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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당신에게

by 헌책방 2022. 6. 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당신에게

아니, 도대체 왜 우는 거야. 눈물 앞에서 모든 연인들이 예외 없이 물었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뭘 잘했다고. 얼른 주워 삼겼을 뒤에 이어진 말들도, 발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만 하다고도. 눈물은 최선을 다했다는 표식이었고, 결과와 무관하게 억울하다는 호소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얼른 결정해. 지금 결정해야해. 머릿 속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무기력하게 초여름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 나는 순발력이 좋지 못한 인간이다. 길게 생각하고 오래 고민하고 여러 방향으로 사고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가끔 전 애인들과 멀어진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를 이타적이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데에 반해, 떠난 사람들은 아마도 나를 독단적인 위선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첫번째로는 최선의 결과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다른 선택지를 선택해야했다는 후회로 귀결 된다는 점에서 나의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두번째로는 나는 인생이 세 번, 네 번,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가면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경험이 축적되면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지독한 낙관주의자며, 세번째로는 능력 부족에 지독한 낙관주의자임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들과 고민을 나누지 않는 것이 배려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해서 온전히 혼자 책임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거야. 때문에 이야기해야 마땅한 좋지 못한 소식이나 관계와 관련한 이슈들도 혼자 해결하려고 내내 안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 더 이상 공유를 유예 할 수 없는 순간에야 내놓는다. 그 결과는 당연히 파국이다. 너의 말이 맞아. 잘 못 했어. 말했어야 했어. 최대한 해결하고 문제상황을 공유해야하겠다는 결정마저도 후회로 귀결한다. 나는 너무 복잡하다. 이기적이다. 오만하다. 그리고 그것이 종종 견디지 못할만큼 스스로를 밉게 한다.

 

그간은 주로 책과 영화를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접할 때, 그 이야기를 외피로 하여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만 집중해왔었는데,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그간의 생각이 바뀌는 일을 겪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소개글을 필두로 인터뷰마다, 작가는 활활 타오르는 초기작으로 산화한 이후로는 늘 그을음으로 살고 쓴다. 조금씩 형식과 디테일이 달라질뿐 늘 같은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작품들의 제목을 서로 바꾸어도 괜찮을 정도다. 작가는 결국 평생 하나의 작품을 쓴다. 같은 내용들을 발견해서 놀랐다. 돌이켜보면 사르트르는 평생을 실존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하루키는 늘 자신의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치유를 건네고, 봉준호 감독은 훌륭한 작품들 거의 대부분에 화면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수직선 위에 계급과 계층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부조리에 대하여 논하고, 박찬욱 감독은 정체성 때문에 차별 받는 존재들의 현실과 여성, 동성애, 복수, 인간 본성, 죄의식 등 개인적인 코드에 집중하(고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않지만, 외부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만은 차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해왔다. 마찬가지로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실존과 인간의 삶, 이데올로기와 그를 둘러싼 투쟁, 그리고 키치에 대한 관점을 시리즈로 써왔다. 때문에 다시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비교적 헐겁긴하지만 특유의 대위법과 다성적 구조를 이용해서, 쿤데라와 쿤데라의 조국이 놓였던 정치적 상황, 이데올로기의 의미와 대립, 똥의 의미를 소거함으로 얻게 되는 미학적 이상이라는 의미로써의 키치, 꿈의 의미, 인간과 짐승의 근본적 차이점을 통해 확인하는 인간 본성, 동물권을 포함한 환경문제, 양극단은 통하는 이유, 인간의 잔인성과 폭력, 세계의 집단수용소화, 인물들이 실존을 이룩하고 무위를 받아들이는 과정 등 다 못 꼽을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주제와 관계 맺고 있는 한가지 조건이자 외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물론 씁쓸한 사랑이야기가 막을 내리면 독자는 객석에 고독히 홀로 남아 자문한다. 어김 없이 질문은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그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요컨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를 사랑이야기를 빌어 전달하고 있고, 그리하여 외피인 러브스토리가 유독 중점적으로 돋보이고, 또한 그가 연작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인 실존이 핵심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바람둥이 외과의사 토마시와 우연히 만난 그를 따라서 고향을 떠나 프라하에 정착한 테레자의 오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토마시는 알고 나면 거의 비슷한 여자들 사이에도 그들을 구분짓게 만드는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고, 그녀들의 백만분의 일에 불과한 미세한 틈을 성관계로 확인한다. 테레자는 그가 밖에서 행한 정사의 흔적을 확인하며 늘 고통 받고, 질투에 못이겨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들의 Es muss sein(독일어, 그래야만 한다.)다. 토마시와 테레자 뿐만 아니라 토마시의 연인이었던 사비나, 사비나의 연인이었던 프란츠, 토마시와 테레자의 결혼생활 10여년의 증인이었던 강아지 카레닌까지, 그들은 우연의 떠밀림으로 사랑에 빠지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떠나지 않는 것의 말로는 몰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사랑에 묻혀 있음을 택한다. 그것은 자신의 말로를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처연한 인간의 숙명과 닮았고, 농담(弄談) 같은 인생에 맞춰 농담(濃淡)을 옅게 조절하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거대한 모순인 삶에서 휩쓸리지 않으려고 단단히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진중한 태도이기도 하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잔혹해진 프라하를 떠나, 토마시가 바람 피울 여자도 없고, 그들 부부가 정치 때문에 자유를 위협받을 위험도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댄스파티에 다녀오다가 교통 사고로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난다. 사비나는 평생을 키치와 싸우며, 죽은 후에 자신의 시신을 누를 누름돌이 없는 장례 문화를 찾아, 보헤미아에서 더 멀리로 계속해서 떠나는 삶을 산다. 프란츠는 사비나의 시선에 자신이 어떻게 비출지 상상하며, 공산주의를 택한 베트남이 침공한 앙코르와트로 향했다가 허망한 죽음을 맞는다. 카레닌은 평생을 진리로 따랐던 주인 테레자의 숨소리 옆에서 존엄한 마지막 숨을 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의 형태를 빌려 쓴 인간의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담론들에 대한 거대하고 진지한 고찰의 에세이이자, 인간은, 이렇듯 복잡하고 진지한 요소들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우연을 이기지 못하고 쉬이 사랑에 빠지고 그것에 의해 지배 당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임을 논증해내는 논설문이다. 

 

나를 떠났고, 떠나고 있고, 떠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참을 수 없을만큼 존재는 가벼워서 나 또한 가벼워야하는지, 아니면 그래서 무거워져야 하는지.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내가 어떤 존재이기를 원했는지.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나라는 존재의 부재로 인하여 그들이 원하는 삶으로 조금 더 가까워졌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배려하지 못했고, 못하고 있고, 못할 것을 알고 있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베토벤이 겪은 우스운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작품번호 135 마지막 4중주 4악장의 핵심이 태어났듯이, 농담 같은 나의 삶과 만났던 잠시의 기억이 그들 삶을 진중하고 형이상학적인 진리로 만드는 데에 보탬이 되게 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어서 속이 상한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남을 것이고, 어떤 선택을 내려도 평생 후회할 것이며, 추락을 향한 욕구는 언제나 가슴에 생생할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늘 최선을 다해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고, 좁은 속에 한가득 무거운 고민을 품고,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매일 물을 것이다. 그러니 회신 없는 물음에 스스로 대답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정신에 따라 고민을 비우고, 주변과 나누고, 조금 덜 괴롭기로 한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로 한다. 그래서 참을 수 없을만큼, 견디지 못할만큼, 자명하게 빛나는 카르마인 무위를 향해 걷기로 한다. 그리고 당신.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밖에 없다. 머무는, 떠나는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 밖에 없다. 그토록 당신을 눌러 괴롭혔던, 배꼽에 난, 긴, 무거운, 닻을 떼기로 한다. 그래서 닻을 단단히 감아 올린다. 머무는, 떠난, 떠날, 모든 그대들을 사랑한다. 그대들이 떠나서, 떠나지 않아서, 그대들을 더 사랑한다. 그대들에게 카레닌의 미소를 보낸다. 사랑은 전투고, 나는 내내 오랫동안. 당신들을 위해서 싸울 것이다. 

 

 

*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서 앉아서 책을 읽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잠시 버스 시간 기다리면서 커피 한잔 마시기에는 참 좋았던 인솔커피

위치는 지도 참고하세요!

전주터미널 집은 엄청 저렴하게 아메리카노를 공급하고 있는데, 직영이고 테이크아웃 위주라서 저렴한 것이라고 하네요 :)

이와중에 물어봤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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