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 코맥 매카시] 길 위의 모든 나약함과 빛남
인간만큼 쉽게 부서지는 존재가 있을까.
세상이 무너진 다음날.
한 개 남은 과일 통조림에 생존의 운명을 걸어야하는 순간에도.
아들과 통조림을 나눠 먹고,
몸이 안좋은 아버지를 위해 나눠 받은 통조림을 포기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잿빛 눈이 내리는 세계의 끝에 서서도
서로의 기분이 상할까 걱정하고,
마음이 상해도 짐짓 괜찮은 것처럼 연기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애가 부서져 내리는 폐허를 지나고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순간을 지나도
끝끝내 인간을 믿는 존재가
인간이다.
쉽게 바스라지는 나약한 희망에 몸을 기댄 채 길 위에 섰기 때문에,
무너진 세계 위를 걸으면서도 마침내 희미하게나마 빛나는 얼굴을 발견하고,
그 작은 빛 때문에 살아내는.
약하기 때문에 살아내는.
모순적인 숙명 속에서 홀로 모순적이지 않은 존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기억하는가.
코언 형제의 역작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코맥 매카시는 욕망에 대한 처절한 분석과 인간과 인간의 과거가 갖는 관계에 대한 다층적 접근, 진정한 종말이 무엇이고 그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고찰을 접할 수 있는 수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로드>는 우리 나라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다 상대적으로 화제성은 낮지만 작가 특유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간접적이지만 섬세한 인물 묘사와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할일을 해내는 날선 면도칼이 연상되는, 그래서 되려 더 잔혹하고 처절하게 느껴지는 현실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영화 덕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이미지적 독해가 비현실적 잔인함에 더 집중 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인간은 보통 가까운 거리감에서, 현실적일수록 더욱 큰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영화를 감안하더라도 <로드>가 조금 더 피부에 와닿는 잔혹함으로 읽힌다.
전체적 배경 설정은 <로드>가 <노인을..>보다 현실과 훨씬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입체적인지, 얼마나 독자와 가까운 존재인지인 것 같다.
덕분에 의미있게도 <로드>는 잔잔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에 기반한 강력한 상호교류와 공감을 기반으로 높은 흡입력과 몰입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회색빛 일색인 배경속에서도 피 한방울이라도 흐를까 노심초사,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며, 독자마다,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독자가 속해 있는 문화권에 따라, 독자가 속해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이 달라지고,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그야말로 다층적, 다채로운 매력과 의미를 가진 작품이 되었다.
혹자는 <로드>에서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다른 누군가는 911테러를, 다른 누군가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를, 다른 누군가는 경쟁사회를 떠올리기도 한다.
분량도 많지 않고 단조로운 내용을 가진 이 작품이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현재나 과거를 다루지 않았음에도 작품은 2007년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작품 설정 특성상 색채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인물에게 뚜렷한 개성도, 심지어 이름마저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인데 색채감이 전혀 없음에도 인물의 특성만으로 상상속에 뚜렷하게 이미지가 연상되고 개성이 없음에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화 덕분에 인물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며 이름이 독자에게 노출되지 않을 뿐, 위기상황에 놓인 부자는 서로의 이름을 알고, 애절하게 서로 그 이름을 목놓아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상황의 비극성과 서로에게 부여되는 특별한 의미, 특히 소년의 얼굴에서 나는 빛이 더 특별하게 와닿는다.
일거양득으로, 아포칼립스 특성상 뚜렷한 개성이나 이름의 의미를 부러라도 지워야 살 수 있다는 디테일까지 챙기게 된다.
그의 별명이 서부의 셰익스피어 (아! 셰익스피어!) 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면 작가의 독특한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 <맥베스>, 그리고 희극이라고 불리우지만 뜯어볼수록 비극에 가까운 초기 희극 작품들도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귀신이나 요정이 등장하고, 왕조 이야기고 막 난리나니까) 인물들은 현실에 있을법한 설정을 한결 같이 유지한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인간이 군상을 이루었을 때 발견되는 변곡점, 비극적 종국(종말)으로의 빌드업, 종말 이후에도 계속 되는 삶, 종말을 지켜보고도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 같은 인류에 대한 통찰 역시 물론 닮아있다.
작품이 날선 현실성을 유지하는 이유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추측은 작가 자신의 삶을 작품에 반영 했다는 주장인데
집필 당시 70대였던 매카시에게 10대 초반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는 점, 매카시가 무명작가 시절에는 호수에서 샤워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는 점 등에서 작품 속 남자와 매카시가 닮아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도. 믿음에 기댄 버팀도.
요즘 전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오징어게임>을 관통하는 키워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서로를 죽여야 게임에 남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믿고 존중해야 길 위의 생존자로 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인간의 잔혹한 운명, 무거운 목숨 값,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 놓인 인간이 마찬가지 운명을 타고 태어난 다른 인간을 위해 갖춰야하는 최소한의 예의,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비현실적 게임과 비현실적 게임을 방불케 하는 현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배반. 그럼에도 남는 사람에 대한 믿음.
인간(人間)은 사람(人) 한명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모여 그 관계(사이 間)까지 더해져야 한다는 것.
<오징어게임> 같은, <매드맥스> 같은, <로드> 같은, 종말 같은 현실 위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이지만 함께 걷는 이의 얼굴이 빛나는 것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는 강한 인간.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야. 계속 가야해. 불을 운반하는 자, 배반 당해도 또다시 인간을 믿는 프로메테우스의 후예. 인간의 역사는 그 불꽃에서 시작했다.
독수리에게 심장이 뜯기던 프로메테우스는 사람에게 생명을 운반한 순간을 후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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