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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립교향악단(전주시향) 250회 정기연주회 베토벤 & 브람스] 닿지 못하는 곳에 도전하는 몸짓,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헌책방 2021. 11. 17.

[전주시립교향악단 250회 정기연주회 베토벤 & 브람스] 닿지 못하는 곳에 도전하는 몸짓,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 이미 도착한 존재를 질투하는 것은 때로 아름답다.
지옥 같은 르망 24 트랙 위를 메운, 페라리를 뒤쫓는 포드의 굉음.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의 원고 무게만큼무거워진 펜대로 장 폴 샤르트르가 써낸 <말>.
무엇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존재는 주어진 운명 너머의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그것이 누군가의 시선에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비로소 제대로 된 이름을 찾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 받는다.
그 길 위에 있는 모든 사건들은, 경쟁은, 질투는, 성공과 실패는 아름답다. 눈부시도록.

무대 아래까지 음악의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귀한 시간 인증>_<

독일은 음악, 문학이 흐르는 예술의 국가다. 특히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바흐, 바흐보다 한 세기 뒤에 태어난 악성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출신이자 베토벤보다는 한 세대 위인 모차르트와 함께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작곡가로 꼽힌다. 이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독일음악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요하네스 브람스는 다시 베토벤으로부터 한 세기 뒤에 태어나 독일음악의 3대 거장으로 불리게 되는 업적을 써냈으나, 악성으로 이름을 남기고 죽은 베토벤의 업적과 끊임 없이 스스로를 비교하며 괴로운 경쟁을 해야 했다. 불멸의 9개 교향곡을 써낸 베토벤의 아성을 뛰어넘을 자가 없었고, 보수적이고 꼼꼼하며 교향곡에 부제를 붙이지 않을 정도로 절대 음악을 추구하던 브람스는 22살 무렵 작곡을 시작했으나 43살이 되어서야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써낸다. 이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작품은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을 잇는 또다른 불멸의 교향곡이라는 의미에서 10번 교향곡이라는 칭송을 받지만 혹자는 베토벤을 지나치게 의식해 브람스의 특유의 선율미,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베토벤 10번 교향곡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 세월이 흘러 1900년대, 프랑수아즈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마음의 변화와 사랑의 흐름, 그 속에서 인간이 얻을 수 밖에 없는 상처를 서정적으로 그리는 데 브람스 작품의 이미지를 선택하여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으며,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은 일본 내 클래식 부흥을 이끈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메인 테마곡으로 삽입 되어 현대에서도 사랑 받았다.

전주시립교향악단 250회 정기연주회 베토벤 & 브람스에서는 입증된 피아노, 첼로, 작곡 실력을 갖춘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겸임교수이자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열정적인 지휘로 청중을 휘어잡고 있는 지휘자 정나라 선생님과,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와 프랑스 파리 고등 국립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치고 유럽을 무대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선생님이 참여하여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베토벤, 브람스의 음악을 선보였다. 7천원~1만원의 가격에 이런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전주시향의 정기연주회 관계자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응원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시력도 좋고, 거의 맨 앞줄에 앉은 탓에 그랜드 피아노 옆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손자국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김정원 선생님도 연주 중간중간 손수건을 꺼내 뭔가를 닦으시던데 그쪽에 찍혀 있는 것도 손자국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에그몬트 서곡 직후 피아노를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생긴 것 같은데 굉장히 신경 쓰여서 아쉬웠다. 악기 옮길 때 장갑 정도는 꼭 끼고 작업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옮기는 장면은 보지 않고 프로그램 예습을 하고 있었어서 정확하진 않다. 그 전부터 있었던 자국이라면 조치를 했어야 맞다. 인터메조의 여운을 음미하고 있는데 인터미션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차빼라는 요지의 주차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도 아쉬웠다. 꼭 공연장 내에 그렇게 우렁차게 안내방송을 했어야 했을까 싶다. 그것도 연주 끝나고 박수가 아직 이어지고 있는 와중이어서 몰입이 사그라지는게 아니라 깨지는 기분이라 아쉬웠다. 그래도 몇가지 아쉬운 점 빼고는 전주시향 공연은 가성비를 떠나 늘 만족스럽다.

프로그램

취향 때문이겠지만 외향적인 작품으로 알려져있는 베토벤의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 73 'Emperor'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E-flat 장조, 작품. 73 '황제') 는 기대보다 지루하다고 느꼈다. 같이 갔던 친구도, 앞자리에 앉았던 어머님들도 살짝 졸았다고 한다. 나도 조금 졸립긴 했지만 베토벤이 가지고 있던 프러시아계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권력의 정점에 올라, 자유를 압제하는 나폴레옹에 대한 반감과 애국심, 세계를 제패하는 권력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표현한 작품의 정서가 깃든 작품이라 메시지를 음미하려고 노력하면서 재미있게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하는 황제라는 부제는 베토벤의 의도가 아니라고 한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당당함과 우렁참에서 비롯된 제목인데, 정치적으로 베토벤이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재미 있다.

베토벤의 Overtue to "Egmont", Op. 84 (베토벤 / 에그몬트 서곡, 작품. 84) 와 브람스의 교향곡 1번 c 단조,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이 끝나고 앵콜곡으로 김정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브람스의 Intermezzo Op. 118 no. 2 (인터메조) 가 전부 엄청 좋았다. 특히 인터메조의 여운이 공연 끝나고도 오래갔다. 브람스는 음악을 대하는 데에 있어 보수적이고, 대쪽 같은 성격만큼이나 사랑 또한 일편단심이었는데 인터메조는 그가 평생 사랑했던 한명의 여인 클라라에게 헌정한 곡으로 대중에 잘 알려진 유명한 곡이기도, 많은 클래식 마니아들이 인생 곡으로 꼽는 곡이기도 하다. 베토벤 협주곡을 끝내고 다음 작품의 작곡가인 브람스의 선율미가 두드러지는 곡을 골라 연주해주시는 연주자 선생님의 센스에 감탄했다.

에그몬트 서곡은 초반부에 정나라 지휘자님 모션에 압도당하는 바람에 내내 압도당한 상태로 들어야 했는데, 필리프의 왕 필리프의 압제 하에 반항하다가 목숨을 잃는 에그몬트의 비극을 그린 괴테의 역사극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기 때문에 초반에 압도당한 바가 몰입에 크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베토벤 특유의 열정적이고 운명의 소용돌이가 눈에 보이는 듯한 음악의 '몰아침'이 인상적이다. 독일은 에그몬트 서곡으로 <파우스트>를 깨운 악마 같은 재능을 지닌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엄청 딴 소리긴 한데 독일, 오스트리아 계열 인물들 이름은 정말 러시아급으로 어려운 것 같다. 바흐의 풀네임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모차르트의 풀네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브람스 시대에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의 발표를 지켜보고 10번 교향곡이라고 감격했던 명지휘자의 풀네임은 한스 '폰' 뷜러다. 풀네임이 정말 헷갈린다.)와 말 그대로 악성인 베토벤을 가진, 문화 강국임을 증명했다.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은 당대 주류였던 낭만파가 관현악의 압도적인 음향과 다채로운 음색을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브람스는 고전주의 음악을 추구하며 평생을 실내악과 선율미에 중점을 두고 작곡을 했었기 때문에 상당히 의외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모범적 스타일로 삼아 작곡했다는 이 작품은 운명교향곡 1악장과 합창 교향곡의 환희의 주제의 흔적이 여실히 엿보인다. 확실히 베토벤 교향곡의 형식과 에그몬트 서곡 같은 장대함, 거대한 스케일이 닮아 있고, 모르고 들으면 세 작품을 교묘히 섞어 놓아도 서로 잘 녹아들며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버이 은혜랑 스승의 은혜를 이어서 부르는, 어렸을 때 했던 장난처럼 테마가 서로 섞여 있어도 모르고 듣는 사람은 전혀 못 알아 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람스가 평생 만들어왔던 특유의 감수성과 옆에 강이 흐르는 평화로운 들판을 연상하게 하는 선율 (말로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하다ㅠㅠ) 또한 녹아들어 있어 온고지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경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녀팬 오지게 울먹이면서 다가가 받은 지휘자님의 사인ㅋㅋㅋㅋㅋㅋㅋ

공연이 끝나고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눈물로 보내며(정말 광광 울었다. 다들 기회되면 한번 들어보시길. 카라얀 버전도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다. 카라얀의 풀네임도 헤르베르트 '폰' 가라얀이다...... 폰 뭐냐...... 거의 만능급으로 모든 이름에 쓰이누ㅋㅋㅋㅋ 나중에 독일인 이름도 공부해봐야지.) 로비로 나왔는데 지휘자 선생님께서 청중들을 배웅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가서 사인까지 받았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되려 행복한 마음으로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음악이 가진 힘이 어떤 것인지 가슴으로 배울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긴 설명하지 않아도 희대의 두 작곡가의 작품을 왜 함께 프로그램에 넣어 구성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온몸이 으씰하게 추운 가을 밤이었다. 연미복을 입은 그는 아직도 머리칼에 흥건히 맺힌 땀을 닦지도 않고. 가을 밤으로 나아가는 청중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전주시향 송년 공연 못가서 너무 아쉽지만;ㅁ; 신년 공연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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