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8. <조조래빗>
나는 꽃처럼 고운 우리 엄마가 읽어주는
윤동주의 시를 들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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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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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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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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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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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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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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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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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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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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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 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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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누구야.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별헤는 밤을 떠올렸다.
초록색 표지의 책 한권과
엄마에게 퍼부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엄마 안네랑 키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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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h bis an Deiner Shensucht Rand>
Rainer Maria Rilke
Let everything happen to you : Beauty and Terror.
Just Keep Going.
No Feeling is 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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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토끼처럼 영리하고 용감했기에
발 아래에 놓인 길을,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볼 수 있었다.
돌 같은 신념이라도
그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기에
토끼처럼 영리하고 용감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와인을 마실 수 있고
춤을 출 수 있고
호랑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쳐다보게 되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문 것일까.
울면서 이야기하던 역사를
이제는 이렇게 조금은 웃으면서,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지.
아니면 우리는 메디폼으로 상처를 덮고
이제 아물거라면서 자위했던 것일까.
일본은 독일 법을 베껴왔다.
대한민국은 일본 법을 베껴왔다.
법을 전공하면서
내가 가장 회의감이 들었던 부분이자,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나의 현재와
그 역사가
얼마나 강한 연결고리 안에 있는지 잊고 살았다.
겨울은 지났을까.
볕에 봄이 깃들었을까.
그의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
조조가 어머니를 묻은 언덕 위에,
자랑처럼.
잔디가
무성하게
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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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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