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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사라진 오래 남는 것들 / 북에세이, 북리뷰, 독서 일기

by 헌책방 2022. 6. 8.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사라진 오래 남는 것들

사람의 기억은 이상하다. 이것까지 저장하니까 용량이 부족하지. 살펴 보면 한숨이 절로 새게 하는 가벼운 기억이 꽤 많다. 예컨대 펌프하면서 땀을 비오듯 흘렸던 전학 간 경수의 얼굴이라든지, 불콰한 얼굴로 오는 애들마다 새우깡 몇개를 나눠주시던 술꾼 세광슈퍼 아저씨라든지, 닭도 튀기고 슈퍼도 하는 오성슈퍼 냄새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오성슈퍼는 들어서면 오른편에 있는 부엌에 꼬꼬 소리가 가득했고 수많은 생명의 죽음을 암시하는 커다란 칼과 도마로 쓰는 새까매진 나무 밑둥이 어쩐지 서늘하게 했지만, 닭을 튀기는 달콤하고 기름진 기름 냄새가 가득해서 따뜻하기도 했다. 닭 주문이 들어왔는지 사장님이 닭을 잡고 있는 순간에는 눈을 질끈 감고, 과자가 가득한 매대 사이에 주저 앉기도 했다. 세광슈퍼는 사라지고 세광이가 누구인지 알 길도 함께 사라졌지만, 오성슈퍼 사장님은 지금도 오성닭집으로 이름을 바꿔 닭집만은 운영하고 계시는데, 작은 마을에 온갖 치킨 프랜차이즈는 다 들어서서 닭집에서 닭을 튀길 일도 별로 없을 뿐더러, 그곳에 다시 가보기가 겁나서 가보지 못했다. 과자를 사러 가면 친절한 사장님이 우리집은 딸이 없어. 아줌마도 딸이 필요하거든. 하시며 자체적으로 1+1 행사를 해주셨는데, 그 따스했던 기억의 지금은 어떨지 확인하는 것이 무섭다. 잔돈이 부족해서 울상 지으면 모른척 해줄게. 하면서 과자를 검은 봉다리에 넣어주시고 어여가. 하시던 그 분을 기억하지만, 그 분은 30대가 되어버린 꼬마 손님을 기억하지 못할테다. 그 기억의 불일치가 그럴 수 있지. 그럴만 하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그래서 굳이 그 불일치를 확인하러 나설 자신이 없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세광슈퍼나 오성슈퍼는 불편한 가게들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주인 아저씨가 낮술의 흔적을 가득 담은 얼굴로 안쪽 방에 앉아, 어 왔냐? 하면서 바깥 쪽을 내다보는 구멍가게가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구멍가게들은 한결 같이 <추격자>에서 영민이 미진(서영희 분)을 죽였던 작은 동네 가게랑 소름끼치게도 똑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마치 짜고 친 것처럼. 판매 규모도 작고, 물론 발견한 순간 장땡을 잡은 것이지만 간혹 유통기한 넘은 (좀처럼 과자는 유통기한 넘기가 쉽지 않다) 과자도 나온다. 말하자면 불편한 슈퍼다. 요즘에는 작은 마을에도 하나로마트, 00 슈퍼마트 같은 대형 마트들이 들어서서 이제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예의 슈퍼들과, 아줌마, 세일러문 다이어리 쪼끄만거 어디있어요? 하면, 글쎄다. 어디 뒀지. 거 어디 찾아봐라잉. 아줌마 바쁜게. 같은 대화가 자연스러웠던 새싹문고 같은 존재들이 기억 속에서 유독 생생한 것이 더 아이러니하다. super 하지 않은데 슈퍼라고 당당히 이름 붙여놓은 아이러니들. 불편하고 그리하여 현존하지 않게 된 것들.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현실에서 사라진 불편한 것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며 슈퍼하지 않은 슈퍼들을 떠올렸고, 사라진 것들이 오래 남는 이유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대놓고 감정을 유도하는 텍스트들을 정말 싫어하는 편이다.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한다. 나는 스크린 앞에서 <7번방의 선물>을 보면서 울고,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으면서 마음 찡해하면서도, 돌아서서는 눈알을 굴리는 유형의 청자다. 신파라고 해서 다 나쁜가. 하면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신파 혹은 그에 가까운 코드가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괜찮은 작품이 무엇인가 하면 또 눈알을 굴리는 유형의 감상자다. 그런 의미에서 대놓고 표지에 나 따뜻해요, 나 뭉클해요, 위로를 드려요. 가 느껴지는 이 작품, <불편한 편의점>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고, 주변 사람들의 안목을 믿는 편이라, 고민 끝에 결국 이북으로 읽기로 하고 tts로 틈틈히 들었고, 작품은 꽤 괜찮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소설의 형태를 빌린 에세이였다면, 이 작품은 에세이 내지는 일기의 형태를 빌린 소설이다. 있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들을 빌려 적당한 유머코드, 숏폼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접근하기 쉬운 분량이 돋보이고, 일상적 대화를 조합해 유도한 가독성, 전국민이 예외 없이 겪었던 팬데믹 상황을 섞어 몰입도를 높인 것이 인상 깊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따뜻한 것들을 조명하기에 더 없이 적합한 장치들이고, 적확한 문법이다. 세상에는 어렵게 쓰여져야 하고 그만큼 어렵게 독해되어야 하는 글들도, 이렇게 쉽게 읽히는 글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휙휙 읽힌 글들이 품은 것들은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사라져버린 따뜻한 것들처럼. 따뜻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도시에서 그것들의 추억도 쉽게 소비되는 것이 아쉽다. 한편 쉽게 읽히는 데에 반해 어렵게 쓰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품은 불편한 편의점을 중심으로 언뜻 세어봐도 열명이 넘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그런데 독자도 역시 공감할만한 인생까지 다채롭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살면서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불편한 가게들의 따스한 기억까지 소환해내는 것은, 이 작품처럼 따뜻한 작품들이 그렇지 않은 작품들보다 더 수월하고 성공적이게 해내는 대단한 순기능이고, 그만큼 공감할 수 있도록 짜놓은 망이 촘촘하다는 뜻일 것이다. 가끔은 이런 어렵게 쓰여졌을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이 독자로서도 서운하다. 물론 현재 독서의 목표가 책과 가까워지는 것라면 강력히 추천한다.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예기치 못한 성장을 이룩하지만, 따뜻한 기억이라고 해서 세광슈퍼와 오성슈퍼, 새싹문고의 추억은 나의 성장의 어떤 부분도 담당하지는 않았다. 불편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은 아이러니는 그것이 유의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의미하기 때문에 더 빛난다. 그러니까 그 기억들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자체로, 그대로 내게 의미 있는 모양이다. 성장이 눈부시고 뭉클하지만 꼭 그래야 불편한 편의점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는 무용하고 무의미하며 급기야는 불편하기까지 하지만 오래 남는 순간들이 있고, 때로는 그런 순간이 한 시절의 화룡점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카피라이트가 오래 남고, 뭐시 중헌디? 로 중헌 것을 따지는 것이 좀처럼 낡지 않는 차가운 세상에서, 따뜻함으로 일관하는 섬과 같은 외딴 곳이 방문객들에게 따뜻함을 나눠주고, 궁극적으로는 관련된 모든 인물의 성장을 이루어 유익한 장소로 남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아름답다. 그러나, 세광슈퍼 앞에 목욕탕 의자에 앉아 눈깔사탕을 먹으면서 금산이 어둑해지는 것을 빤히 바라 본다던지, 오성슈퍼 사장님 아들이 찍찍 슬리퍼를 끌고 외출하는 소리를 들으며 슈퍼 옆 골목에서 개미들에게 과자를 던져준다던지 하는 것들 역시 의미 없이도, 유익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유의미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사회와 그 사회의 처연한 단면을 지켜 보며, 오랜만에 마른 땅에 비를 뿌리는 차창에 앉아, 대형마트에서 산 양파링을 주워 먹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불편한 동네 구멍 가게를 그리워하며 대형마트 출신 과자를 먹는 것만큼이나 삶은 모순적이고, 농담과 같다고. 그러니 무의미해도 괜찮다고. 그것으로 축제를 열자고. 문득 다음에 엄마 집에 가면 오성닭집에서 닭을 튀겨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벌써 개구리가 운다.

 

* 이번 책도 이북 예스 24 북클럽으로 읽어서 관련 이미지가 부족해서 오래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의 사진을 첨부합니다.

<순창 게스트하우스 금산 여관>

위치는 지도를 참고해주세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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