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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봤다

영화 <1917> 감상문

by 헌책방 2020. 3. 7.


2020. 2. 25. <1917>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그 흐름이 삶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가까이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 속의 일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을, 전쟁과 폭력이 스민 흔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상처는 상처에 머물지라도
이 시간 끝에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 눈부시기 때문이다.

소풍날처럼 화창한 볕 아래 푸른 초원 위에서, 한그루 나무를 등받이 삼아 낮잠을 청하는 청년의 모습에서부터 이 전쟁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많은 것과 싸우고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얻은
하루동안의 여정 끝에 그는 화창한 볕 아래 푸른 초원 위에서, 한그루 나무에 몸을 기댄다.

전우의 손에 이끌려, 외출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그는 임무를 수행하러 나선다.
최전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화창한 볕 아래 푸른 초원에서 10분 거리에 사선이 있다.
임무를 수행하고 사선에서 돌아온 그는
야전병원에서 전우의 형을 찾아 헤맨다.
전우들의 다리가 잘려나가고 다 큰 성인남자들이 어머니를 불러달라고 부르짖는 아비규환에서 한발짝.
단 한발짝만 나서면 푸른초원이 있다.
초원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사선에서 10분 거리에 화창한 볕 아래 푸르른 초원이 있다.

전우가 그에게 묻는다. 너 그 전투 기억해. 아니. 니가 훈장을 받았잖아. 기억안나.
거짓말처럼 고요한 들판을 가로지르며 또다시 전우가 그에게 묻는다. 훈장, 정말 기억 안나? 기억나. 아무짝에도 쓸모 없잖아. 가족한테 보여주면 되잖아. 프랑스 군인한테 주고 포도주 한 병을 받았어. 왜? 목이 마르잖아.
적군이 체리나무를 자르고 소를 죽이고 다리를 끊으며 지나간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두 친구는 깔깔댄다.

조명탄이 밤하늘을 메우고 버려진 마을 곳곳을 채우는 그림자와 불빛 때문에 축제라도 열린듯하다. 추격을 당하던 그는 어느 민가에 숨어들고 그곳에서 여인을 만난다. 여인은 아기를 키우고 있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여인은 아기 이름을 모른다. 자신이 낳은 아기가 아니다.
전쟁 중에도 새 생명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 연고도 없는 새 생명을 누군가는 소중하게 품에 안는다.

새벽 6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놀라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적의 추격은 집요하지만 겨우 피해서 계곡에 몸을 던진다.
강으로 이어지는 계곡 끝에는 폭포가 있다. 어찌나 소용돌이 치고 물살이 빠르고 세던지, 그는 빙글빙글 돌고 부딪히다가 폭포 아래로 떨어진다.
그렇게 한참을 흐르다가 통나무조각을 튜브 삼아 잠시 몸을 물에 맡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았다가
이제 괜찮다는 듯이 평화롭게 누워있다가
삶을 포기한것처럼 가라앉다가
어푸 하고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그는 다시 체리나무를 만난다.
강변에 체리나무가 만개해서 꽃잎이 눈오듯 흐드러진다. 얼굴 위에도 떨어진다.
약속의 땅에라도 온 것처럼. 그것을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무언가에 부딪혀 정신를 차리고 보니 강둑에 나무가 강쪽으로 쓰러져 강의 일부를 막고 있다. 댐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강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다리처럼.
그러나 나무를 따라 강둑까지 시체들이 떠다니고 있다.
정신 없이 시체를 헤집으며 물밖으로 나와 구역질을 한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린다.
한무리의 군인들이 전우가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다.
큰 전투를 앞두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있고
누군가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오늘 처음 보는 전우가 혹시 몸이 안좋은건 아닌가 걱정한다.

<1917>이 조용하지만 참혹한 이유는
조용한, 소규모의, 짧은 이 전쟁이,
주인공의 여정이,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과 닮아서다.

그는 자신과 싸우고,
독일과 싸우고,
길을 가로막는 아군과 싸우고,
포기하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시간과 싸우고,
고독과 싸우고,
명령을 전달해도 소용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싸운다.

보는 내내 덩케르크와 그래비티를 떠올렸다.
자기 자신, 고독과 싸워야하는 주인공의 상황,
롱테이크 씬,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시야와 인물의 움직임에서 파생되는 내적 혼란과 갈등,
탁월하지만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발견되기 힘든 은유 때문이다.
기생충을 극장에서 세번 관람한 팬이지만, 1917을 제치고 오스카를 받았기에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 없는 삶이 어디 있던가.

초원은 늘 최전방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사선은 늘 초원에서 10분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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