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곗덩어리 - 모파상] 라 마르세예즈
화려한 에펠탑,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샹젤리제,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등 최고급 부티크가 늘어선 그랑 볼바르, 엘리제 궁은 모두 혁명을 위해 죽은 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
바칼로레아로 표상 되는 논리정연함, 장자크 루소, 볼테르가 대표하는 계몽주의와 화려한 지성,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제목만으로 반자동적으로 관객의 뇌리를 스치는 럭셔리 패션, 타이틀만으로 가스트로노미의 문법을 좌지우지하는 르꼬르동 블루는 모두 민중의 타는 목마름을 먹고 자랐다.
프랑스는 17~19세기에 걸쳐 수많은 혁명을 겪었고, 이 혁명들은 19세기 이후 세계 전역에서 일어난 다양한 시민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789년, 사치와 향락 때문에 파탄난 국가 재정, 앙시앙 레짐으로 깊어진 계층간 갈등, 특히 부르주아(시민 계급) 계층과 귀족과 성직자들이 대립하며 발발한 삼부회 사건과 의회에 대항하기 위하여 루이 16세가 베르사유와 파리 일대로 군대를 진군 시킨 일로 인하여 파리의 시민들이 자유, 평등, 박애(연대)를 내걸고 일으킨 대혁명을 우리는 '프랑스혁명'이라고 부른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혁명 직후, 유럽의 절대왕정국이었던 프랑스가 점점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신성 로마 제국, 프로이센 왕국 등의 연합군이 1793년 루이 16세 처형을 빌미로 대프랑스 전쟁을 시작하던 시절에, 프랑스 혁명의 피를 품은채로 탄생한다. 이 후 프랑스는 대외적으로 스페인, 플랑드르, 이탈리아 전역과 해상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대내적으로는 왕당파와 공화국 정부(나폴레옹 세력)의 대결을 겪는다.
제1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은 1798년 끝이 나지만 이 후 나폴레옹은 오스만 제국, 스위스, 아일랜드, 로마에서 전쟁을 벌이고, 1799년 제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이 발발한다. 프랑스는 제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에서도 막강한 군사력으로 유럽 전역에 맹위를 증명하고 전쟁을 종결하였으나, 나폴레옹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전쟁을 발발시키며, 앤더슨의 피아노 명곡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워털루 전투를 끝으로 완전히 패배할때까지 약 12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막이 내리면서 프랑스는 잠시 대외적 분쟁에서는 자유로워지지만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대표하는 1830년 7월 혁명을 겪는 등 대내적으로는 계속해서 혁명을 겪는다. 그리고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에스파냐 국왕을 어떻게 선출하느냐 때문에 보불 전쟁을 벌이게 되고, 프로이센이 이 전쟁에서 크게 이기면서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다.
프랑스와 유럽 전역이 겪은 혁명과 전쟁은 전쟁을 벌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자들의 삶보다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던 일반 유럽인들의 삶에 더 가혹하고 파괴적이었다. 수탈과 모욕의 삶은 오롯이 전쟁에 아무런 의도도 없던 선량한 자들의 영혼을 산산조각 냈다.
지성을 뒤엎는 폭압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나선 시민들의 정신을 기리는 라 마르세예즈는 현재까지도 변형 되거나 순화 되지 않고 프랑스 국가로 불리우고 있다. 어떤 혁명도 완벽할 수 없으며, 완벽한 체계를 만들 수 없다.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라 마르세예즈를 부른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열강과 지배계급의 역사가 과오를 반복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과 억압에 맞서 눈물 겨운 사투를 벌이는 자들에게 노래라보다는 절규에 가깝고, 평화보다는 전투에 가까운, 라 마르세예즈는 아직 유효하다. 자유여, 사랑하는 자유여, 함께 싸우자, 그대의 수호자들과 함께.
모파상은 문학을 사랑한 어머니와 당대 풍속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보바리 부인>이 대표하는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영향을 받아 <여자의 일생>, <비곗덩어리>, <목걸이>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관찰하고 상세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창작활동을 했던 프랑스 작가다.
특히 1870년 성년이 되던 해에 발발한 보불전쟁에 참전했다가 전투에 패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비곗덩어리>가 플로베르의 극찬을 받고, 졸라를 중심으로 한 자연주의 작가들의 단편집에 <비곗덩어리>가 실리면서 호평을 문단에 자리를 잡게 된다.
보불전쟁 중에 6명의 세력가 부부(귀족, 부르주아 포함)와 한명의 혁명운동가(프랑스는 어느 시대에든 혁명운동에 몸담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역사적 특징이다.), 두명의 수녀와 한명의 '비곗덩어리'가 피난길에 오른다.
'비곗덩어리'는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진 창녀였고, 엘리자베트라는 이름보다 비곗덩어리라는 별칭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리우고 있었다. 마차는 쉼 없이 달리지만 중간 지점에 도무지 도착하지를 못한다. 허기졌던 일행들에게 엘리자베트는 만일을 대비해 포장해 온 맛있는 음식들과 포도주를 거리낌 없이 나눠주고 일행 역시 그녀를 무시하고 천대하면서도 호의를 감히 무시하지 못한다.
중간 지점에 마차가 도착하지만 여인숙은 공교롭게도 프로이센 군인들이 점령한 상태였고, 점령군을 이끄는 장교는 엘리자베트에게 몸을 내 줄 것을 강요하고, 엘리자베트 뿐만 아니라 일행 전체가 피난을 재개하지 못하도록 억압한다.
처음에는 일행 모두가 애국심, 자긍심, 정조를 지키려는 정신 때문에 장교를 거절하는 엘리자베트를 옹호하고 보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대에서 이탈하여 하나 둘씩 그녀에게 부당한 행위에 협조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하고,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한 엘리자베트는 굴욕적인 순간을 겪고야 만다.
익일 마차는 다시 피난길에 오르지만 아무도 엘리자베트에게 감사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외면하며 더러운 것을 취급하듯이 대하고, 충격을 겪은 탓에 먹을 것을 전혀 싸오지 못했던 그녀에게 그 누구도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주지 않는다.
마차 안에서 혁명가는 라 마르세예즈의 휘파람을 부르고, 복수와 혁명을 방법으로 하고, 자유, 평등, 연대를 노래하는 가사를 떠올리며 일행은 괴로워한다. 엘리자베트는 끊임 없이 눈물을 흘린다.
짧고 간단한 줄거리, 기호학적 독해를 위해 여러 차례 읽어 봤던 작품이지만 이번엔 유독 작품이 잘 읽히지 않아서 고통스러워야했다.
특히 경악스러웠던 것은 일행이 엘리자베트의 평범하고 수수한 행동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불쾌한 골짜기'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엘리자베트보다 더 부자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출신성분이 우월하다는 이유로, 그렇지 못한 엘리자베트를 인간 이하의 존재, 본인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부품 정도로 여긴다.
잘 아는 이야기,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정신적으로 고통 받았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마차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는, 가끔은 젠체하고 합리적인(척 하는) 백작이기도, 가끔은 숭고한 혁명 정신만을 생각하는(척 하는) 혁명가이기도, 가끔은 이 모든 것을 관조하는(척 하지만 실은 부추기는) 수녀이기도, 가끔은 여전히 울고 있는 엘리자베트이기도 하다.
마차가 흔들린다. 먼 곳에서 포성이 들린다. 붙잡을 손이 아스라히 멀다.
긴 서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이번 회차때는 유달리 안 읽혔는데 운 좋게도 마릴린 먼로 전시를 가게 되면서 갑자기 속도도 붙고 해석도 빨라져서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 좋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네요.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독서와 함께하며 운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긴 호흡을 함께 해주는 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블로그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말미에 짧게 나마 공유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동기 부여 영상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https://youtu.be/3nvuuRK-5l4
누가 나를 '비곗덩어리'라고 부르는 데에 흔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남과 다른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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