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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우주에서 하나뿐, 이라는 이유만으로. / 북리뷰, 독서 일기

by 헌책방 2022. 3. 23.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우주에서 하나뿐, 이라는 이유만으로.


2020년 10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인형 같이 작은 아이가 입양 가정에서 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태어난지 1년 4개월여만에 사망한 사건이었다. 전국에 있는 부모, 입양 가정에 소속한 사회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멀찍이 놓여 평소 사회 문제에 얼마간은 무심했던 이들까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죽음 앞에 분노했다. 그즈음 회사 주변 거리에 놓여 있었던 아이의 명복을 기도하는 화환들과 그 아래 누군가 두고 간 편지들, 아이를 위한 선물들 때문에 매일 아침 모두의 출근길이 눈물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 외에도 친부가 아이를 유기하고, 친부의 여자친구가 이 유기에 적극 가담하여 아이가 사망한 사건과 친부와 계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 계모가 9살 아이를 트렁크에 가둬 숨지게한 사건 등 '인간이라면' 마땅히 보호해야할 아이들을, 어른들이 학대하고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사건과 관련하여 아이를 입양하는 보호자들의 역량과 심성, 인간성 같은 자격 심사 과정이 느슨하다는 주장을 둘러싸고 단연 가장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비정한 00'과 같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여 써낸 자극적인 기사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점은 그들이 양부모, 계모였다는 신분적 한계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아이의 법적, 사실적 보호자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입양가정에서도 사랑 받고 튼튼한 아이가 자란다. 계모가 친부의 성적 학대로부터 아이를 탈출시키기도 한다. 전국민이 일련의 아동 학대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다 자라 자신의 몸을 보호 가능한 어른이 이제 막 걷고 뛰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가족관계증명서상, 내지는 사실상 아이의 부모라는 사람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이 충격이 가중되는 데에 역할할 뿐이다. 조두순에 대하여 그가 아이의 부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죄를 경감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땅에 단 한 명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는 1950년대 초, 신문에서 사이비 종교 교주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상한 사건을 발견한다. 사이비 교주가 자신은 지구 멸망의 계시를 받았고, 자신을 따르면 멸망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신도들을 모아 사이비 종교 단체를 구성했다. 문제의 멸망의 날, 결국 멸망은 일어나지 않았고, 교주는 교도들에게 교도들의 믿음 덕분에 지구가 멸망을 피했다고 주장한다. 당대인들이 보기에도 이는 택도 없는 주장, 따를 이유가 하나도 없는 엉터리었지만, 당시 교도들은 자신들이 지구를 구했다는 말에 더 열성적으로 교주를 따랐고, 상당히 오랜 기간 단체는 견고하게 유지 되었다고 한다. 현대, 매스컴과 sns가 어느 다른 땅보다도 활성화 되어 있는 우리 나라에서도 사이비 종교 단체나 다단계 회사가 선량한 사람들을 꾀어 내는 일은 흔하다. 페스팅거는 이러한 현상에 '인지부조화'라고 이름 붙인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갖는 신념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신념과 실제로 경험하는 바가 서로 일치하지 않거나 일관적이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 인지부조화고, 인간은 이 모순의 상태, 불일치, 비일관적인 상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간극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바꾸거나 상황을 합리화 시키는 등 부조화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시도를 한다. 사건 앞에서 우리는 정상적이라면 어른이라면 아이를 보호해야한다는 우리의 신념과 사실이 이루는 부조화를 목격했고, 우리가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라는 점을 자각해야 했다. 아이를 죽게 만든 어른들과 함께 같은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구성원들이라는 점 앞에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갖춰야하는 덕목에 대한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물론 시스템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도, 형사적인 책임은 다름 아닌 가해자들이 오롯이 져야한다는 점은 지극히 타당한 사실이다. 그러나, 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사법시스템이 그들에게 내려야 할 벌을 촉구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이들이 더 나은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보호책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사건을 분석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정인이의 비정한 양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그 죽음 앞에 당당해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답지 않아질 가능성에 대해서 스스로 점검하고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을 보면서 오열하고, 티비를 보면서 손가락질하고, 아이에게 편지를 쓰던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생업에 묻혀 그 일을 잊었던지, 쓸쓸히 남은 화환과 덩그러니 남은 장남감들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황망했는지 모른다. 너그러이 우리 신념과 현실의 부조화에 대하여, 그 부조화를 빚은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지는 않았는가. 세상에는 잊지 않아야할 것들이 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아동 학대 사건과 같은 참담한 사건에 비하면 가벼운 무게의 인지부조화에 대하여 논하고 있지만, 단순해보이는 문제를 다루는 대신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이 심리학자 앤디 루트렐이 주장하는 것처럼 1. 신념이나 현실 중 하나를 바꾸거나, 2. 모순을 합리화하거나, 3. 불일치 자체를 완전히 사소한 문제로 만드는 것에 제한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우리와 우리의 신념은 상황을 합리화하거나 논제의 가치를 무가치한 것으로 격하시킬만큼 무능력하지 않다. 한아는 지구를 사랑하고,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사소한 약속도 지키고, 그 신념으로 자신의 운영, 직업, 사업을 운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사실 그의 외피를 쓴 외계인이고, 애인은 외계인의 신분과 재산을 가지고 우주 여행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아는 극심한 인지 부조화에 시달린다. 그녀의 신념은 '그는 내가 사랑했던 경민이 아니야. 경민이의 외피만을 입었을 뿐이지. 따라서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그를 사랑할 수는 없어.'이고, 상황은 '나는 외계인이 마음에 들고 사랑에 빠지고 있어.' 다. 한아는 '당연히 외계인이든 다른 남자든 새롭게 사귈 수 있지. 우주는 하나인 것을! 경민을 사랑했던 것은 이미 지나갔어!' 라고 생각하고 신념을 바꾸거나, '외계인이 나를 사랑해서 왔겠어?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속지 않아야지'하고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그동안 지구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주가 주는 평화를 누리고 지친 마음과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 받을 자격이 있어. 게다가 그의 외피는 경민이랑 똑같고, 엄청 착하고, 젠틀하고, 주변 사람들도 다 응원하고 있잖아?......'처럼 생각을 끊임 없이 더하며 합리화를 하거나, '외계인이든 뭐든 어때, 그냥 한번 사는 인생 맘대로 사는거지'라고 불일치 자체를 사소한 문제로 치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한아는 그저 오랜 시간, 부조화를 견딘다. 외계인이 전하는 진심에 귀 기울이고, 오랜 시간 그가 자신에게 기울이는 마음과 자신이 그에게 기울이는 마음에 집중하고, 결과적으로 무엇보다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서로간의 사랑이지, 그가 경민의 외피를 하고 있다거나, 외계인이라거나, 그녀가 과거에 경민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요컨대 그녀는 사랑으로 신념과 현실이 부딪어 만든 모순, 인지부조화를 뛰어넘어 버린다. 그녀는 그를 통해, 먼 우주에서 자신을 지켜보다가 사랑에 빠져 먼 길을 달려 온 그를 통해, 평생을 갚는 데에 쓸만큼 큰 빚을 지며 여행해 온 그를 통해, 자신은 온 우주에서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이 감정이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사랑임을 깨닫는다.


정세랑은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글을 쓴다. 저쪽 세계만큼이나 이쪽 세계에서도,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은 메타포다. 그녀가 쓰는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있음직한 이야기처럼, 현실의 이야기처럼 와닿는 것은 설정 하나하나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 되고 있고, 그녀가 이 이야기들과 이야기를 이루는 메타포들이 언젠가는 현실에서도 무게를 갖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계가 제자리를 찾는 데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상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 <재인, 재욱, 재훈>, <시선으로부터,>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공사장에서 죽은 인부의 목숨이 크레인 보다 값싸고, 이유 모를 폭력의 휘두름 속에서 여고생이 죽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학교를 탈출한 아이들이 사막을 달려 구조를 요청하고, 인간이 바다에 버린 탐욕의 찌꺼기를 먹고 고래가 죽어가는, 이 잔인한 세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이 아이러니를 딛고 일어날 수 있고, 우리가 가진 작은 힘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으며, 그 작은 힘을 발현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은 사랑이라는 확고한 가치관을 내비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 믿음은 강직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는 유연한 것이어서, 무엇보다 유쾌해서 늘 좋다. 적어도 이 방법은,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오시마의 말처럼, 사랑은 세계를 다시 세워가는 일이니까. 사랑이란 어떤 일이든지 일어나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순진하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떠난 아이들의 죽음과 남은 아이들의 안온함을 보살피려고 한다. 앞으로 더 사랑하겠다고. 모두가 잊어도 기억하는 이들만큼은 기억하겠다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든 사법, 입양 관련, 아동복지, 성폭력 등에 관여하는 시스템은 늘 완벽에 다다르려고 발전할 뿐, 완벽하게 모든 피해자들을 구출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빈틈을 뚫고 우는 아이들을 구해내는 사람들은, 밥을 게워내는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 교사, 다친 아이를 진료한 의사, 아이들이 성폭행 피해사실에 대하여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택시 기사, 옆집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신고 버튼을 누른 다정한 이웃이다. 인간적인 인간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인간적인 인간인가. 우리는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우리를 비극적인 사고에서 구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작은 용기고, 나약한 힘이다. 비극적인 사고에서 우리를 부조화 압력에서 구하는 것은 외계인의 사랑의 말이고, 당신의 깨달음이고, 당연하게도 당신이 품은 사랑이다. 당신은 지구에서 하나뿐이다. 우주에서 하나뿐이다. 그러니 하나뿐인 당신은, 당신이 우주에서 하나 뿐임을 알고 있고,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저 당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우주에서 하나뿐,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당신은 마땅히 옆에 놓인 존재를 사랑해야한다. 그가 우주에서 하나뿐, 이라는 이유만으로.

 

 

욕도 참신하게 하는 한아
한아에 워낙 이입했어서 나도 원래 경민이를 싫어했는데. 사랑했던 사람, 소중했던 사람의 마지막은 어쩔 수 없이 마음 아프다.
오랜만에 빌려 읽는 책이라 내가 사랑한 문장들 떡메모지가 동이 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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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공부하며 이성적 사고를 발달시킵니다.
I study human nature and develop rational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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