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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Accidentally Wes Anderson)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회 후기 (어쩌다보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후기도 포함)]

by 헌책방 2021. 12. 1.

[AWA(Accidentally Wes Anderson)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회 후기 (어쩌다보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후기도 포함)]
웨스 앤더슨의 흔적은 정말 어쩌다, 우연히 정도만 볼 수 있음 (시절은 비참했으나 시간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지나간 시절, 그 시절을 빛나게 만들던 얼굴들,
빛나던 순간을 함께 하던 얼굴들.
돌아오라. 는 말은 가닿지 않아서
홀로 그 순간, 그 얼굴들 앞으로 침잠하고자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홀로 남은 자가 수면에 남긴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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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마음 깊이 그리워하지만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과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다.
또렷이 그 날들과 인생을 무대에 상연했던 동료 주연들을 기억하는 어떤 노인의 회고록이다.
호텔 로비 보이 출신의 부호 제로 무스타파는 이제 기억이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는, 낡은 호텔과 자기 자신 밖에 없어서 일년에 한번 일주일, 적자 덩어리인 자신의 낡은 호텔에 와서 밥을 먹고, 탕에 몸을 담그고, 여기에서 만난 젊은 작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살육, 전쟁, 죽음, 비통함과 애도, 모함, 협잡, 불법, 탈출, 상실, 가난함 등 온통 아픈 기억으로 가득하지만, 이야기를 구현해내는 화면은 아름답고 위트있으며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한 따뜻함으로 표현된다. 제로와 구스타브에게 마담D의 죽음부터 구스타브와 아가사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삶에서 가장 무참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 놓여 있었으나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해 온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아니 그 순간부터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부정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만큼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벼텨낸',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될 뿐인 것이다. 오늘날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추억 필터'라고 단순히 일축해버리기도 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제로가 어둡고 축축했던 환경 속에 있었고 비참한 시절을 겪었음은 틀림 없으나 그가 사랑했던 함께한 사람들과 보낸 시간마저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중심적으로는 제로, 구스타브, 범위를 넓히면 마담D, 아가사, 더 범위를 넓히면 황금 열쇠 연맹, 신부들, 교도소 감방 동기들까지 화살표가 외부에서 또렷하게 보일 정도의 연대는 아니지만, 느슨하게나마 연대를 유지하며 어두운 환경과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뛰어난 역량과 뒷받침을 갖춘 자들보다(마담D의 친지들, 특히 아들 드미트리) 많은 이들이 부족한 힘이나마 서로에게 보태어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임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2015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을 수상한(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에도 노미네이트) 작품인만큼 웨스 앤더스 특유의 빼어난 미장센, 특히 비참한 환경 속에 놓였던 시간마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분홍을 테마로 하는 다양한 색감, 액자식 이야기 구성에 걸맞도록 화면을 회화적으로 구성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위기에 맞춰 화면비에 변화를 준 점, 마담D 일가와의 갈등의 요소에 가상의 회화 작품(액자 포함)을 사용 한 점, 그리고 이 가상의 회화 작품 자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과를 든 소년을 표현하고 있어 구스타브의 소년 같은 내면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또다시 액자식 구성이 반복된다는 점, 클림트의 표현주의가 작품에서 회화적으로 재연된다는 점(특히 의상), 구스타브와 제로가 훔친 액자 대신에 그 자리에 무심히 턱하고 걸어 놓은 작품이 한 때 외설 논란에 크게 시달렸으나 현재는 클림트의 표현주의를 한단계 발전시키고 인간의 욕망을 성적으로 풀어낸 천재 화가로 불리우는 에곤 쉴레의 작품인 점, 작품에 증장하는 에곤 쉴레 작품의 내용이 구스타브의 영화 초반 묘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다시 액자식 구성이 부각된다는 점 등 시각적으로 가치 있는 부분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인 것은 맞다. (언뜻 생각해도 이렇게 많으니 본격적으로 나열하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웨스 앤더슨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팀이, 느슨한 연대의 소중함이나 시시각각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어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직시나 함께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고찰 없이 시각적인 측면에만 집중해서 사진전을 개최하는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특히 웨스 앤더슨의 대표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미지적으로만 접근해서 뛰어난 내외관을 갖춘 호텔들 사진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케하는 오브제들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아쉬웠다. 웨스 앤더슨 작품을 관통하는 심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전세계 여러 사람들의 사진과 AWA팀이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이른바 느슨한 연대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 수집 방식은 그래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웨스 앤더슨은 이 팀의 활동과 전시회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회를 선택하는 이유가 웨스 앤더슨의 팬이어서라면 전시회를 추천하기 어렵다. 웨스 앤더슨이 작품에서 구현해내는 미장센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웨스 앤더슨이 자주 쓰는 화면의 회화적 구성과 소실점의 적극적 활용, 독특한 색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니 관람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아쉬움은 남을 수 있다. 또 여행을 좋아하지만 현재 전세계가 겪고 있는 극한의 상황 때문에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사진으로 여행하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으니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전시회장에서 적극적으로 작품과 소통하고, 천천히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작품을 음미하고 싶은 관람객이라면 전시회 관람을 재고하여야 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색감 덕분에(의도한 것 같기도 함) 관람객들이 사진을 감상하거나 정보를 얻거나 사진 속 장소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보다 사진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그림 옆에 걸린 설명을 읽고 있는데 뒤에서 사진 찍어야 하는데 앞으로 안간다고 투덜대는 관람객도 있었다(나름 측면에서 읽고 있었고, 버티고 서있는게 아니라 나를 지나가라는 액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장에 BGM처럼 연속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은 덤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제로와 구스타브가 탔던 열차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들. 영화에서도 웨스앤더슨표 미장센의 팬이 꾸린 이 전시회에서도 액자 속의 액자라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의 뚜렷한 프레임이 느껴져서 좋았다. 우측은 그냥 닥터후 생각이 나서 찍어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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