는 의혹이다. 물론 나도 그 장면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문맥적으로 이 장면이 삽입된 이유는 탐욕과 이기 때문에 인간이 전쟁과 살육이라는 실수를 반복해왔고, 그 실수의 역사 속에 해당 장면이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이지 일본이 전쟁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근대적 사회, 정치 시스템 속에서 일반인들이 국가가 내리는 결정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일본과 일본인들이 전쟁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개중에는 책임이 없고, 영향력도 없는데 무고하게 피해 입은 사람들도 분명 있다. 전쟁 기간 중 전답을 팔아 아직 어린 누이들을 시집 보내고(위안부로 징용 되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남은 돈으로 만주로 건너가 지내셨던 할아버지의 손녀로써 나 또한 일본에 대한 혐오 감정이 있다. 그러나 종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미국 입장에서는 진주만, 미드웨이 공습 이후 전쟁의 장기화를 우려했을 것이고, 전쟁이 계속 된다면 연합군과 일본 모두 더 많은 피를 흘렸어야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은 미국이 원폭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열도 전체가 망가져 재기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원폭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후대도 악영향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일본이 내린 국가적 결정에 전혀 관련 없는 일부 국민들이 겪어 마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살육을 동반한 전쟁을 비판하는 장면으로 삽입된 이 장면을 보고 슬픈 BGM 깔리고 슬프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이 장면도 슬프게 해석하는게 틀림없어! 하는 일차원적인 독해가 아쉽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건에 대한 유감에는 원폭의 원인제공자, 전범국가인 일본에 대한 비판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또한 오펜하이머를 포함한 개발자들이 진짜 후회했다고 하나 이 또한 일본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히로시마 원폭 투하사건을 겪어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이 어쩔 수 없이 동반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파스토스도 일본이 처한 상황을 슬퍼했던 것이 아니라, 아마 자신의 기술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비단 히로시마에서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전쟁의 수단으로 쓰일 것이 고통스러워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종합적으로 타당한 해석일 것이다. 물론 전술한 바처럼 오펜하이머 등 과학자들이 이 비극에 따른 무고한 피해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고증에 기반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건 외에도 탐욕과 의미 없는 경쟁 때문에 기술 문명의 발전이 오남용 되고, 그 결과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살육의 순간이 있는데도 굳이 이 장면을 파스토스와 연결 지은 것은 아쉽다.
또한 마블 페이즈3 특유의 캐릭터 간 얽히는 복잡한 관계성, 관련 작품들의 이스터에그를 찾는 데에서 오는 희열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이터널스가 기존 마블 세계관과 (사실 철저히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냥 어느정도.) 거리가 있고, 얽히는 서사가 셀레스티얼의 존재, 어벤져스 멤버들이나 블립, 타노스(작중에서는 역사적 측면으로 다뤄진다.), 비브라늄에 대한 언급 정도기 때문에 이 독립된 서사가 지루하게 와 닿을 수도 있겠다. 다만 이스터에그를 찾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는 스타일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이터널스가 인류를 지키고 데비안츠의 번식을 방지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금씩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실제 인류 역사나 문학 유산들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고, 주로 그리스로마신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정 덕분에 약간이나마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이터널스가 자신들의 고향으로 기억하고 있는 행성이 올림피아고,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이 사는 장소로 유래한 지명이 올림포스(올림푸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라는 점이다. 이외에도(나열은 캐릭터가 유래한 그리스 로마신화 속 인물의 인지도 순으로 배열해봤다. 철저히 나의 기준) 테나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 파스토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이카리스는 하늘을 나는 데에 도전했다가 에게해에 떨어져 죽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상징하게 된 이카루스, 마카리는 전령의 신 머큐리(헤르메스), 에이잭은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약스에서 유래한다. 또한 길가메시는 바빌로니아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를 다스린 반신반인의 왕이자 영웅인 길가메시, 스프라이트는 <피터팬>에서 피터팬을 사랑하지만 어른이 되지 못해 피터팬의 연인이 되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인 팅커벨에서 유래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남쪽에서 발전한 바빌로니아 등 문명이 발전할만한 요소는 충분히 갖췄으나 그 수준이 현대에도 가늠이 불가능하거나, 불가능했던 것으로 추측되어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인류의 대표 문명의 발달에 이터널스가 기여했다는 기막히고 재미있는 상상이 꽤 재미있게 다가온다. 또 세르시가 출근길에 찰스 다윈(굳이 다윈인 점이 눈에 띈다.)조각상을 찰리라고 부르며 아는 척하는 장면이 이터널스가 인간의 진화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읽히기도 한다. 다행히도 캐릭터의 유래, 주변 인물들과 함께 엮어서 생각하면 행간이 짐작이 가서였는지 개별 서사를 풀어내는 방법과 호흡은 각자 적정히 부여 받았다고 느꼈다. 러닝타임과 이터널스의 서두 에피소드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도 캐릭터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하고, 설명 받지 못한 부분은 상상으로 메우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기존 히어로물에서 봐온 파괴적인 액션신과 카타르시스 또한 떨어진다. 아무래도 인물들이 신적 존재다 보니 인간이 싸우는 것보다 더 화려하고 스케일이 크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데 영화는 작정하고 서사 중심으로 얼개를 푼다. 오딘이나 헬라, 토르 같은 기존의 신적 존재들을 떠올리는 것도 곤란하다. 아스가르드 방위와 침략자 몰살 목적으로 발키리를 육성하는 아스가르드 제국의 왕조와 군대에 비교했을 때, 이터널스는 데비안츠를 제외한 외부 자극에 대처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 셀레스티얼 티아무트를 잠재우거나 세뇌시키자는 의견은 있어도 파괴시켜버릴 방법이 없나 하고 궁리하지 않는 것이 여기에 있다. 이성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였다는 점이 주원인이겠지만 누구하나 무모하게라도 부숴버릴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는 법이 없는 것이 이터널스다. 주인공 세르시의 영향과 인류를 보호해야한다는 프로그래밍 때문이겠지만 늘 폭력적인 방법은 후차적으로 고려된다.
또, 길가메시로 분한 마동석이 한국 배우라는 점을 떠나서, 길가메시와 에이잭이라는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이터널스는 기술적으로는 고성능 로봇이기 때문에 이터널스 후속작에서 길가메시와 에이잭의 부활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긴 어렵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삶, 기억하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존재를 황폐하고 의미 없는 공허하게 만드는지를 경고한 작품에서 (지구에서의 기억이 백업 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기억을 잃은 길가메시와 에이잭을 부활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여진다. 백업이 되었다면 기억만 백업되면 새로운 길가메시와 에이잭이 예전의 길가메시와 에이잭이 되는 것인지, 그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백업이 되지 않는 설정이라면 조금 더 쉬운 길이 되긴 하겠다.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존재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의미를 지키도록 했으면서, 특정 캐릭터만 다른 캐릭터의 보조자 역할로 소비하기 위해 창조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이후에는 삭제하는 것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에이잭과 길가메시의 능력을 흡수한 데비안츠가 매력적인 빌런으로 활약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고려했을 때 두 이터널스의 죽음이 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캐릭터의 죽음의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심정적으로 거의 없음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디즈니의 압박이 강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이터널스 멤버들이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구성을 이루도록 애쓰는 것은 좋은데, 자연스럽기 보다 '이래야하니까'의 느낌이 지배적이다. 멤버 외의 인물들도 정성스럽게 PC 노선에 맞춰서 선정하고 배치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정 노선을 그렇게 정했다면 끝까지 몰두했어야했는데 파스토스를 흑인 게이인 남성으로 설정하면서 전술한 기술 발전의 이면에 대한 죄책감을 (예시를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려운 사례를 든 것도 모자라) 소수자에게 전가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각본가나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 맞춰 멤버를 구성하고 작품 안에서 내내 균형 있는 시각을 유지하려고 관계 하나하나 매칭에 신경쓸 정도였다면 각본 검토 과정에서 파스토스에 대한 몇가지 설정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했어야 했다. 최근 들어 디즈니가 인어공주에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하는 등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시각을 증명하고, 선한 영향력을 펼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설정상의 사소한 실수점들이 디즈니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어서 매우 아쉽다.
60점대로 썩토를 받으며 시작한 로튼 토마토 점수가 40점대로 내려가면서 계속 썩은 토마토 죽을 쑤는 이유는 대강 이러한데 클로이 자오 감독 특유의 시선과 마블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적 결합이 어긋났던 것이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가 되겠다. 마지막쯤에는 거대 액션을 소화하느라 주제의식(상술한 메시지적 측면)이 흐려졌고, 이것을 막기 위해 이름, 사랑, 등 주제의식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는 테나 테마를 억지로 삽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듄>을 아이맥스로 보고 꼭 아이맥스로 보라고 주변에 이야기했는데, <이터널스> 또한 시청각적 요소,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반응 등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아이맥스에서 관람을 추천하겠다. 그러나, 관람에 외부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면, <이터널스>의 핵심은 서사에 있기 때문에 일반 영화관에서 관람해도 무방하다.
나는 용아맥 명당으로 불리는 M열 중앙 블록에서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정말 영화에 엄청 몰두하고, 숨소리도 안내고 영화를 관람하며, 그러면서도 영화와 함께 호흡하는게 느껴져서 좋았다. 늘 용아맥 관객들에게서는 그런게 느껴져서 좋다. 시청각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도 어려운 영화여서 아맥 관람에 만족했다. 정말 존버는 승리한다. 용아맥 오픈런 때 실패해서 눈물 광광 흘리고 이후 계속 주말 오픈 언제하나 지켜보면서 I열 왼쪽 블럭 자리 주워담았었는데 주말 아침 관람객들이 늦잠 자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겁나 피곤해서 울면서 취소하기를 기다렸는데 과연 M열 중앙 블럭을 놓는 사람들이 있길래 와 이러면서 상영 직전에 광광 울면서 잡았다.
할말은 사실 더 많지만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된 메시지와, 아쉬운 점(은 거의 모조리)을 썼으니 속 시원하다. 쿠키 두개까지 시원하게 남기며 회수할 떡밥이 많다는 점을 강하게 주지했고, 돌아오겠다고 아련하게 속삭였으니 돌아온 이터널스의 이 후 행보는 프토길만 걷기를, 메시지와 영화 자체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관객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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