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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

[백야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하얀 밤

by 헌책방 202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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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하얀 밤

하얀 낮. 낮술하기 좋은 합정 (홍대) 발리슈퍼스토어에서 맥주 마시면서 독서하기

 

나는 살면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을 본적이 없다.

내 어린 동생들이 갑자기 어느 날 말문이 트였을 때

동생이 갑자기 말을 한다고 좋아했더니

엄마는 동생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차근차근 말을 배웠다고 했다.

따뜻한 양수 속에서,

아스라히 먼 바깥 세계의 소리를 떠듬떠듬 듣고 기억하고

그러다가 이해하고 말로 옮기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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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혹은 한겨울,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자러 가지 않고

새하얗게 밤을 새우며 하늘을 지키는 하얀 밤들을 건너

잔서리가 서로 맞부딪혀 뽀드득 소리가 나는 툰드라를 건너

언젠가 까만 밤이 온다. 진짜 밤이.

조금씩 야금야금 하얀 밤을 하나씩 지새우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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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는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명시절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데뷔작 이후 이렇다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20대 후반 갑작스럽게 간질 발작을 겪었고, 그 후 정치 서클 활동을 하다가 발각 되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시간을 재판정과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세월이 변화하여 출소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갈 수 있게 된 후에도 감시체제 속에서 생활 했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후속작들을 부담감과 압박감 속에서 집필 하게 된다. 
10여년의 시간을 역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로 40대 중반이 되고, 아내를 잃는 등 다사다난한 인생을 겪던 그는 드디어 <죄와 벌>을 연재 및 연재 완료하게 되고 (무진기행과 비슷하다. 이 시대는 단행본이 갑자기 띡 출고되는게 아니라
신문에서 작품을 연재하다가 연재분을 모아 편집하고 엮어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이어 <백치>를 집필하였으며, 말년에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연재하였다.
<백야>는 첫 간질 발작 후, 정치 서클 활동 때문에 재판을 받기 전 기간에 집필한 작품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둡고, 현실적이며, 날카롭고, 비판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희망적이고 로맨틱하며, 여리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짙은 작품이다.
이름 따라 사람의 일생이 바뀐다고 했었던가. 작품도, 작가의 일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백야 white night>는 이름처럼 서정적이고 말그대로 하얀 밤. 젊은 시절에서만 겪을 수 있는 대낮 같이 훤한 밤이 연상되는 데다가 (백야라는 자연적 현상 뿐만 아니라 밤에도 밝게 등을 켜고 인생을 허비한다던지 생산성을 높인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젊은 시절이기 때문에 백야의 이미지가 젊음과도 직결된다. 꼭 이 해석과 들어맞는 의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작품에서 그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라고 쓰기도 한다. 지금 만나고 있는 이 밤들이 시간이 지나고 더 어른이 되면 만나기 힘들어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기도 괜히 비장해지기도 한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집필한 시기도 도스토예프스키가 20대 후반, 데뷔작 이후 무명과 다름 없는 작가 생활을 하고 있었던 때라 결과적으로 작품의 운명이 여러모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과 작품활동 주기를 반영한 셈이 되었다.
작품 길이도 이 후 그의 대표작들과는 달리 중단편 정도의 길이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접하고 싶으나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도스토예프스키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인 '나'는 긍정적이지만 고독한 인물로 주변의 건물들과 소통할 정도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나'가 우연히 자신을 표출할만한 상대인 나스쩬까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며칠밤들을 보내고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과 상대를 진정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사랑해야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방법까지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사랑하는 나스쩬까가 1년간 그리워하고 기다렸던 원래의 사랑을 찾아가도록 돕고, 그녀가 사랑을 찾아가도록 놓아주면서 일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긴 백야를 어떻게 견뎌야하는지 이 긴 백야 끝에 오는 '진짜 밤'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야하는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요컨대 <백야>는 캐릭터적 측면에서도 무명시절과 삶을 대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치관이 드러나며 <죄와 벌>, <백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불세출의 역작이지만 무거운 주제와 호흡으로 무장한 작품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캐주얼하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백야를 보내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독거림이자, 젊을 때만 보낼 수 있는 긴 백야를 보내는 모든 청춘들에게 보내는 그의 뜨거운 응원이다.

 

책이 정말 가볍고 작다

p.s. 작품 패키지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열린책들에서 권 당 3,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문학 중단편들을 엮어 냈고, 10권씩 묶어 각 noon, midnight 이라는 이름을 걸어 세트로 만들었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백야는 noon 세트에 포함 되어 있는데 noon 세트는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뿌쉬낀의 <벨낀 이야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 아서 코난 도일의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푸른 십자가>로 구성되어 있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은 전혀 몰라서 나의 경우에는 새로운 작품 접하는 맛도 있어 좋았다.

아무튼 열린책들은 눈, 미드나잇 세트를 제작하면서 덕션의 힘이 미디어 뿐만 아니라 텍스트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고 본다. 
미니 핸드백에도 들어갈만한 크기로 줄이고 특수하게 만든건지 가볍기도 굉장히 가벼워서 그야말로 휴대하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백에 책이 들어있는지 까먹을 정도.
폭이 좁으니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기에도 좋고 중단편들이니 부담스럽지 않게 빨리 읽을 수 있어서 더 좋고. 
무튼 이 세트 너무 애정하고 있고, 세트로 구입하면 조금 깎아주는 데다가 엽서세트, 조그마한 필기 노트까지 끼워서 주고 있어서(게다가 이쁘다!) 책덕후들에게는 정말 그만이다.
상대가 책덕후라면 선물로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좋아한다에 내가 가진 책들을 걸지 후후

 

보기 드문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정적 감수성을 열린 책들 <백야>와 만나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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