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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패싱 - 넬라 라슨] 무위의 번영, 닿지 못한 영화를 꿈꾸다. feat. 책캉스, 북캉스 in 롯데 호텔 제주

by 헌책방 2022. 4. 20.

[패싱 - 넬라 라슨] 무위의 번영, 닿지 못한 영화를 꿈꾸다.

feat. 책캉스, 북캉스 in 롯데 호텔 제주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뭐야?" 상냥한 말투, 다정한 표정에 둘러싸인 물음표였지만 아팠다. 심지가 딱딱한 질문의 미각보다 나의 글이 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구나. 하는 감각이 심장에 뾰족하게 닿았다. "지적 허영심 때문이야. 더 많이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싶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고 싶고, 나는 내가 누군지 내 자아를 알고 싶은데, 순전히 내 욕망이지. 혹시 불편해?". 허영. 비어있을 虛에 영화를 뜻하는 榮이 붙어 허위로 영화를 누리는 체 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게 그 수준을 욕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아니. 좋아서." 걱정과 방향이 다른 대답이 돌아왔지만 내내 그가 예의상 이 대답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시달려 괴로웠다. 그러나 내 생각은, 지성은, 내 공간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발전하기 위해 안간힘 쓸 권리가 있다. 닿지 못할 영화를 꿈꿀 권리가 있다. 글의 색깔, 성별, 특질, 계급과 상관없이 존재 자체만은 위협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자아를 가지고 있고, 인생은 인간이 그 자아들과 만나고, 스쳐 지나가고, 때로는 화해하며 가장 본질적이라고 인식하는 자아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 일생일대의 중요한 여정에서 작품을 읽고, 보지 못한 세상을 흡수하고, 그 감각을 글로 써 기록하고, 어른거리던 신기루를 실존하는 인생의 배경으로 조금씩 편입시키며, 나아가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종종 그 질문을 받았던 날, 카페의 창문과 흔들리던 커튼을 떠올린다. 그런 순간이면 큰 거울을 꺼내 욕망과 허영심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크기는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이기도, 중간중간 충전해야 하는 연료의 양이기도 해서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간 그 직시에서 위로를 받는다.

 

넬라 라슨의 <패싱>은 영웅의 홈커밍 일대기를 연상케 한다. 작품은 생존, 더 나아가 허영심의 충족과 욕망의 이룩을 위해서 고유의 자아, 정체성을 '패싱'한 클레어가 수많은 자아를 겪고 경험을 축적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패싱'한 자아, 할렘의 평범한 유색인종이라는 정체성을 욕망하게 되고, 회귀하고자 하면서 세계와 빚게 되는 마찰음을 담고 있다. 클레어는 소수인종, 여성, 낮은 소득수준, 한부모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있다고 느끼며, 나아가 아버지마저 잃고 고아가 되자 인종을 패싱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울타리를 탈출하고 빨간 드레스, 따뜻한 가정, 평화로운 일상을 욕망하면서 품었던 허영심을 해갈한다. 그러나 몇 년 후 한 루프탑 카페에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아이린을 만나게 되고,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패싱하지 않고도 행복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그녀의 삶을 탐욕하게 된다. 클레어는 백인우월주의자이자 철저한 차별주의자인 남편을 속이고, 할렘 안의 사교계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던 시절 고향을 떠났다가 (적어도 자기 삶에 있어서) 영웅이 되고 큰 가치를 손에 넣게 된 이가 고향에 돌아오면 종종 그러하듯, 클레어는 패싱을 하면서 얻었던 힘과 가치들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면서도 기억과는 사뭇 다른 고향을 선뜻 떠나지 못한다. 이로써 인종의 경계 위에 서서 평생을 안전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오던 클레어는 또다시 욕망이 낳기 마련인 파국에서 안전하지 못한 상태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야 만다. 클레어가 진정한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리한 과정 속에서 아이린은 자신의 일상의 평온함을 클레어에게 침범당하여 괴로워한다.

 

이 작품은 2021년 영화화 된 후 선댄스 국제영화제에서 공개, 넷플릭스에서 방영을 계기로 인종, 젠더, 계급을 탐구한 수작으로 재평가받으며 너른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2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이 100년을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는, 밝은 피부 색깔을 가진 흑인 여성이 완전한 흑인도, 백인도 아닌 상태에서 겪는 불편한 일들과 패싱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이 오늘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웃하여 있고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환경에 놓여 있고 때문에 다른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떼닥떼닥 붙어 있는 섬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경계에 서있기도 하지만, 차라리 경계를 중심으로 차단된 상태를 유지하는 독립 존재들이기도 하다.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섬들은 서로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영역을 늘리고자 욕망하고 허영심을 품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이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을 드러낸다고 해서 완전히 외면할 수만은 없다. 누구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해서 겪는, 타고난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다. 다른 섬은 그 섬의 심장으로 숨 쉬어 본 적 없으므로. 물론 클레어가 아이린을 배신하고, 아이린의 심리적 평화를 깨어버리고, 아이린 고유의 일상을 자신과 공유하도록, 나아가 자신이 실효적 지배할 수 있도록,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침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 방식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속이 비어 있지 않다- 만족감으로 그저 충만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얼마나 될까. 텅 비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온 우리는 과연, 근원적인 고독감과 공허함에 시달리는 상태 그대로, 저마다의 기준으로 '영화'를 꿈꾸지 않고, 현실이 최선이라고 믿고 머물며 살 수 있을까. 욕심 부리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인종과 성별로 인하여 차별받지 않음,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혐오받지 않음, 내가 나 그대로 존재하여도 안전함,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자유로움, 한 끼 식사,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 국가가 제공하는 의무 교육, 결혼, 내 집 마련과 같은 인생의 요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사치고,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인간이 그 안온함을, 꿈을, 나아감을, 포기해야 마땅할까. 그러니 누가 허영에 들뜬 마음을, 그 마음을 거부하지 못하고 차라리 품어버린 몸을, 뒤에 두고 떠나온 비천한 가치들과 고통의 순간들을 꿈꾸는, 영웅의 아이러니를 비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평생 발밑에 길게 드리워진, 붙잡을 수 없고 잘라낼 수도 없는, 텅 빈(虛) 그림자(景)를 안고 산다. 우리는 평생 안을 수 없고 숨 내음을 맡을 수도 없는, 거울 속 외따로 놓인(虛) 자신의 가상(影)을 들여다보며 산다. 그 안에 닿으려고, 내가 나이기 위해서, 거울 속과 발아래 붙은 환영 속이라도 들여다보며, 발버둥 친다. 때로는 그 비춤이 날카로워 도망가고, 때로는 그 어둠이 자신을 삼킬까 봐 아니라고 손을 휘휘. 하고 내젓고, 때로는 아- 어쩌면 이 모습이 나일지도 몰라. 하며 물속으로 뛰어들기도 하면서, 산다. 그렇게 그 허위에 닿으면, 다시 허영에 들떠 꿈을 꾸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자아와 화해하고 하나가 된 자신을 만드는 것이 무위에 가까운 그런 몸짓들이 모인 결과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거울을 바라보며, 꿈꾸자. 자신을 지나쳐도, 못 본척하고 지나쳐버려도, 중심을 잡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걷다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고, 거울을 깨트려 그가 길가에 주저앉아, 엉엉- 울게 하지 않도록. 이 영(映)을 또렷이 기억하자. 타인을 해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뻔뻔한 조건부 허영을 부리며 멋쩍어졌다. 이것은 공허함을 타고 태어난 나의 허영심에 대한, 긴 변명이다.

 

 

롯데호텔 제주에서 <패싱>을 읽으면서 책캉스를 즐겼다 'ㅁ' 발코니에 이런 의자가 놓인 호텔은 오랜만.

북캉스를 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조깅하고 가벼운 운동을 즐기기에도 좋다 'ㅁ' 사진 찍기에도 좋고!

구관 룸 컨디션은 정말 안좋긴 한데 그래도 이런 면에서는 추천추천

 

롯데호텔의 시그니쳐 더 캔버스! 체크아웃 날 조식+중식을 모두 즐겼는데, 정말 맛있고 즐거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이 식사들은 다시 따로 정리해야겠다 'ㅁ'

 

럭셔리 호캉스!

롯데호텔은 유수풀 이용하는 것이 정말 개꿀이다 'ㅁ' 페닌슐라 공사 끝나면 또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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