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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꿈대표57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나는 더 이상 얕은 까망이 두렵지 않다. /독서 일기, 북 리뷰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나는 더 이상 얕은 까망이 두렵지 않다. 거실에 누워 번쩍 눈을 떴다. 볼록한 내 배가 보이고, 그 너머로 거실 베란다 창문 멀리 산 꼭대기에 벌써 어둠이 걸리고 있었다. 밤은 위에서부터 온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었던 슈퍼 앞에 달린 샷다문처럼 드르륵하고 위에서부터 어둠이 내려와 세상이 그 속에 잠긴다. 엄마- 불러도 아무도 대답이 없고, 동생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기었다. 부딪히고, 울면서, 소리 지르면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 쪽에 난 창문으로 기었다. 눈을 뜨면 산 머리에 그득한 어둠처럼 어둠이 위에서부터 나를 집어삼킬까 봐 오들오들 떨었다. 사과 트럭 아저씨가 빌라 앞에 왔는지 확성기에서 사과 팝니다- 사과- 소리가 나고, 겨우 창문에.. 2022. 3. 29.
[덕천식당] 순대 없는 순대국밥과 담쟁이 펜시브 / 식당 리뷰 맞습니다. 🍚🍚🍚 [덕천식당] 순대 없는 순대국밥과 담쟁이 펜시브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식당에 가면, 그 꾸준함과 변하지 않는 성실함 앞에서 절로 겸허해진다. 과연 어떤 일 앞에서 그토록 오래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기다리는 이 앞에서 덩달아 초조해지지 않고 차분하게 다독이며 나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내다보게 된다. 입맛이 까다로운 루나 원픽인 덕천식당인데, 어쩐 일인지 그날만큼은 우리 세 자매 입에 음식이 짰다. "여기 맛이 변했네." 투덜대면서도 "그래도 맛있다"하며 루나와 아현이는 그릇을 깨끗이 비웠고, 나는 가슴에 뭐가 얹힌 듯 더 이상 먹지 못했다. 비오는 주말에도, 단골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바글바글, 전북대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 2022. 3. 28.
[캐던헤드 오리지널 컬렉션 부나하벤 7살, CADENHEAD ORIGINAL COLLECTION BUNNAHABHAIN 7yrs] 큐레이팅 한다는 것 [캐던헤드 오리지널 컬렉션 부나하벤 7살, CADENHEAD ORIGINAL COLLECTION BUNNAHABHAIN 7 yrs] 큐레이팅 한다는 것 오늘 예스 24 블로그에 기분 좋은 댓글이 달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감상평에 달린 댓글이었는데,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글을 읽게 되었고, 짧은 책을 읽은 것 같았다, 글을 정말 잘 쓰는 것 같다는 내용의 짤막한 칭찬이었다. 그이는 책을 결국 샀을까.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다만 짤막한 감사의 말씀을 남겼다. 노출도로 따지면 매일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블로그와 인스타를 통해 나의 글을 접하지만 이것을 읽고 피드백까지 남기는 사람은 보통 6명, 특히 많은 날은 20명 정도다. 내 감상을 남기려고 시작했던 기록이 누군가의 감상에도 영.. 2022. 3. 25.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가르추크] 영원의 시간이 흐르는 강과 닿지 못한 마음들이 모이는 강 기슭 / 노벨문학상 수상작 북 리뷰, 독서 일기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가르추크] 영원의 시간이 흐르는 강과 닿지 못한 마음들이 모이는 강 기슭 그럴 때가 있다. 애써 꾹꾹 눌러 보낸 마음이 전혀 가닿지 않는 때. 말풍선 옆으로 작은 1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은 영영 가닿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글씨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모양이 완전한 무위로 돌아가버리는 때가. 획이 해독되지 못한 채 공기 중을 뚜뚜- 정처 없이 가르는 때가. 종종 인간은 그런 애달픈 상황을 겪어야 하는 모양이다. 속도 모르고 강은 흐른다. 저도 저의 배 밑에 무엇을 깔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묵묵히 자갈 위를, 부드러운 흙 위를, 하염 없이 걷는다. 강 가운데 깊은 곳에서는 돌을 지붕 삼아 눈 부신 햇살을 피해 새우잠 자는 물고기들이 자란다. 강가에는 수풀이 자라 강에 .. 2022. 3. 24.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우주에서 하나뿐, 이라는 이유만으로. / 북리뷰, 독서 일기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우주에서 하나뿐, 이라는 이유만으로. 2020년 10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인형 같이 작은 아이가 입양 가정에서 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태어난지 1년 4개월여만에 사망한 사건이었다. 전국에 있는 부모, 입양 가정에 소속한 사회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멀찍이 놓여 평소 사회 문제에 얼마간은 무심했던 이들까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죽음 앞에 분노했다. 그즈음 회사 주변 거리에 놓여 있었던 아이의 명복을 기도하는 화환들과 그 아래 누군가 두고 간 편지들, 아이를 위한 선물들 때문에 매일 아침 모두의 출근길이 눈물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 외에도 친부가 아이를 유기하고, 친부의 여자친구가 이 유기에 적극 가담하여 아이가 사망한 사건과 친부와 계모가.. 2022. 3. 23.
[포엣룸 poet room] 창 밖은 시들이 물결 치고 지붕 위는 계절이 지나가는, 거센 파랑(波浪) 끄트머리, 하얀 해변. [포엣룸 poet room] 창 밖은 시들이 물결 치고 지붕 위는 계절이 지나가는, 거센 파랑(波浪) 끄트머리, 하얀 해변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골목을 떠나는 겨울이 미련이 가득 담긴 발걸음으로, 눈꽃으로 닿았던 어느 벽과 고드름으로 얼었던 어느 처마 끝을 손끝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하나씩 눈에 담아보기도 하면서, 떠나고 있었다. 눈꽃 대신 거리 가득 내릴 꽃비가 질투나는지, 바람이 보도 블럭 위를 괜시리 쌩, 쌩. 거리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옷이 출렁출렁 춤을 췄다. 주춤 거리던 봄은 겨울의 맹렬한 여운에 겁을 잔뜩 먹고 작전을 바꾸었는지, 확 다가오지 않고 슬그머니, 엉금엉금. 떠날 채비를 하는 겨울 주변에 모여들었다. 겨울이 약해지길 기다렸다가 홱 자리를 차지할 심산이다. 봄은 말갛고 상..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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