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었다71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나는 무엇을 원했나. 원하는가. / 북리뷰, 책 추천, 북캉스, 책캉스 추천 도서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나는 무엇을 원했나. 원하는가. 비가 부스스 쏟아지던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버스를 타고 급히 서울을 떠나며, 내가 아는 당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가까이 살아도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할아버지댁에 자주 가지 못해서 추억이 거의 없는데도, 꽤 많은 기억이 쏟아져나왔다. 엄마는 당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할아버지가 4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며 오토바이로 출퇴근 하셨던 것, 까맣고 멋있는 오토바이 뒤에 수박, 참외, 참조기,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집으로 오셨던 것, 그러다 수박이 톡 도로에 떨어져 쪼개어져 버리면 그것을 노끈으로 동여매 아무렇지 않은척 부엌에 가져다 두셨던 것, 매일 새까만 머리에 포마드를 얹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빗고 정리.. 2022. 5. 17.
[아무튼, 술 - 김혼비] 어쨌든, 술 (술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feat.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 북리뷰 맞습니다. [아무튼, 술 - 김혼비] 어쨌든, 술 (술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그들의 지식의 양을 늘리려는, 부모들의 술수라고 생각했다. 내가 뭔가를 많이 보고싶은가? 넓게 보고싶은가? 뭘 보고싶은가? 하는 고민도 없이 그것이 뭐든 보이는게 좋다는, 무언의 압박이랄까. 여전히 앎은 그 양보다 질과 깊이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와,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이 말이 진짜구나- 하고 실감하는 때도 많아지고 있다. 며칠전에는 이 깨달음을, 입으로 옮기기도 했다. 어디에 눈을 둬도 즐길거리가 가득한 서울에서도, 막상 햇살 좋은 날 집 밖으로 나서 누군가를 만나면 함께 갈 곳이 많지 않다. 먹은 밥을 또 먹을 수도 없고, 마신 커피를 또 마실 .. 2022. 5. 3.
[농담 - 밀란 쿤데라] 농담(濃淡) 있는 농담(弄談)들로 완성하는 농담(濃談) / 북리뷰, 스포 없는 책 후기 [농담 - 밀란 쿤데라] 농담(濃淡) 있는 농담(弄談)들로 완성하는 농담(濃談) 내 삶은 진지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타인은 나를 늘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고, 나의 인생은 심플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내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은 나로 충분하니까.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유년기 끄트머리에, 엄마와 영화 을 보았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 보기에 상당히 잔인한 내용이었지만 등장 인물의 사연이나 표정 이면에 놓인 뉘앙스를 엄마가 마치 더빙 입히듯 설명해주셔서 무서움이나 두려움 보다는 슬픔을 느꼈다. 그때까지만해도 세상에는 엄마처럼 사람들의 생각에 깊이 눈 맞추는 사람, 아빠처럼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높이 들어 빙글 빙글 돌려주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 "남생아.. 2022. 5. 2.
[모든 사람은 혼자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나의 눈은 엄마를 닮았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나의 눈은 엄마를 닮았다. 나의 눈은 아빠를 닮았다. 00연수원 수료식 날, 새로운 길을 걷게 된 아이들의 첫걸음을 축하하고자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연수원을 찾았다. 온라인 사전 연수 기간에 미국으로 갑작스럽고도 긴 여행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벌점이 생겼었고, 어떤 직업적 사명감이나 조직에 대한 애착 없이 순전히 이 벌점을 벌충하려고 반장역할을 자청했지만, 막상 두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동기들과 동고동락하고나니 수료식 날은 온통 눈물이었다.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실존에 몰입하다보면,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을 얼굴들이었다. 아무나 붙잡고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좀 찾아줘." 했더니, 동갑내기 동기 한명이 정말 엄마 아빠를 모시고 왔다. 훗날 .. 2022. 4. 25.
[패싱 - 넬라 라슨] 무위의 번영, 닿지 못한 영화를 꿈꾸다. feat. 책캉스, 북캉스 in 롯데 호텔 제주 [패싱 - 넬라 라슨] 무위의 번영, 닿지 못한 영화를 꿈꾸다. feat. 책캉스, 북캉스 in 롯데 호텔 제주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뭐야?" 상냥한 말투, 다정한 표정에 둘러싸인 물음표였지만 아팠다. 심지가 딱딱한 질문의 미각보다 나의 글이 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구나. 하는 감각이 심장에 뾰족하게 닿았다. "지적 허영심 때문이야. 더 많이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싶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고 싶고, 나는 내가 누군지 내 자아를 알고 싶은데, 순전히 내 욕망이지. 혹시 불편해?". 허영. 비어있을 虛에 영화를 뜻하는 榮이 붙어 허위로 영화를 누리는 체 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게 그 수준을 욕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아니. 좋아서." 걱정과 방향이 다른 대답이 돌아.. 2022. 4. 20.
[시여, 침을 뱉어라 - 김수영, @ 서촌 체부동잔치집 별관] 그대가 시라면, 침을 뱉어라. / 북리뷰, 독서 일기 [시여, 침을 뱉어라 - 김수영, @ 서촌 체부동잔치집 별관] 그대가 시라면, 침을 뱉어라. 4월이면 다들 꽃놀이를 가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꽃놀이를 가려면 전국의 어디든으로 떠나 흙을 밟아야하는데, 흙을 밟으면 닿는 쇠붙이의 그 서늘함이 심장을 얼어 붙게 한다. 4월 16일. 8년전 나의 생일은 눈물이 채웠다. 차가운 바다에 슬픔이 가득 가라앉았다. 4월 3일.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피지 못한 꽃망울이 흐트러지던 날들이 있었다. 4월 19일. 개표 조작사건에 반발하며 부정선거 무효를 부르짖던 학생들과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외침은 종종 몽둥이 아래 짓이겨졌다. 눈물 많은 나는 그래서 늘, 우연(偶然)히 꽃을 만날때야 그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있다. 씩씩하게 어제를 안고 앞으로 나아.. 2022. 4.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