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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3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당신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당신에게 아니, 도대체 왜 우는 거야. 눈물 앞에서 모든 연인들이 예외 없이 물었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뭘 잘했다고. 얼른 주워 삼겼을 뒤에 이어진 말들도, 발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만 하다고도. 눈물은 최선을 다했다는 표식이었고, 결과와 무관하게 억울하다는 호소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얼른 결정해. 지금 결정해야해. 머릿 속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무기력하게 초여름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 나는 순발력이 좋지 못한 인간이다. 길게 생각하고 오래 고민하고 여러 방향으로 사고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가끔 전 애인들과 멀어진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22. 6. 6.
[파과-구병모] 파과가 아름다운 이유 / 북리뷰, 독서 일기, 책 후기 [파과-구병모] 파과가 아름다운 이유 아빠는 멀리 사는 큰형님, 셋째형님보다 가까이 살고, 첫눈에 봐도 느껴지는 넓은 배포와 아량, 농사 짓는 사람 특유의 애정 어린 보살핌의 몸짓을 갖춘 둘째형님을 많이 따른다.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당신의 아버지 대신 둘째형님에게 많이 기댔다. 당신이 지금 내 나이쯤 되어 가정을 이루고 독립하기 직전까지 둘째형님과 형수님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는 집에서 함께 살기까지 했으니, 통칭 호치큰아빠로 불리우는 큰 아빠는 아빠에게 형님이 아니라 아버지의 어린 버전에 가까운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만나기만 하면 각자의 아내에게 들킬까 두려워하면서도 킬킬대며 야금야금 약주를 나눠먹고, 무릎 연골과 고관절 건강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말 섞어 논의하는 친구 비슷한.. 2022. 5. 30.
[아가미 - 구병모] 땅 위에서도 물 속에서처럼 / 북리뷰 feat. 연남방앗간, 파주 지혜의 숲 [아가미 - 구병모] 땅 위에서도 물 속에서처럼.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는 순간,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발화를 청취한 모든 사람에게 그 발언은 발화자의 공식적 입장이 된다. 오랜만에 친구 B를 만났다. 그와 나 사이에 주된 토픽은 거의 늘 연애였기 때문에, 현재 만나는 연인이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지내는지, 같은 타인과 나누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질문이 오가는 것이 자유로운 편이다. 심상한 질문에 그는 남자친구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비슷한 정도. 라고 대답한다. 짧은 대답 이면에서 B의 두려움을 느꼈다. 남자친구가 생겼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정말 B의 공식적인 연인이 되는 셈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말의 힘이 세다는 사실이 종종 뻑쩍지근하게 뼈저리는 일이 쌓이면서, 별 것.. 2022. 5. 27.
[전주국제영화제 밀란 쿤데라 세션] [농담 - 야로밀 이레시] [밀란 쿤데라 농담에서 무의미까지 - 밀로슬라프 슈미드마예르] 나는 누구인가 [전주국제영화제 밀란 쿤데라 세션] 나는 누구인가 [농담 - 야로밀 이레시] [밀란 쿤데라 농담에서 무의미까지 - 밀로슬라프 슈미드마예르] 삶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때였다. 오랫동안 닫아 놓았던 기억의 궁전이 되살아나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나약함과 우유부단함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었고, 부단히도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왔던 짧은 인생에 사정 없이 금가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듯 이명으로 울렸다. 자려고 누우면 밤이 내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서 잠들지 못하고, 살아있으려고 앉으면 깨어나야 마땅한 시간이 지나도 눈을 뜨지 못했다. 겨우 밥을 씹어 삼켜도 속절 없이 모두 게워올렸고, 옷에 담겨 다니는 것처럼 보일만큼 몸이 쪼그라들었다. 바람이 불면 살갗을 찢어버릴듯이 털이 곤두섰다. 무.. 2022. 5. 19.
[소년이 온다 - 한강] 활활 타다. / 북리뷰, 북캉스, 책캉스 책 추천 [소년이 온다 - 한강] 활활 타다. 아야 서운아, 아부지 오셨다이. 얼굴에는 제법 처녀티가 나는데 몸집은 조그만 소녀가 마루에서 발딱 일어났다. 수원(水源). 그녀에게는 서당에서 훈장을 하며 여생을 보내시는 선비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좋은 이름이 있었지만, 늘 서운으로 불렸다. 그녀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 어머니가 태몽으로 용꿈을 꾸었다고 했다. 사내아이를 기다렸던 집안 어르신들은 조그맣고 하얀 여자아이가 사랑스러운 몸짓을 할때마다, 아고. 저거 서운타. 서운혀. 남자로 태어났으면 아조 예뻤을거인디 서운혀. 해서 아이를 서운이라고 불렀다. 사실 이름마저 이 애석한 별칭을 따라 지었을랑가도 모른다. 그녀는 늘 그것이 서운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어매에게 입도 뻥긋 못했다. 댓돌을 밟고 마루로.. 2022. 5. 18.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나는 무엇을 원했나. 원하는가. / 북리뷰, 책 추천, 북캉스, 책캉스 추천 도서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나는 무엇을 원했나. 원하는가. 비가 부스스 쏟아지던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버스를 타고 급히 서울을 떠나며, 내가 아는 당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가까이 살아도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할아버지댁에 자주 가지 못해서 추억이 거의 없는데도, 꽤 많은 기억이 쏟아져나왔다. 엄마는 당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할아버지가 4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며 오토바이로 출퇴근 하셨던 것, 까맣고 멋있는 오토바이 뒤에 수박, 참외, 참조기,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집으로 오셨던 것, 그러다 수박이 톡 도로에 떨어져 쪼개어져 버리면 그것을 노끈으로 동여매 아무렇지 않은척 부엌에 가져다 두셨던 것, 매일 새까만 머리에 포마드를 얹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빗고 정리..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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