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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었다71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 김초엽] 해변 끝의 카프카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 김초엽] 해변 끝의 카프카 야이. 너 이 xx oo 완전 꼰꼰대네. 아 선배님, 저 꼰꼰대는 맞는데요. 후배한테 xx, oo이 뭐예요? 교양 없게. 아니 그리고 그 xx가 남자 선배랑 여자 선배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다른 것이 문제지, 내가 선배라고 무조건 대우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니까? 나보다 나이 많아도 후배니까 무조건 군기 잡겠다. 뭐 그런 마음이 아니라니까요?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내 눈을 빤히 보더니. 많이 세졌네. 막둥이 놈이. 하면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웃을 문제가 아니라면서 샐쭉이다가 그를 따라 웃었다. 내가 권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진정한 꼰대라면, 그에게 대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후배에게는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선배에게는 대드는 내로남불형 인간이거나. 후자.. 2022. 7. 20.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삼천 개의 빗방울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삼천 개의 빗방울 비가 오니까 너도 오는구나. 이별 후에 유독 새벽이 길어졌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편인데, 베개에 불면이 숨어 있었는지 박명 사이로 자꾸 뒤척임이 스민다. 지난밤 꿈에는 너의 모습이 말도 없이 제멋대로 찾아와 까만 밤과 새벽 틈 사이에서 눈을 떴다. 투두둑, 발코니 철제 난간에 정신없이 빗방울이 내려 춤추고 있었다. 너와 나란히 앉아 이별을 말할 때 함께 보았던 하늘에 걸린 회색 장막에, 삼천 개의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날 차마 내리지 못했던 그것들이 빗방울이 되어 펼친 손위로 나렸다. 처마 끝에 매달려 나리는 빗속으로 오목하게 손바닥을 반쯤 쥐고, 목놓아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너도 너의 맘대로 꿈속에 왔듯이. 내 맘대로. 주책맞게도 빗방울 소리를 손에 담.. 2022. 7. 19.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빨간약과 파란약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빨간약과 파란약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갈 당신 앞에 알약 두 알이 놓여 있다. 신이 어리둥절해 하는 당신에게 알약들에 대하여 설명한다. 파란 약을 삼키면 확고부동한 운명을 타고 나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라도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되는 인생을 살게 된다. 빨간 약을 삼키면 행위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 신은 늘 친절하지만은 않아서 복잡한 이 선택의 이면에 있을 상황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의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현재 네오의 삶은 노예의 그것과 같으며, 다만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에 가닿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 뿐, 거대한 진실에 대하여 다른 어떤 힌트도 제공하지 않는다. 신도 모피어스처럼 정보 제공에 박하다. 네오는 단숨에 빨간약을 선택하.. 2022. 7. 14.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엉망이어도. 봄날의 곰만큼.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엉망이어도. 봄날의 곰만큼. 2020년 12월. 많이 아팠다. 하루 중에 울지 않을 때가 없었다. 부장님이 자리를 지날 때마다 말했다. 설프로, 힘들면 퇴근해. 쉬어도 괜찮아. 어디 많이 안 좋은 것은 아니지? 어머니는 괜찮으신거지? 매번 고갯짓으로 대답하는데도 그는 근성 좋게 눈물 흘리는 직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9월, 몇 년 간 골치였던 위에서 뭔가가 발견 됐다고 엄마에게 전화하자, 엄마는 즉각 삼성병원으로 달려 왔다. 암센터 앞에서 엄마는 멈춰섰다. 너 암이야? 아니, 나는 암 아니고, 암 걸린 것도 아니야. 그런데 엄마 종양은 암센터에서만 제거할 수 있대. 2개월 간 가족 전부가 이 거짓말 작전에 투입 되었고, 배신감에 몸을 떨던 엄마는 결국 고집.. 2022. 6. 25.
[질투의 끝: 마르셀 프루스트 단편선]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질투의 끝: 마르셀 프루스트 단편선]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가. 완벽히 서로 다른 존재들이 허공에 제각기 포물선을 긋다가, 맞부딪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찬란하고 아름다울지언정 늘 그러할 수는 없다. 그간 각자가 남긴 무상한 자취를 서로 인정하고, 다른 모양을 받아들이고, 맞부딪음으로 인해 변경될 항로를 전쟁 같은 토론으로 합의, 재설정하는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지옥 같은 다툼 속에서 맞부딪음의 인상은 강렬해진다. 눈부심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교차점을 지나 자신의 포물선 속으로 침잠한다. 남은 이는 긴 자취를 남기며 떠나는 그 뒷모습마저 사랑하고 응원한다. 사랑은 전투다. 스물에 만나 3년 넘게 연애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사랑이 닳아져 그가 먼저 권태기를 느꼈고, 나는 속수.. 2022. 6. 23.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 안시내] 잊은 것들은 잊힌 것이 아니라. / 북 에세이, 독서 일기, 북리뷰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 안시내] 잊은 것들은 잊힌 것이 아니라. 여름 무렵 순창의 날씨는 매시가 낯설다. 낮에는 가슴에 장류를 잔뜩 머금고 푹 익히는, 간장종지 모양의 분지 가득 뙤약볕이 나린다. 그러다가도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먹구름이 축축하게 금산에 걸리기도 하고, 여름 밤을 뚫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서걱한 한기를 한입씩 물어오기도 한다. 5월말, 선거운동이 한창인 작은 동네를 채우고 넘칠만큼 사위에 더위가 오도도 맺혀있었다. 아현이는 자꾸 손을 잡거나 몸을 바짝 붙이는 언니를 밀어내고, 언니는 11살이나 어린 작은 동생이 예뻐서 밀어내는 몸짓에라도 손을 붙이면서, 뙤약볕 아래를 걸었다. 아이스크림 살 걸. 배고파. 집에 가면 엄마가 갈비 가득 해놨다고 하니까 그것부터 먹는거다...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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